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국 남자농구의 미래를 기대하는 농구 팬의 이야기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이름이 하나 있었다. 바로 강병현(37). 중앙대 농구의 전설이자 KBL의 대표적인 인기 스타였던 '장신 가드'가 정든 코트를 떠난다.
창원 LG는 13일 강병현이 14년의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구단의 전력분석원 및 스카우트로 새로운 농구 인생을 출발한다고 밝혔다.
강병현은 몇년 전 KBS 예능 프로그램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에서 현주엽 전 감독을 비롯한 LG 선수단과 함께 출연해 든든한 선배이자 다정한 남편으로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그는 현역 시절 코트에서 더욱 빛나는 존재였다. 대학 시절부터 한국 남자농구의 미래를 이끌어 갈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중앙대는 2006년 11월부터 2008년 11월까지 대학농구 무패행진의 전설을 썼다. 무려 52연승을 질주했다. 중앙대는 오세근-김선형-함준후(개명 전 함누리) 3인방의 힘으로 연승 기록을 52경기까지 늘렸는데 전설의 시작을 이끌었던 주역 중 한 명이 바로 강병현이었다.
193cm의 장신 가드 강병현은 화려한 아마추어 경력을 인정받고 2008년 KBL 신인드래프트 전체 4순위로 인천 전자랜드의 지명을 받았다.
전자랜드는 대학농구의 '얼짱' 스타를 영입했다며 들떠있었다. 1년 전 영입한 정영삼과 함께 화려한 가드 라인을 구축하면서 농구 팬들의 관심도 컸다.
전자랜드는 2008-2009시즌 도중 전주 KCC로부터 서장훈을 영입하는 빅 딜을 단행했다. 2대3 트레이드였는데 KCC가 '국보급 센터'를 내주고 데려온 선수 3명 중 핵심은 바로 강병현이었다.
당시 전자랜드를 이끌었던 최희암 전 감독은 "현금(서장훈)을 받고 어음(강병현)을 내줬다"는 말로 해당 트레이드를 설명했다.
강병현은 KCC로 이적하자마자 두각을 나타냈다. 2009-2010시즌부터 4시즌 연속 평균 두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이 기간에 함께 한 하승진, 전태풍 등과 함께 박진감 넘치는 플레이 그리고 끈끈한 우정을 과시하며 KCC의 인기 고공행진을 견인했다.
현역 시절 '농구 대통령'으로 불렸던 허재 당시 KCC 감독은 신장과 기술, 덩크도 자유자재로 구사할 정도의 운동 능력을 두루 갖춘 강병현을 무척 아꼈다.
2011년 1월 창원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KCC와 창원 LG의 경기.
허재 KCC 감독은 팽팽하던 3쿼터 막판 과감한 전술을 시도했다. 강병현에게 '아이솔레이션' 1대1 공격을 지시한 것이다. 상대는 LG의 귀화 혼혈선수 문태영이었다. 문태영은 반칙 개수가 다소 많은 상태였다.
외국인선수가 주득점원으로 득세하던 당시 흐름에서 국내 선수의 '아이솔레이션' 공격은 보기 드물었다. 강병현은 첫 번째 공격에서 문태영을 제치고 골밑 레이업을 넣었다.
KCC는 다시 한 번 '아이솔레이션'을 지시했다. 문태영에게는 직전 수비에서 돌파를 허용한 잔상이 남아 있었다. 이를 파악한 강병현은 문태영이 자신을 강하게 압박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과감하게 3점슛을 던졌다. 공은 깨끗하게 림을 통과했다.
강병현이 연속 득점을 몰아치면서 흐름이 KCC 쪽으로 넘어왔고 결국 KCC는 LG를 상대로 승리를 거뒀다.
이처럼 강병현은 KCC에서 승자로 우뚝 섰다. 2008-2009시즌과 2010-2011시즌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강병현의 2011년 챔피언결정전 활약은 굉장했다. 강병현은 원주 동부를 상대로 5차전 막판 역전을 견인한 결정적인 3점슛을 넣었다. 마지막 6차전에서는 종료 35초를 남기고 2점 차 열세를 1점 차 리드로 뒤바꾸는 '위닝 3점슛'의 주인공이 됐다.
챔피언결정전 MVP는 하승진의 몫이었지만 강병현은 시리즈 평균 10.8득점, 3.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우승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이후에도 강병현의 활약은 계속 됐다. 2014년 안양 KGC인삼공사로 트레이드된 이후에도 KBL 정상급 스윙맨의 자리를 지켰다. 2016-2017시즌에는 개인 통산 세 번째 우승반지를 차지했다.
하지만 전성기가 그리 길지 않았다. 부상과 부진이 반복됐다. 고질적인 허리 부상이 있었고 2016년에는 아킬레스건 수술을 받았다. 그는 2018년 LG로 자리를 옮겨 후배들을 이끄는 베테랑의 역할을 하다가 2021-2022시즌을 마지막으로 정든 코트를 떠나기로 했다.
강병현은 KBL 소속팀과 대표팀 사령탑이 포인트가드로 활용하려는 시도를 여러 차례 했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난 선수였다. 아마추어 시절부터 뛰어난 운동 능력과 기술로 주목 받았다. 당시는 물론이고 지금도 보기 드문 유형의 스윙맨이었다.
수려한 외모와 밝은 성격으로 코트 안팎에서 팬들의 사랑도 많이 받았던 선수다. 다만 부상 때문에 현역 시절을 더 꽃피우지 못한 부분이 두고두고 아쉬움으로 남는다.
강병현은 13일 구단을 통해 "그동안 응원해주신 팬들에게 선수로서 더 좋은 모습과 성적을 보여드리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크다. 저의 미래를 고민해 주시고 기회를 주신 구단에 감사드리며 선수가 아닌 다른 자리에서 열심히 공부해 구단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은퇴 소감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