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대학·검찰 동기인 이완규 법제처장(61·사법연수원 23기)의 역할론이 주목받고 있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대응과 새 정부의 공약 현실화 국면 등 중요한 길목마다 대통령 의중을 파악하고 막힘없이 일을 진행시키는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는 평가다. 법조계에서는 한동안 윤 정부의 법제처 의존도가 높을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대통령령이나 규칙 등 하위법 개정을 남발할 경우 감수할 위험 요소도 적지 않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이 처장의 존재감은 법무부가 지난 24일 한동훈 장관 직속의 '인사정보관리단'을 신설을 발표하면서 드러났다. 이는 윤 대통령의 공약인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 폐지에 따른 후속조치다. 과거 민정수석실이 담당한 인사검증 업무 일부를 법무 장관 직속 기구에 이양한 것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인사정보관리단장 직제를 신설하고 법무 장관에게 인사 정보의 수집·관리 권한을 위탁하는 내용의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일부개정령안', '공직후보자 등에 관한 정보의 수집 및 관리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안'이 31일 국무회의에서 논의됐다. 이들 대통령령은 지난 24~25일 이틀간 입법예고를 거쳐 법제처 심사와 차관회의 등 국무회의 상정 전 필요한 절차를 이미 마친 상태다. 법안과 달리 시행령 개정안은 국무회의 심의 후 곧바로 공포·시행된다. 작은 지청 단위의 장관 직속 사정기관을 출범하는데 정책 발표와 법률 검토, 실제 가동까지 단 일주일이 걸린 셈이다.
이런 속전속결 처리는 이 처장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우선 통상 40일 정도인 입법예고 기간을 이틀로 확 줄이려면 법제처장 허락이 필요하다. 현행법상 입법예고는 사안이 긴급하거나 기타 사유가 있을 경우에만 법제처장과 협의를 통해 줄일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지난 2021년 6월 검찰의 직접수사를 축소하기 위해 내놓은 조직개편안(검찰청 사무기구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령안)도 입법예고를 단 5일로 줄여 법조계 안팎에서 '꼼수'라는 뭇매를 맞았었다. 법제처는 입법예고 하루 만인 26일 법률 심사를 마쳤고, 다음날인 27일 차관 회의에 곧바로 상정했다.
법제처는 새 정부의 부동산 공약 중 재건축 규제 완화와 관련된 부분에서도 역할을 해냈다. 법제처는 지난 27일 소규모주택정비법상 토지 소유자가 직접 시행하는 정비사업에 초과이익환수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법령해석을 내놨다. 소규모 정비 사업의 재초환 부담을 줄여주는 내용이다.
정부는 지난 4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당시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완화와 함께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재초환) 부담 완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언했다. 특히 재건축 부담금을 줄여주고 부과 방식도 전면 손질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장 과열 등으로 재건축 안전진단 규제 완화 속도 조절에 나서면서 법 개정이 필요없는 시장 부양책을 선택적으로 추진하는 모양새다.
법조계에서는 여소야대 국면에서 윤석열 정부 초기의 주요 정책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윤활유 역할을 이 처장이 한동안 해낼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검수완박 후속 작업 등 핵심 사안에서 정부 의지를 담아내는 과정에서 법제처가 '운용의 묘(妙)'를 살릴 것이라는 평가다.
다만 한편으로는 행정부 입법의 '문지기(게이트키퍼)' 역할을 해야할 법제처가 되레 충분한 심사·검토 없이 정권의 조력자를 자처하는 것이 우려스럽다는 시각도 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정부 입맛에 맞는 시행령 개정이나 법령해석을 남발할 경우 상위법과 충돌할 위험이 있고 거대 야당과의 협치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