"11년 선배한테 욕하더라" 박철순도 질린 '원조 곰탈여우'

2일 올 시즌 개막전 시구를 마치고 두산 김태형 감독(왼쪽)과 11년 선배 박철순이 기념 촬영을 한 모습. 잠실=두산

박철순(66)은 40년 전 프로야구 원년 MVP다. 미국 무대를 경험한 박철순은 빠른 공과 함께 당시 마구로 불린 너클볼, 팜볼 등 국내 타자들에게 생소한 변화구로 KBO 리그를 평정했다. 22연승 신화와 함께 다승(24승)과 평균자책점(ERA) 1.84로 2관왕에 오르며 두산의 전신인 OB의 한국시리즈(KS)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박철순은 갖은 부상을 이겨내고 불혹을 넘긴 나이까지 선수 생활을 하며 '불사조'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얻었다. 1982년은 물론 은퇴 직전인 1995년까지 두 번의 우승을 경험한 '곰 군단'의 전설이다.

그런 박철순에게 까마득한 후배가 욕을 했다면 믿을 사람이 있을까. 바로 11년 후배인 김태형 현 두산 감독(55)이 그랬다.

박철순은 2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 리그' 두산과 한화의 개막전 시구를 맡았다. 김형석(60), 홍성흔(45), 더스틴 니퍼트(41) 등 구단 레전드들과 함께였다.

시구에 앞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박철순은 김 감독과 인연에 대해 들려줬다. 박철순은 "선수 말년 때 함께 있었다"면서 "41살, 선수로 고령이었는데 힘들어서 타임을 걸면 (포수였던 김 감독이) 마운드로 올라와 욕하고 그랬다"고 폭로했다.

박철순이 41살 때면 그의 마지막 시즌인 1996년으로 1990년 입단한 김 감독이 7시즌째. 당시에 대해 박철순은 "보통은 투수가 힘들어하면 포수가 올라와서 '몸이 안 좋으세요?' 묻기 마련인데 김 감독은 '형, 던지기 싫으세요?' 하면서 째려보더라"며 혀를 내둘렀다.

다만 박철순은 "그러나 전혀 기분 나쁜 차원이 아니었고 오히려 내가 미안한 감이 생길 정도였다"고 돌아봤다. 포수로서 투수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일종의 자극이었던 셈이다.

'이제는 욕하지 않겠지?' 두산의 전신 OB 시절 불사조로 활약했던 박철순(오른쪽)이 2일 2022 신한은행 SOL KBO 리그 한화와 개막전 시구를 한 뒤 김태형 감독과 포옹하고 있다. 잠실=두산

선수 시절부터 하늘 같은 선배를 당황하게 만들 만큼 투수들을 리드했던 김 감독은 지도자로서도 능수능란하게 선수들을 이끌고 있다. 박철순은 "은퇴하면 좋은 지도자 될 거야 했는데 실제로 김 감독이 그렇게 됐다"면서 "투수 입장에서 김 감독이 리드도 잘 했지만 포용력이 있었다"고 했다.

김 감독과 같은 포수 출신인 홍성흔도 맞장구를 쳤다. 홍성흔은 김 감독에 대해 "공사가 분명하다"면서 "엄격할 때가 있지만 밖에서 아우르고 관리를 잘 하신다"고 말했다. 이어 "머리가 굉장히 좋고. 상대방 심리를 잘 이용한다"면서 "곰탈여우가 정답"이라고 강조했다.

곰탈여우는 '곰의 탈을 쓴 여우'를 줄인 표현으로 NC 국가대표 포수 양의지가 두산 시절 얻은 별명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원조 곰탈여우는 김 감독이었던 셈이다.

김 감독은 2015년 사령탑 취임과 함께 KS 정상에 올랐고, 이듬해는 통합 우승을 이뤘다. 2019년에도 우승한 김 감독은 지난해까지 KBO 최초로 7년 연속 KS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

2019년 두산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모습. 연합뉴스

특히 두산이 최근 몇 년 동안 핵심 선수들이 이적하는 전력 누수 속에서도 이룬 기록이다. 김현수(LG), 양의지, 오재일(삼성), 최주환(SSG) 등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빠진 공백을 이겨내고 거둔 결과다. 지난 시즌 뒤에도 박건우가 NC로 이적한 두산이다.  

사실 두산이 올해도 KS에 진출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지난해도 두산의 정규 시즌 성적은 4위였다. 올해 우승 후보로 거론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 두산이다.

그럼에도 구단 전설들은 두산의 가을야구 진출을 예상했다. 김 감독의 지도력과 함께 10개 구단 최고로 꼽히는 프런트, 화수분 야구라는 별칭처럼 강한 2군 등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일단 두산은 한화와 개막 2연전을 쓸어담으며 기분 좋게 출발했다. 과연 올해도 '곰탈여우'가 이끄는 곰 군단의 가을 DNA가 꿈틀댈지 지켜볼 일이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