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필름을 찾아 홍 감독의 마지막 행적을 따라가던 지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모자 쓴 여성의 그림자와 함께 그 시간 속을 여행하게 된다. 그리고 어쩐지 지완은 희미해진 꿈과 영화에 대한 열정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다.
한국 1세대 여성 영화인, 그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여성 영화인의 영화와 삶에 대한 오마주(존경, 경의를 뜻하는 프랑스어)를 통해 이정은은 다시 한번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희망, 따뜻한 기운을 선사한다. 2019년 영화 '기생충'으로 전 세계를 사로잡으며 전 세계 K-콘텐츠 열풍의 시작점을 만든 주역 이정은이 왜 '오마주'를 선택했는지, 그리고 자신과 같은 여배우와 여성 영화인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정은은 왜 어느 한 곳에 속하고 싶지 않다고 했나
▷ '기생충' 이후 굵직한 영화들로부터 많은 러브콜을 받았을 거 같은데, 독립예술영화인 '오마주'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사실 블록버스터 영화가 오기도 했었는데, 그걸 꼭 제가 해야 한다는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영역이 넓은 배우들이 많이 있고, 또 오히려 인물로 따지면 '오마주' 속 인물이 더 재밌겠다고 느꼈어요. 단순한 거예요. 아카데미를 다녀와서 왜 주말드라마를 하냐는 분도 있었는데, 양희승 작가님이 쓴 '한 번 다녀왔습니다' 속 인물이 재밌어서 선택했거든요. 나중에 보니 그게 주말드라마더라고요. '오마주'도 독립영화라는 걸 최근에 인식하고 있어요.
▷ 이정은씨야말로 여러 플랫폼을 넘나드는 배우인데요. 요즘 배우들은 넷플릭스와 같은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를 선호하기도 하는데, 이정은씨에게는 플랫폼이 작품을 선택하는데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궁금합니다.
사실 배우들이 연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늘리려는 욕심은 다 있는 거 같아요. 그게 OTT일 수도 있고요. 그런데 사실 전 독과점을 싫어합니다. (웃음) 제가 늘 방향성을 잡을 때, 넷플릭스에서 작품을 하면 그다음은 다른 곳에서 하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계속 넘나들며 어느 한 곳에 속하지 않는 활동을 해야 하지 않나, 개인적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움직이려고 해요. 후배들에게도 편중되지 않게 채널을 다양하게 오가는 게 좋지 않냐고 이야기해요. 그래서 각 플랫폼이 더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게끔 말이죠. 후배들에게도 권해주고 싶은 지점이에요.
▷ '오징어 게임' 등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는데요. 사실 이러한 K-콘텐츠의 세계적인 인기의 시작은 영화 '기생충'입니다. 지금의 상황을 보면 '기생충'의 주역 중 한 사람으로서 뿌듯한 마음도 있을 거 같습니다.
제가 우연히 해외에 나갈 일이 있어서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배우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 친구들이 너무 자랑스럽고 또 이야기할 때 그 기운이 뻗쳤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에서는 물론 많은 배우가 여러 채널에서 다양한 연기를 보여주고 있지만, 외국에서는 한국 가정, 가족 이야기를 해본 적 없는 배우가 더 많은 거예요.
그러니까 살인자라거나 특이한 역할만 하다가 가정에서 흔히 밥을 먹고, 엄마와 아들 사이 갈등하는 역할을 이제 할 수 있다는 기대감? 이런 거에 도화선이 됐다는 생각에 뿌듯했어요. 안보다 밖에서 그런 움직임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거 같아요.
여성 영화인 이정은이 후배 여성 영화인에게 건네는 응원
▷ '오마주'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면, '오마주'에서 이제는 노인이 된 1세대 여성 편집기사 이옥희(이주실)가 지완에게 힘주어 "자넨 끝까지 살아남아"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지완뿐 아니라 여성 영화인, 그리고 모든 여성을 향해 전하는 위로 같았거든요. 이처럼 지완이자 이정은으로서 위로받은 대사가 있을지 궁금합니다.
저도 그 대목에서 되게 위로받았어요. 끝까지 살아남으라는 게 1등을 하라는 게 아니라, 좋아하는 일이고 열정을 바쳤던 것이라면 그 일의 완결성을 가지라고, 그러기 위해 살아남으라고 하는 말 같았거든요. 여성뿐 아니라 어떤 직종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힘을 주는 이야기라 생각해요.
그리고 좀 더 앞에 있는 장면에서 길어봐야 1분 될까 말까 한 필름을 지완이 찾았잖아요. 저는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배우로서 연기할 때도 내가 충실해야 할 순간이 8초, 거기서 1초 더 붙고, 또 더 붙어서 1분이 되고 30분이 되는데 그런 시간이 중요해요. 그런 것처럼 어떤 업적 혹은 어떤 감독이 만든 작품에서 잃어버린 1분이라도 찾아낼 수 있다면 가치 있는 거 같아요. 이에 관해 이야기하는 대목도 좋았어요.
▷ 극 중 지완처럼 여성 배우로서 고비를 겪는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인가요?
가장 좋을 때 불안도 같이 오는 거 같아요. 사실 현장에서 제 나이대의 선배님들이 역할을 하는 걸 잘 못 보는 거 같아요. 특히 여성 연기자들은 극에서 많이 쓰이는 걸 못 보는 거 같아요. 기호에 의해서도 사회 전반에 문제에 의해서도 젊은 사람 이야기에 치중되다 보니 그런 거 같아요. 그래서 영화 속 지완이 가진 문제가 시간 차이만 있을 뿐이지 곧 저한테 다가올 문제라 생각해요.
'오마주'에도 나오지만 옛날에는 여자가 아침부터 편집실에 들락날락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고 해요. 자기검열도 심하다보니 담배 피는 장면이 날아가는 것처럼 검열이 우리가 생각하는 기준보다 다른 쪽으로 심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어요.
지금은 검열이란 부분이 많이 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한편으로는 보수적인 생각이 있지 않나 해요. 그래도 스태프 비율에서 여성의 비중이 높아져서 현장에서 불합리함보다는 동료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멋있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는 거 같아요.
▷ 영화에서 지완이 보여준 모든 모습과 이야기는 많은 사람에게 위로와 용기를 전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같은 여성 배우, 여성 영화인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가요?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고 생각해야 하는 거 같아요. 서로 의지하거나 도와주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어요. 그 속에서 각별하게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지 이야기하고 서로 힘이 되어줘야 한다고 봐요. 후배 여성 영화인의 영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많이 가져야 해요. 영화 '세자매'를 봤는데, 너무 좋았거든요. 그런 영화를 응원해주고, 보러 가주고, 홍보도 해주고, 그런 게 중요한 거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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