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표 유연근무 확대, '주52시간제' 시계바늘 되돌릴까[노동: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인수위사진기자단
▶ 글 싣는 순서
①반쪽 성과에 멈춘 '비정규직 제로'…직무급제 혼란 재현될까
②빛바랜 최저임금 1만원 실험, 실패만 남긴 것은 아니었다
③윤석열표 유연근무 확대, '주52시간제' 시계바늘 되돌릴까
(계속)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
대선 기간 윤석열 당선인의 행보 중 이른바 '주120시간' 주장처럼 큰 파장을 불렀던 발언도 드물 것이다.

당시 윤 당선인은 스타트업 청년들의 말을 인용하다 빚은 오해라고 해명했다. 다만 이후에도 윤 당선인은 노동시간 규제를 완화해 노동자들이 유연하게 근무할 수 있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주52시간제를 폐지하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하지만 주52시간제의 정착 여정을 돌아보면 노동시간의 법정 상한선을 다시 높이는 작업은 만만치 않아 보인다.


국민적 합의 거쳐 이제 막 자리 잡았는데…주52시간 상한제를 돌이킨다?


연합뉴스
주52시간제 도입 여부가 주요 노동 이슈로 전면에 부각된 때는 2018년 무렵. 다만 애초 주52시간제는 문재인 정부가 새로 도입한 정책이라기보다, 그동안 방치됐던 노동시간의 적폐 청산, 비정상의 정상화에 가깝다.

본래 근로기준법에는 1주 40시간만 일하도록 제한했고, 예외적으로 12시간의 연장근무를 허용하는 주52시간 상한제가 규정돼 있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는 주말 휴일 근무만 별도로 계산하는 행정해석을 내려 주말 이틀의 8시간씩 16시간을 따로 더한 주68시간까지 노동시간을 인정했다.

상식적으로 1주일이 7일인만큼 주말과 평일을 모두 합쳐 1주일에 최대 '40+12시간=52시간'을 근무하도록 법과 행정해석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것이 주52시간제의 논리였다. 이 때문에 정부 시행령을 법에 맞춰 다듬기만 해도 논란을 해결할 수 있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됐다.

그럼에도 주말 수당 지급 논란 등에 발목이 잡혀있던 주52시간제 문제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노동시간 단축을 명분으로 해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발맞춰 대법원에서도 관련 사건 처리에 속도를 내기 시작하자, 국회의 여야는 사회적 파장을 줄이기 위해 최종 합의에 이르렀다.

노동시간 단축의 후폭풍을 줄이기 위해 유연근무제를 확대하는 방안들도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의 노사정 합의를 거쳐 정리됐다. 즉 주52시간제는 행정-사법-입법 3부에 더해 노사정 합의까지 아우르며 도입된 제도로, 차기 정부가 이를 뒤집고 관련 법을 개정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주52시간제의 노동시간 단축 효과는 곧바로 확인됐다. 박근혜 정부시절 2200여 시간에 달했던 임금노동자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문재인 정부 첫 해인 2017년에도 2014시간에 달했다. 하지만 2018년 1986시간으로 떨어져 처음으로 2천시간 아래로 내려왔고, 2019년 1978시간, 2020년 1952시간으로 매년 감소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800시간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특히 노동자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초장시간 노동이 급감해서, 주53시간 이상 일하는 취업자의 비중도 임금 노동자 대비 26.6%(2017년)에서 16.6%(2020년)으로 크게 줄은 것도 주52시간제 도입의 성과로 볼 수 있다.

다만 대구대학교 사회학과 이승협 교수는 주52시간제 보완책 명분으로 유연근무제를 확대한 점을 지적하며 "문재인 정부가 정책적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한 것은 긍정적이지만, 시행 과정에서 예외 규정을 너무 많이 둬서 생각보다는 정책 효과가 크지 않았다"며 "노조 있는 대기업은 본래 장시간 근무를 하지 않고, 노조 없는 중소기업은 샛길로 빠져나갔다"고 아쉬워했다.

또 "장시간 노동은 저임금 체계와 맞물려 있다. 연장수당에 의존하는 관행을 개선하지 않으면 돈을 벌기 위해 노동자 스스로 장시간 노동을 원하게 된다"며 "최저임금 인상 등 임금 정책의 힘이 한풀 꺾인 상태에서 주52시간제를 도입하니 노동시간을 단축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尹, 유연근무 대폭 확대 약속…사실상 주52시간제 무력화 공약


윤 당선인의 20대 대선 공약집에 담긴 노동 공약 가운데 첫머리는 노동시간 관련 공약이 차지하고 있다. '근로시간의 유연성을 확대하고 근로자의 선택권을 보장하겠습니다'라는 제목대로, 윤 당선인의 노동시간 정책 방향은 유연근무제 확대를 향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공약은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단위 기간을 기존 1~3개월에서 1년으로 확대하겠다는 내용이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일정 단위 기간의 총 노동시간 범위 안에서 업무 시작·종료 시각과 하루 노동시간을 노동자가 정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1개월(4주) 동안 평일 20일, 총 208시간 한도를 지킨다면 그동안 1일 8시간, 1주 40시간 제한 없이 일할 수 있는 식이다.

이 때문에 업무량이 들쭉날쭉한 IT직종 등에서 주로 사용하지만, 노동계는 단위기간이 길어질수록 휴식 없이 장시간노동을 집중적으로 하는 기간도 함께 늘어나기 때문에 단위기간 확대를 반대하고 있다.

