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걸 "한반도평화프로세스, 방향 옳지만 실력은 부족"[인터뷰]

김홍걸 의원이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CBS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야심차게 출발했던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쓸쓸한 퇴장을 앞두고 있다. 윤석열 차기 정부는 현 대북정책을 '완전 실패'로 진단하고 대수술을 예고했다. 여권은 이런 평가에 반대하지만 반성과 회한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김홍걸 의원(무소속)은 최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분명히 옳은 길"이라면서도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행에는 "비판받을 점이 있고 부족한 점이 있었다"고 작심 발언했다. 그는 "이것은 저 혼자의 생각이 아니고 이 분야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라고 덧붙였다.
 
김 의원의 평가는 냉엄하기까지 하다. 그는 6일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수차례의 남북‧북미 정상회담 성과에 대해 "우리가 노력을 하긴 했지만 실력을 발휘해서 안 될 것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주도적으로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그는 과감한 추진력이 없었음을 지적하며 선친인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과 비교하기도 했다. 그는 "이거는 꼭 필요하다 싶을 때 눈 딱 감고 일을 저질러버리는 배짱도 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소한 금강산 관광 재개 정도는 가능할 수 있었는데 "누군가 총대를 메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심지어 "문재인 정부 초기 통일부는 박근혜 정부 류길재 장관의 통일부만도 못했다"면서 "너무 몸을 사리고 소극적이다 보니 북한과의 교류나 인도적 지원이 오히려 보수정권보다도 떨어졌다"고 실망감을 나타냈다.
 
우군의 비판이 더 뼈아픈 법이다. '핵단추'의 크기와 '화염과 분노'를 운운하던 한반도 전쟁 위기 속에 출범한 현 정부로선 꽤 서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같은 분위기에 안주해버리면 아무런 교훈도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김 의원은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어쨌든 성공 못한 것은 사실"이라며 "북한이 잘못한 부분이 있고 미국이 잘못한 부분도 있지만 남 탓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우리가 어느 점에서 부족했는지 반성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는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도 반드시 객관적 평가가 필요하다. 공과 구분 없이 100% 실패로만 치부해버린다면 대북정책의 일관성과 초당적 협력을 일궈낼 귀중한 기회를 또 다시 잃게 된다.

김홍걸 의원이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CBS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김 의원은 "남북관계, 안보 문제야 말로 협치가 필요하다"면서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 추진에 여야가 대승적으로 협력했던 사례를 들었다. 대북정책에서 보수정권이 오히려 이점을 누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을 새 정부가 하겠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그 부분에 있어서는 협조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윤 당선인이 선제타격 같은 공약을 뒤집는다고 해도 누가 비난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선 비핵화 후 보상' 기조의 윤 당선인 대북정책에 대해 "문재인 정부 정책을 비난만 하지 자기들의 합리적 대안은 전혀 없다"며 "단지 보수층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아무 의미 없는 구호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다만 대북정책이 최종 확정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지켜볼 필요는 있다고 했다. 그는 "윤 당선인이 사실 남북문제나 안보문제에서 특별히 지식이나 철학, 어떤 소신이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며 "따라서 참모들이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느냐에 따라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 당선인이 파견한 방미 대표단은 미군 전략자산 전개에 합의하는 등 이미 대북 강경책 실행에 들어갔다. 이후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은 북한 도발에 대한 "신뢰할 만한 억지력"을 언급함으로써 긴장감을 더 높였다.
 
이명박 정부 초기 정세관리에 실패한 결과 금강산 피격과 연평도 포격 사건 등으로 이어지며 남북관계가 내리 악화일로를 걷게 된 기시감을 부른다.
 
▶ 이하 인터뷰 전문
@ 북한의 핵‧미사일 모라토리엄 철회로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있느냐 없느냐는 사실 의미가 없고, 어떤 방법으로 비핵화 의지를 갖도록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비핵화 의지가 없으니 전쟁으로 해결하자거나 아니면 그냥 포기하고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주자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 북한의 비핵화 의지 유무를 판단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다.
 
