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측이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청법·형사소송법 개정안)' 강행에 맞서 국민투표 카드를 꺼내며 맞대응에 나섰다. 윤 당선인 취임 후 6‧1 지방선거와 국민투표를 동시에 실시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지만, 하위법 개정과 위헌 논란 등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검수완박 강행 맞서 '국민투표' 카드 꺼낸 尹 측…선거인명부 논란
국민의힘은 27일 민주당과 막판까지 검수완박 관련 협상을 시도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에 민주당이 '회기 쪼개기'로 법안 강행 처리에 돌입하자, 권성동 원내대표를 시작으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의사진행 방해)에 돌입했다. 수적 열세로 인해 사실상 국회 내에선 맞설 카드가 전무한 가운데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이날 오후 불쑥 '국민투표' 카드를 꺼냈다.
장 실장은 통의동 인수위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당선인 비서실은 '검수완박'과 관련해 국민투표하는 안을 윤 당선인에게 보고하려고 한다"며 "대한민국의 형사사법 체계의 근간을 뒤흔드는 일은 차기 정부와 의논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규정한 헌법 제72조를 활용해 해당 법안들의 본회의 통과 이후에라도 반격에 나서겠다는 취지로 읽힌다.
예상치 못한 윤 당선인 측의 돌발 카드에 잠시 정치권이 술렁이기도 했지만, 현 상황에서 윤 당선인 측의 구상대로 국민투표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게 중론이다. 일단 국민투표를 시행하기 위한 투표인명부 작성과 관련된 하위법이 정비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지난 2014년 국민투표법 제14조(투표인명부 작성)가 헌법불합치 판정을 받았지만, 헌법재판소가 결정한 시한까지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현재 효력을 상실한 상태"라며 "지금 상황에서는 선거인 명부 작성이 불가능하고, 결국 국민투표를 실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2014년 7월 헌법재판소는 국민투표법 14조 1항에 대한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해당 조항은 재외국민인 경우 국민투표를 공고한 시점에 우리나라에 주민등록을 해놨거나 국내 거소 신고가 돼 있어야 투표인 명부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고 규정돼 있는데, 당시 헌재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격이 있는 사람에게 반드시 투표권이 인정돼야 하고, 국내 거소 신고가 안 돼 있더라도 재외국민은 국민이므로 이들의 의사는 국민투표에 반영돼야 한다"며 6 대 3으로 불합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헌법불합치 결정으로 인해 2015년 12월 31일까지 해당 법안을 개정해야 했지만,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서 방치됐다. 이에 따라 2016년 1월 1일 이후 이 조항은 효력이 상실됐고, 투표에 참여할 투표인 명부를 작성할 수 없기 때문에 국민투표 자체가 불가능한 셈이다.
검수완박이 '중요 정책'?…적격성 여부 도마
하위법 개정 문제 뿐만 아니라 헌법의 국민투표 요건에 대한 적격성 여부도 논란이 되고 있다. 국민투표는 헌법 제72조와 제130조에 요건이 규정돼 있는데, 제130조는 헌법 개정안에 관한 부분이라 윤 당선인 측이 제기한 '검수완박' 법안과는 무관하다. 제72조에서도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 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명시돼 있기 때문에 검수완박 법안이 과연 '중요 정책'에 해당하는 지 여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학계에선 대체로 국민투표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통화에서 "검수완박 법안은 국민투표 대상이 될 수도 없고, 돼서도 안 된다"며 "백 번 양보해서 국회 의결 전이라며 '정책'으로 볼 수 있지만, 국회 통과 이후엔 사실상 대통령에 취임했을 윤 당선인 또는 국민의힘에 대한 재신임 찬반을 묻는 성격으로 변하기 때문에 요건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통화에서 "이미 헌법재판소가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민투표로 재신임을 요구했던 당시 재신임은 국민투표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결정했다"며 "노 전 대통령은 결국 국민투표를 포기해서 추가로 문제는 안됐지만, 윤 당선인이 만일 실제로 국민투표로 끌고 가게 되면 위헌 행위로 인한 탄핵 사유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윤 당선인이 다음달 10일 취임 후 국무회의 심의 의결 후 국민투표 실시를 강행하더라도 법적 정당성 논란은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헌법 개정안을 제외한 헌법 제72조의 '중요 정책'과 관련해 국민투표를 추진한 적은 단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 시절인 1962년, 1969년, 1972년, 1975년, 1980년, 1987년 등 헌법 개정안 관련 6차례 국민투표가 선례로 남아 있을 뿐이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와 진지한 논의 없이 국민투표 카드가 나왔다는 점도 실현 가능성을 낮게 보는 이유 중 하나다. 이날 첫 주자로 나섰던 권성동 원내대표는 필리버스터 직후 기자들과 만나 "국민투표 그 부분은 잘 모른다"며 "(필리버스터에) 들어가기 전에 얘기를 들었는데 그냥 정치적 주장으로 그렇게 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