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터뷰]'오마주' 감독이 본 1세대 여성감독 그리고 이정은

영화 '오마주' 신수원 감독 <상> '오마주'의 시작에 관하여

영화 '오마주' 신수원 감독. 준필름 제공
그간 가장 현실적인 소재로 확고한 주제 의식과 독보적인 스타일을 구축하고, 뚜렷한 개성을 갖춘 여성 캐릭터들을 섬세하게 그려내며 한국 대표 여성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신수원 감독. 그가 6번째 장편 영화 '오마주'로 돌아왔다.
 
신 감독의 신작 '오마주'는 박남옥, 홍은원 감독과 같은 여성영화인이 불모지였던 시절에 활동했던 한국 영화의 1세대 여성 감독을 작품 소재로 한다. '오마주'는 꿈을 향해 도전해왔던 용감한 선배 여성 영화인들에 대해 영화로서 오마주(존경, 경의를 뜻하는 프랑스어)하고 러브레터를 보낸다.
 
'오마주'는 비단 여성 영화인만의 영화가 아니다. 주인공인 중년 여성 감독 지완(이정은)을 통해 영화인과 예술인, 그리고 세상의 모든 꿈 꾸는 이에게 보내는 위로와 격려의 러브레터이기도 하다. 지난 18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신수원 감독을 만나 '오마주'의 시작은 물론 배우 이정은에게 '첫 단독 주연'을 맡기게 된 이유 등을 들어봤다.

영화 '오마주' 스틸컷. 준필름 제공
 

칼 없이 전쟁터에 섰던 1세대 여성 영화감독

 
▷ '오마주'를 통해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나게 된 소감도 남다를 거 같다.
 
'오마주'를 크랭크업 한 지 1년 반이 됐다. 전주영화제에 갔을 때 극장에서 봤는데, 관객과 함께하는 게 소중하고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오마주'는 극장에 관한 영화인데, 극장에서 개봉할 수 있어서 안심인 거 같다.
 

▷ 지난 2011년 MBC 창사 50주년 특별기획 다큐멘터리 시리즈 '타임-영화감독 신수원의 여자만세'에서 카메라를 든 여자들의 이야기를 가지고 지난 50년간 여성의 의식과 삶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보여줬다. 당시 다큐멘터리에서 3편의 영화를 만든 홍은원 감독을 다뤘는데, 홍 감독의 어떤 부분이 영화 '오마주'로까지 이끌었나?
 
나는 사실 당시 여성 감독이 존재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왜 난 몰랐나 싶었다. 1960년대면 여자들이 정말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얼마나 힘들게 살았겠나. 그럴 때 여성 영화감독을 했다는 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심정이 마치 남자들만 있는 세계에서 칼 없이 전쟁터에 서지 않았을까 싶다. 여자가 담배 피우면 돌을 던졌다는 말도 있던 시절이다. 그런 시절에 여자 감독으로 살았다는 게 굉장히 궁금했고, 그분의 고뇌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했다.
 
▷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며 인상적이었던 것들이 '오마주'에 녹아났을 거 같다.
 
굉장히 많은 영향과 영감을 줬다. 다큐를 찍으면서 힘을 얻은 것도 있다. '이런 분들이 계셨구나' '이렇게 살아남은 분이 계시는구나' 하면서 정말 멘토를 만난 느낌이었다. 그분들의 열정, 에너지가 전달되며 '오마주'를 만들게 됐다.
 
또 당시 홍은원 감독의 단짝 친구였던 1세대 여성 편집기사인 김영희 선생님이 계신 부산에 가서 3일을 같이 지냈다. 어릴 때 편집실에 갔는데 실제로 소금을 뿌렸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편집실에 갔다는 건 일에 대한 애정이 있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그분에게서 꿈과 열정, 애정을 느꼈다.
 
그리고 일이 끝나고 난 후 인사드리고 나오는데 선생님이 내 손을 잡으면서 "신 감독은 계속 영화 만들어. 계속 만들었으면 좋겠어"라며 응원해주셨다. 영화에서는 그걸 감상적인 장면으로 만들었는데, 그때 내 손을 잡아주셨을 때의 촉감, 따뜻함이 아직도 남아있다.


영화 '오마주' 스틸컷. 준필름 제공
 

배우 이정은을 '아까운 배우'라 말한 사연


▷ 이정은씨가 왜 이제야 단독 주연을 맡았나 싶을 정도로 섬세하게 지완을 표현하며 멋진 연기를 보여줬다. 어떻게 '오마주'에 함께하게 됐나?
 