-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을 자신감이 있어서 핵을 개발해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2017년 핵무력 완성 선언 후 불과 몇 달만에 미국에 대화 제의를 한 것부터가 그렇다. 협상의 도구로서 핵을 개발했고, 그래야 미국이 자신들을 진지한 협상 파트너로 인정해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 대북제재 강화 필요성이 제기된다.
 
- 코로나 상황을 거치면서 제재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이 확실하게 드러났다. 북한은 방역 차원에서 완벽한 제재를 스스로 부과했는데도 아직 멀쩡히 버티고 있다. 중국,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가 최악이기 때문에 추가 제재도 어렵다. 중국도 북한 핵 보유를 달가워하진 않지만 북한이 붕괴될 수준의 제재는 절대 협력하지 않는다. 핵을 가진 인접 국가가 혼란에 빠지거나 내전이라도 발생하는 것은 더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방향은 옳지만 실행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무슨 뜻인가.
 
- 우리가 미국과 북한을 둘 다 설득해야 하는 입장에서 정책적으로 좀 더 창의성을 발휘해야 했고 기회가 있을 때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부족했다. 미국을 설득하고 움직이는 실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엊그제 김여정 담화는 한 마디로 '남쪽이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으면 나서지 말라'는 소리다.
 
@ 과감한 추진력이 부족했던 사례를 든다면.
 
- 미국 측과 잘 협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경우에 따라 이거는 꼭 필요하다 싶을 때 눈 딱 감고 일을 저질러버리는 배짱도 좀 필요하다. 1998년 금강산 관광이 결정될 당시 임동원 외교안보수석이 김대중 대통령과 상의한 뒤 잘못되면 모든 책임은 자신이 질 각오로 발표해버렸다. 미국과 최종적으로 합의가 끝나지 않은 상태였는데도 결과가 좋으면 누구도 시비를 못 걸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 문재인 정부는 너무 신중한 편인가.
 
- 대통령의 부담을 덜어주고 자신이 책임질 각오로 결정적 시기에 과감하게 일을 추진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했다. 대통령이 신중하면 참모가 과감하게 나서며 서로 보완해줘야 했다. 제가 아는 바로는 문 대통령도 북한과 두 번의 정상회담 후 내부적으로 금강산 관광 재개를 논의한 것으로 안다. 대통령은 해도 되지 않겠나 생각했는데 외교안보 당국자들이 신중론을 내세웠다는 얘기를 들었다. 누군가 총대를 메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다.
 
@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대통령의 독특한 성정을 의식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 개성공단은 좀 복잡한 문제가 있지만 금강산은 단순하니까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고 본다. 그리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의 회담 성과를 자랑하고 있었고, 또 2차 회담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금강산 관광 재개를 한다고 판을 뒤집어버릴 상황은 아니었다. 지금도 아주 아쉬운 점이다.
 
@ 그래도 남북, 북미 정상회담을 수차례나 성사시킨 것은 성과 아닌가.
 
- 우리 정부의 성과로 자랑하는데, 우리가 노력을 하긴 했지만 실력을 발휘해서 안 될 것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주도적으로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다. 우리가 그들을 설득해서 끌어냈다기보다는 북한이 처음부터 계획이 있었던 것이다.
 
@ 너무 냉정하게 평가하는 것 같다.
 
한반도평화프로세스가 어쨌든 성공 못한 것은 사실이다. 많은 국민이 실망을 한 것도 사실 아닌가. 북한이 잘못한 부분이 있고 미국이 잘못한 부분도 있지만 남 탓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고 우리가 어느 점에서 부족했는지 반성을 해야 한다.
 
@ 통일부의 역할은 어떻게 평가하나.
 
- 현장에서 뛰는 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문재인 정부 초기 통일부는 박근혜 정부 류길재 장관의 통일부만도 못했다. 너무 몸을 사리고 소극적이다 보니 북한과의 교류나 인도적 지원이 오히려 보수정권보다도 떨어졌다. 제가 민화협 대표로 10년만에 처음으로 금강산에서 남북공동행사를 할 때도 출발 1주일 전에 장관이 보자고 하더니 숫자를 좀 줄여줄 수 없느냐고 하더라. 뭔가 좀 적극적으로 노력하기 보다는 작은 것 가지고 몸 사리는 게 더 강했다.
 
