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개월째 이어지던 가계대출 감소세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설 조짐이 보이고 있다. 부동산 관련 규제가 완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거래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1일 기준 5대 시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모두 703조 4484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달과 비교하면 2547억 원 늘어난 액수다. 신용대출은 감소했지만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이 모두 증가했다. 특히 주담대 대출이 가계대출 증가를 견인했다. 주담대는 같은 기간 507조 1182억 원으로 나타나, 지난달 말 650억 원에서 4008억 원으로 증가폭을 키웠다.
4월 말까지 영업일 기준으로 일주일 정도 남은 시점이어서 은행권에서는 이달 가계대출이 3월보다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연말부터 이어진 금융당국의 강한 가계대출 규제로 올 들어 석달 연속 감소세였다. 만일 4월 증가세로 돌아서면 4개월만에 증가세로 돌아서는 것이다.
앞서 이창용 신임 한국은행 총재도 인사청문회에서 "작년 12월 이후 가계대출이 약간 줄어들다가 정체 상태다. 이미 가계부채가 많이 늘어난 상황이기 때문에, (기준금리 인상이라는) 시그널을 줘서 가계부채를 꺾는 게 일단 급선무라고 생각한다"라고 진단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당시 생애 최초 주택구매 가구의 주택담보대출비율(LTV) 상한을 80%로 높여 청년·신혼부부 등의 내 집 마련 기회를 늘리겠다고 공약하는 등 부동산 관련 규제 완화가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아파트 매매는 1359건(계약일 기준)으로, 한 달 전(810건)보다 소폭 증가했다. 재건축 규제 완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세율 한시적 배제 등 공급을 늘리고 부동산 세제를 완화해 '정상화'하겠다는 것이 새 정부의 큰 그림이다. 서울 중구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는 공인중개사 A씨는 "보유세 증가 등으로 부담을 갖고 있던 다주택자 등 매도 움직임이 눈에 띄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거래 상승세는 계속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은행들이 최근 경쟁적으로 주담대와 전세대출 금리를 낮춘 영향도 있다. 시중은행은 올해 들어 가계대출 감소세가 이어지자 신용대출의 한도를 지난해 총량 규제 이전 수준으로 돌려놨다. 또 대출자에게 우대금리를 주거나 대출 금리를 깎아주는 식으로 금리 할인 효과를 내고 있다.
은행권에서는 향후 가계대출 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부동산 매매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럼 대출도 증가할 수 있다"며 "대출 총량 규제가 사라지고 은행권의 대출 금리 인하도 계속되고 있는만큼 가계대출이 더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차기 정부 역시 가계대출이 다시 급증하는 것을 염려하고 있어 향후 어떻게 이를 조절해 나갈지가 관건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금융권 관계자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완화도 거론됐지만 인수위는 신중한 입장이다. 만약 DSR이 계속 유지되는 쪽으로 결정되면 대출 증가세는 제한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