정은씨는 친분이 있거나 한 번도 만나본 적 없이 작품으로만 봤었다. 영화 '미성년'에 잠깐 등장했지만 아우라가 느껴졌고, '기생충'에서도 날 것 같은 연기를 한다. '오마주'는 중년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인데, 영화에서 활동하는 중년 여성 배우가 많지 않다.
 
여러 배우를 생각하다가 평범해 보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감독이라고 해서 대단한 카리스마 있는 게 아니고 똑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생활감 있는 연기를 잘하는 배우로 가고 싶었고, 정은씨가 그런 부분에서 어울릴 거 같았다. 그래서 시나리오 전하게 됐다.

 
▷ 다른 작품을 통해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건 알았지만, 작품을 같이 하면서 발견하게 된 이정은씨만의 장점은 무엇인가?
 

사실 정은씨가 맡은 대부분의 역할이 희화화된 부분이 많다. 실제로 보면 그러기엔 되게 아까운 배우다. 정적인 연기도 매우 잘한다. 부지영 감독의 단편 '여보세요'(2018)를 보면 정적인 연기를 선보이는데, 가만히 있을 때 무표정한 얼굴이라든지 예민한 표정 등을 보여준다. 그런 부분이 되게 좋았다.
 
'오마주'를 하면서 이정은이란 배우가 너무 한정된 캐릭터들로 연기를 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가 병실에서 수술 직전에 창문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그 장면은 1차 편집 때는 뺐는데 너무 좋아서 다시 넣었다. 인물을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인 거 같다. 그리고 잃어버린 '여판사' 필름을 발견했을 때 표정은 찍을 때 굉장히 좋았다. 정말 여러 가지를 하면 좋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드는 배우다.


영화 '오마주' 스틸컷. 준필름 제공
 

"괜찮아"라고 말하는 영화

 
▷ 영화를 보면 적당한 유머와 판타지가 녹아들어서 지완의 무겁다고 할 수 있는 상황에 마냥 짓눌리지만은 않아서 좋았다. '오마주'를 연출하면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두고자 했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지완이라는 인물은 어떻게 보면 내레이터처럼 과거 인물을 현재에 드러내는 메신저 역할이다. 물론 지완이의 고민이 있긴 하지만, 거기만 파고들며 시작하면 이야기가 다른 데로 갈 거 같았다. 원래 1차 편집본에는 지완의 고민이 들어간 장면이 더 있었는데 걷어냈다. 지완이의 수많은 고민이 걸어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게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래서 촬영할 때도 걷는 장면을 넣었고, 촬영 감독님과 이런 모습을 담아내는 걸 많이 이야기했다.
 
어떤 분은 영화를 보고 힐링됐다고 하셨는데, 그걸 느껴줘서 고마웠다. 어떤 분은 엔딩을 보고 지완이 너무 우울한 거 아니냐고 하시는데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가 꼭 뭔가 성공하고, 결말에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거짓말이 되고 싶지 않았고, 우리의 리얼한 삶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짧은 기간 동안 지완의 심리적인 변화를 따라가고 싶었다. 힘들다가도 털털 털고 '괜찮아, 내일 또 어디 나가면 돼' 이런 느낌을 담아내고자 했다.

 
▷ 영화에서 폴란드 시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 '내가 잠든 사이에'가 등장한다. 영화와도 어울리는 시라는 생각을 했는데, 원래 좋아하는 시인이었나? 많은 시인 중 쉼보르스카의 시를, 그것도 '내가 잠든 사이에'를 넣게 된 과정에 관해 이야기를 듣고 싶다.
 
집에 있는 시집을 다 꺼내서 봤다. 내가 시를 지어볼까 했는데, 내가 쓴 시는 너무 유치해서 못 쓰겠더라. 시나리오 쓰면서 집에 있는 시집들을 계속 들여다봤는데 쉼보르스카의 시가 딱 어울리더라. 원래는 긴 시인데 필요한 부분만 발췌했는데, 장면과 너무 어울리는 거 같다. 특히 그 문장이 좋았다. '서랍 속을 샅샅이 뒤졌다. 여행 가방 속에서 끄집어냈다.'
 
▷ 예비 관객들을 위해 '오마주'가 가진 매력을 이야기해달라.
 
코로나19 때문에 힘들고 지쳐 있겠지만, 극장에 와서 '오마주'를 통해 조금이나마 따뜻함을 느끼고 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오마주'는 영화에 대한 향수, 여성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극장에 관한 이야기다. 영화를 사랑하는 분이 많이 오셔서 극장에서 봐주시면 좋겠다.
 
<하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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