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위한 법안 강행 처리를 시사한 가운데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등 결사 항전을 예고하며 양측의 신경전이 고조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거대 야당의 횡포를 규탄하고 있지만, 검수완박 논란을 계기로 '아빠찬스' 등 내각 부실검증 관련 여론 주목도가 떨어지면서 내부에선 한숨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검수완박' 극한 대치…장관 후보자 '아빠찬스' '사외이사' 논란 관심 시들
21일 국회에선 검수완박 법안 처리를 놓고 일촉즉발 상황에서 여야의 대치 국면이 이어졌다. 해당 법안들의 통과를 위해 전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탈당을 불사하며 '위장 탈당' 꼼수라는 지적이 일었지만, 민주당은 '회기 쪼개기' 방식까지 검토 중이다. 국민의힘이 법안 처리를 지연시키기 위해 필리버스터에 돌입할 경우, 이달 말까지 본회의 의결을 목표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힌다.다음달 9일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민주당은 다음달 3일 열리는 현 정부 마지막 국무회의 전에 검수완박 법안들을 통과시키겠다는 전략이다. 문 대통령 임기를 넘길 경우,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에서 의결된 법안들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 법안 공포가 무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소속 정무사법행정분과 이용호 간사는 이날 브리핑에서 "(검수완박 법안들의) 통과가 다음 정부로 넘어간다면, 제가 보기에는 당연히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 본다"고 했다.
172석에 달하는 거대 야당인 민주당에 맞서 국민의힘은 표면적으론 결연한 항전을 예고했지만, 물밑에선 다른 기류가 감지된다. 지금과 같은 여소야대 구도 속에서 민주당이 법안 처리를 강행할 경우 현실적으로 막을 방법도 없을 뿐더러, 검수완박 법안들의 강행 처리가 국민의힘 측에 다소 유리한 국면을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1기 내각 인선 직후 불거진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자녀의 의대 편입 관련 '아빠찬스' 논란 및 병역특혜 의혹 등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분산되고 있다. 김인철 교육부 장관 후보자의 사외이사 겸직 논란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의 위장전입 의혹 등도 막 터져 나왔지만 '검수완박' 이슈에 가려지며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결사 항전' 외친 국민의힘, 물리적 저지 '주춤'…새 정부서 반격 노려
국민의힘이 비난 성명 수위를 높이고는 있지만, 딱히 실질적인 대응 수단이 없다보니 여론전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국민의힘은 이날 오전부터 최고위원회의와 중진의원 연석회의를 개최한 데 이어 민주당 소속 박광온 법사위원장을 항의 방문하는 등 다소 온건한 투쟁 방식을 택했다. 이준석 대표는 "조국 사태 당시 당당하게 수사했던 윤석열 검찰총장을 국민들이 '국민검사'로 만들어주고 대통령직을 수행하도록 맡겨준 의미가 무엇인지 민주당이 깨달아야 한다"고 했고, 권성동 원내대표는 "울산시장 선거 개입과 대장동 등 권력형 비리의 몸통을 은폐하기 위해 검찰의 손과 발을 다 자르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2019년 12월 민주당의 공수처법‧연동형비례 선거법개정안 강행 처리에 맞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이 필리버스터와 함께 물리적 저지에 나섰던 것과 대비되는 대목이다.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장관 후보자들에 대한 자녀 입시‧병역특혜 의혹이 쏟아지는 와중에 시선 분산 효과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당내 한 초선의원은 "자녀의 의대 편입 특혜 논란 같은 것들은 민감한 이슈라서 중도층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지만, 검수완박은 어쨌든 각자 진영으로 나뉘는 주제"라며 "딱히 방어 논리가 없는 입시 특혜 의혹보다는 검수완박은 확실히 명분이 있는 싸움"이라고 말했다. 인수위 관계자도 "장관 후보자들 의혹은 고개를 숙이는 방법 말곤 대안이 없는데 검수완박은 오히려 국민의힘 쪽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고 있지 않냐"고 했다.
설혹 민주당이 검수완박 법안의 강행 처리에 성공하더라도 새 정부 취임 후 쓸 수 있는 반격 카드가 많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검찰의 수사권이 박탈된 이후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 등이 설립되면서 검찰의 수사 기능을 대체할 경우, 대통령의 임명권 행사를 비롯해 세부적인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해 '우회로'를 뚫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수완박 논란 종결 이후 인사청문회 정국으로 돌입하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국민의힘이 불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내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수완박은 시한이 정해진 일이라 어쨌든 다음달 초에 마무리되는 구조"라면서 "반면 청문회는 윤 당선인 취임 전후로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거기서 조국 사태 같은 입시 비리가 하나라도 나오면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막대한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