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심지어 1개월 단위로 계약을 반복하는 '초단기 계약' 관행이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용 등 취약 노동자에게 더 깊이, 집요하게 파고든 것으로 나타났다. 갈 곳이 없어, 호소할 곳이 없어 계약 요건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에 이들은 놓여있었다.
#. '생애 마지막 직장'으로도 불린다는 경비노동자.
고령의 노동자가 집중된 곳이다. 황혼에 맞닥뜨리는 열악한 노동환경은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줄임말인 '임계장'으로 일컬어져 알려지기도 했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는 절박함은, 석 달마다 재계약을 해야 하고 언제 계약이 끊길지 불안해도 목소리 내기 어렵게 만든다고 한다.
대전의 한 아파트에서 근무하고 있는 경비노동자 A씨는 "3개월, 심지어 1개월짜리 계약을 맺는 데도 있지만, 억울함을 들어줄 곳도 없거니와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용역업체, 입대위, 입주자 누구와도 불편한 관계를 맺어서는 일자리를 지속할 수 없다는 생각에 속으로 삭혀야 한다"고 털어놨다. A씨는 4년간 근무하는 사이 동료 경비원 수가 3분의 1이 줄었다고 했다.
충청남도노동권익센터가 충남지역 경비노동자 432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 결과 2020년 기준 6개월 이하 계약을 맺은 노동자는 응답자의 4~5명 중 1명꼴(23.3%)로 나타났고 15.6%는 3개월 이하의 계약을 맺는다고 답했다. 충남 아산지역에서도 경비노동자의 34.2%가 6개월 이하 쪼개기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장에서는 최근에는 3개월 근로계약이 더욱 심화됐다고 말하기도 한다.
#. 새벽배송 노동자 B씨는 업체와 '넉 달짜리' 계약을 했다.
업체가 요구해 배송차량까지 자비로 마련했지만 넉 달 뒤에 계약이 해지돼도,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B씨와 업체가 쓴 계약서에는 계약 만료일 2개월 전까지 갱신 거절이나 계약조건 변경 의사를 밝힐 수 있지만, 그 '사유'에 대해서는 따로 명시돼있지 않다. B씨 입장에서는 계약이 지속되지 않더라도 그 이유를 들을 수 있을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불안한' 계약서다.
B씨는 이 같은 상황을 노동당국에 호소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특수고용직 신분이기 때문이다.
#. 회사와 '매달' 계약을 갱신하는 방문점검원 C씨.
정수기를 비롯한 생활가전을 점검하고 관리해주는 방문점검원들은 월 단위로 계약을 다시 맺고 있다고 했다.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걱정을 매달 반복하는 것이다.
이들 역시 현재 노동자가 아닌 독립적인 사업자로 여겨지는 특수고용직이다. 기본급 없이 점검 계정(담당 가전제품 수)에 따른 수수료를 받고 있다.
방문점검원 C씨는 "우리를 독립적인 사업자라고 하지만 점검 계정은 지국 관계자를 통해 받고 있다"며 "최소 계정 수에 미치지 못하면 해약이 되게끔 돼 있어, 배정되는 건수가 수수료는 물론 계약 갱신도 좌우하는 실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들은 최근 고용 안정 보장과 처우 개선 등을 외치는 파업에 나서기도 했다.
현행법상 계약 기간에 대한 하한은 따로 규정돼있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법적으로는' 이 같은 근로 형태를 제재하기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기적이지 않은' 업무에 대해서도 단기 계약을 반복하는 경우가 확산되고 있고 특히 코로나19 이후 심화된 양상을 보이는 만큼 사회적 관심과 논의가 이뤄져야 되는 부분이라고 입을 모았다.
충남노동권익센터의 방효훈 센터장은 "이 같은 노동 조건이 말이 되느냐는 생각을 하면서도 계약서에 서명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은 그만큼 그분들이 다른 노동자들에 비해서도 사회적 약자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며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방 센터장은 "당초 프로젝트성이나 예외적으로 필요한 상황에 적용돼야 하는 단기 계약이 상시 지속적인 업무에서 나타나면서, 고용을 불안하게 만들고 더 열악한 위치에 처하게 만듦으로써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측면까지 나타나고 있다"며 "입법 강화와 함께 지방정부 차원에서도 이 같은 실태를 적극적으로 바라보고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