@ 미국은 말로는 한국의 주도적 역할을 인정하지만 실제로는 간섭해왔다. 그런 현실적 어려움도 감안해야 할 것 같다.
 
- 그렇더라도 더 끈질기게 설득하고 적극성을 보였어야 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최악으로 가지 못하게 말린 정도의 노력은 인정하는데 그 이상의 성과는 내지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 정권이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군사행동을 하려 할 때 끈질기게 설득해서 결국 협상을 하게 만들지 않았나.
 
@ 그때와는 상황과 조건이 너무 다르지 않은가. 북한은 아직 핵 개발 초기였고 미중관계도 괜찮았던 시기였다.
 
- 어떤 면에선 그때가 더 쉬웠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는 우리의 국력이 훨씬 약했고, 심지어 IMF 외환위기로 미국과 일본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기였다. 지금은 국력이 커졌는데 외교는 아직도 너무 저자세로 한다. 사실 이것은 문재인 정부만 탓할 일은 아니다.
 
@ 윤석열 당선인은 한반도평화프로세스를 '완전 실패'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선 비핵화 후 보상' 식 대북정책을 공약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 아인슈타인 박사가 이런 말을 했다. 똑 같은 것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바란다면 미친 짓이라고. 선 비핵화 후 보상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계속해왔지만 전혀 통하지 않았다. 북한 지도부에게 그냥 목을 내놓으라고 하는 소리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정책을 비난만 하지 자기들의 합리적 대안은 전혀 없다. 단지 보수층을 만족시켜주기 위한 아무 의미 없는 구호에 불과하다.
 
@ 최근 김여정 담화에는 윤 당선인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 북한은 차기 정부를 어떻게 대할까.
 
- 윤 당선인이 사실 남북문제나 안보문제에서 특별히 지식이나 철학, 어떤 소신이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따라서 참모들이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느냐에 따라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자 '저 사람은 근본적으로 비즈니스맨이니까 이념에 얽매여서 남북관계를 일부러 악화시키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결과적으로는 틀렸다고 할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참모들 중에 강경파들이 일을 망쳐버렸다.
 
@ 윤 당선인에 조언을 한다면.
 
-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남북관계, 안보문제야 말로 협치가 필요하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이 평가받는 이유는 그때 야당의 김대중 총재가 대승적 자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한민족공동체 통일 방안도 여야가 합의해서 야당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으며 했다. 남북 기본합의서도 그렇고. 지금도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을 새 정부가 하겠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그 부분에 있어서는 협조할 생각이 있다. 윤 당선인이 선제타격 같은 공약을 뒤집는다고 해도 누가 비난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 차기 정부에선 북한 인권문제가 부각될 전망이다.
 
- 북한 인권을 그렇게 걱정하는 분들이 인도적 지원은 못마땅해 한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인권은 생존권 아닌가. 굶고 있는 사람, 병든 사람들 도와주는 건 반대하면서 정치적 권리만 찾아주겠다고 하면 북한 주민들에게 진정성 있게 들리겠는가.
 
@ 대북정책에서의 일관성과 초당적 협력을 위해서는 국론 결집이 중요하다. 어떤 방법이 있나.
 
- 쉬운 일이 아니다. 노년층은 보수적이고 강경한 정서이고 젊은 층은 아예 무관심한 경향이 있다. 뭔가 조금이라도 남북이 협력해서 긍정적인 효과가 나오는 모습을 보여줘야 생각이 바뀌는데 기회를 놓친 측면이 있다. 다만 이런 점은 참고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선대 지도자들과 사고방식이 다르고 우리 젊은 세대와 비슷하다. 민족 따지면서 꼭 통일해야 한다 이런 생각 없는 사람이고, 어떻게 보면 합리적 개방적이지만 냉정한 현실주의자다. 북한이 나중에 외부와 교류할 수 있는 상황이 오더라도 굳이 남쪽을 우선적으로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먼 훗날의 일일 수 있지만 지금 북한에 퍼주기 하지 말라고 하는 분들이 그때 가서는 '기회가 있을 때 북한을 우리 품에 들어오게 했어야 했는데 중국, 일본 다른 나라에 다 뺏기고 우리는 구경꾼 신세가 됐다'고 한탄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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