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이어 '네불라'가 넘버 '인생은 내 키만큼'을 부른다. "인생은 내 키만큼 깊은 바다 / 파도는 계속 쉼없이 밀려 오는데 / 나는 헤엄칠 줄을 몰라 / 제 자리에 서서 뛰어 오른다" 인생의 파고 앞에서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주저앉고 일어서길 반복했을 '네불라'의 삶이 그려져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
'쇼맨'은 72세 할아버지 '네불라'와 24살 청년 '수아'가 사진을 매개로 소통하면서 '진짜 인생'을 찾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펼쳐낸다. 120분간 '네불라'의 인생 발자취와 '수아'의 빈틈 없는 삶을 들여다보면 괜시리 눈물이 나온다.
과거 독재자 '미토스'의 대역배우로 활동했던 기억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소중하게 여기는 '네불라'와 그런 '네불라'를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를 통해 깊게 감춰뒀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직시하는 '수아'. 두 사람의 삶은 다른 듯 닮았다. 성실하게 자기 역할에 충실했지만 주체성을 상실한 삶을 살았다는 것.
'네불라'는 독재자 '미토스'를 대신한 죄로 수감생활을 겪으며 그가 저지른 만행을 직면하고 죄책감에 시달리지만, 독재체제 아래에서는 자기의 신념을 관철하기 보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빈틈 없이 / 빈틈 없이 / 빈틈 없이 / 누구도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수아가 부르는 넘버 '빈틈 없이'는 '굿 걸'이라는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내면의 외침이다.
'쇼맨'은 흥행 보증수표인 '한이박 트리오'가 4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스테디셀러 뮤지컬 '여신님이 보고 계셔'와 '레드북'를 협업한 한정석이 작·작사, 이선영이 작곡·음악감독, 박소영이 연출을 맡았다. 촘촘하게 잘 짜인 서사와 튀지 않으면서 감정의 농도를 끌어올리는 넘버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네불라' 역은 윤나무와 강기둥, '수아' 역은 정운선과 박란주가 더블캐스팅됐다. 네 배우의 탄탄한 연기 내공이 색깔이 분명한 캐릭터와 만나 시너지를 낸다. 어떤 조합으로 봐도 만족할 듯 싶다. 주변의 기대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은 현대 사회의 '쇼맨'에게 관람을 추천한다. 아울러 '네불라'와 '수아'에겐 "그래도 가짜 인생은 없다"는 말을 건네고 싶다. 국립정동극장에서 5월 15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