더구나 주52시간제 도입 과정에서 여야 합의 끝에 선택적 근로시간제 단위 기간을 최대 3개월로 확대한 시점이 불과 지난해 4월이다. 제도를 바꾼지 겨우 1년여 만에 다시 손을 보겠다는 셈이어서 국회에서도 논란이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특별연장근로 대상에 새로 설립한 스타트업 업체를 포함한다는 공약도 논란거리가 될 전망이다.

애초 특별연장근로 제도의 취지는 천재지변과 같은 대규모 재난·재해 발생해 긴급히 사태를 수습해야 할 때 일정 기간 무제한 연장노동을 허용하는 데 있다. 최근 '국가 재난사태'로 선포됐던 강원도 산불을 소방관들이 진화하는 경우처럼 비상 사태에만 사용된다.

그런제 주52시간제 도입 이후 기업의 반발이 일자 정부는 특별연장근로를 시설·장비 등이 갑자기 고장난 경우처럼 '긴급한 경영상의 사유'로도 사용하도록 허용했다. 윤 당선인은 더 나아가 창업 직후 일감이 몰리기만 해도 '무제한 노동'을 허용하자는 것이다.

이처럼 유연근무제의 문턱이 낮아질수록 초장시간 노동은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 또 유연근무제를 이용하면 기업이 연장근로 가산수당을 덜 지급할 수 있기 때문에 기업의 이익을 위해 노동자에게 경제적 손해를 떠넘긴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 이주희 교수는 "서구 선진국에서 유연근무제 등은 경영상의 사유나 사용자의 편의를 위해 도입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가 편리하게 근무하도록 돕는 제도"라며 "노조가 산별 교섭 등을 거쳐 단체 협약을 통해 정하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유연근무제를 확대하자는 것은 전문성이 떨어지는 접근"이라고 비판했다.

이승협 교수도 "이 정도로 유연근무제를 확대하는 것은 장시간 근로 체제를 바꾸자는 사회적 합의를 완전히 허무는 것"이라며 "이 경우 노동계는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고, 노사 간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를 직무·부서별로 설정하도록 하겠다는 공약에 대해서도 "노동자들을 분할해 방해되는 노조를 무력화하겠다는 것"이라며 "노조, 노동자가 아닌 사용자의 입장에서 노동 정책을 추진하려는 강한 의지가 보인다"고 꼬집었다.


"포괄임금제·5인 미만 사업장 등 주52시간 사각지대부터 돌봐야"


주52시간제의 '보완'에 필요한 조치는 유연근무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52시간제가 도입된 후에도 장시간 노동이 허용되고 과로사가 발생하는 사각지대가 우리 주변 곳곳에 남아있다.

대표적 사각지대가 실제로 근무한 시간에 관계없이 미리 정한 기본급·수당을 지급하는 포괄임금제다. 본래 노동시간·업무량을 관리하기 어려운 직종을 위해 마련된 제도지만, 실제 산업현장에서는 단순 사무직·생산직에도 추가근무수당을 주지 않기 위해 무분별하게 악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해 문재인 정부는 포괄임금제 규제를 국정과제로 약속했지만,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아직도 '실태조사가 필요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관련 지침을 내놓지 않고 있다.

참여연대 사회경제국 이경민 팀장은 "'21세기 노비 문서', '인간 자유이용권'으로 불리는 포괄임금제 문제 해결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였고, 2017년 8월부터 규제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경영계 눈치를 보느라 마무리짓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윤 당선인이 후보 시절부터 주52시간제를 비현실적 제도라고 얘기하고, 더 많은 노동을 요구하는 상황을 보면 장시간 노동 문제가 더 악화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노동시간을 넘어 '근로기준법의 무법지대'인 5인 미만 사업장을 빼놓을 수 없다. 5인 미만 사업장은 근로기준법의 주요 규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주52시간제는 물론, 연장·야간·휴일근로 수당이나 유급 휴가 등 노동시간에 관한 각종 제도가 아예 공백으로 남아있다.

더 나아가 하나의 5인 이상 중대형 사업장을 쪼개서 여러 개의 5인 미만 사업장으로 허위 등록하는 '쪼개기' 수법이나, 노동자를 서류상 개인사업자로 위장시켜 상시근로자 수를 줄이는 이른바 '가짜 3.3' 수법까지 횡행하는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지난달 노동부가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쪼개기' 수법을 사용한 것으로 의심스러운 사업장 72곳을 감독한 결과 8개 사업장이 총 50개 사업장으로 쪼개 운영한 사실을 적발해내기도 했다.

노동시민단체 권유하다 정진우 사무총장은 "노동관계법에서 권리가 취약한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들은 노동시간의 제한 자체가 없는 형편"이라며 "장시간 노동은 물론, 자신이 일한 시간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고 받을 권리도 취약한 구조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때문에 5인 미만 사업장은 아예 출퇴근, 노동시간 자체를 계산도 하지 않을 정도로 소정 근로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고, 공짜 노동이 만연해 있다"며 "노동 시간 유연화, 장시간 노동 확산은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에 해당되겠지만, 특히 근로시간의 개념 자체가 없고, 관련 법적 제한 자체가 실종된 근로기준법 밖의 노동자들은 최악의 근로조건이 만들어질까 우려할 수밖에 없다"고 호소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