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언제까지 발달장애인 부모는 죄인이 되어야 하나

발달장애 자녀 양육 끝 극단선택…수년째 비극 되풀이
'돌봄 부담→경제적 부담→가정불화' 반복되는 악순환
24시간 지원 체계 구축 요구에 무관심했던 사회·국가


지난 31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49재 기간 집중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현수막을 들고 눈을 감고 있다. 이들은 지난 23일 숨진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49재가 끝나는 7월 10일까지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을 위해 집중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발달 장애인 가정 참사 또 반복"
"장애인 가정서 잇따라 비극, 자녀와 함께 극단 선택"


인천에서 60대 엄마 A씨가 중증 장애를 가진 30대 딸을 수면제를 먹여 살해한 뒤 자신도 뒤를 따르려다 실패해 경찰에 체포됐다. 서울에서는 또 다른 40대 엄마가 6살 발달장애 아이와 함께 아파트 화단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지난달 23일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이다.

기사 제목에 붙은 '또, '되풀이' 등이 보여주듯 이 참극들은 우리에게 낯선 일은 아니다. 약 석 달 전 경기 시흥에서는 50대 엄마가 중증 발달장애를 지닌 딸을 살해한 뒤 극단 선택을 시도한 일이 있었다. 갑상선암 말기 환자였던 엄마는 거동이 불편해 별다른 수입은 없었고 "다음 생애에는 좋은 부모를 만나거라"는 내용이 적힌 유서를 남겼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담양에서는 40대 가장이 장애가 있는 아들과 우울증을 겪는 80대 노모와 함께 숨지는 일도 있었다. 대상만 다를 뿐 발달장애 가정의 비극적인 결말은 이렇게 매번 반복됐다.

비극의 벼랑으로 이들을 몰아세운 각 가정의 현실은 무척이나 닮아 있다. 자녀가 상시적인 돌봄 없이는 홀로 서기가 어려운 발달 장애인으로 태어나며 대개 부모는 오롯이 생계에만 집중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인다. 최소 한쪽은 경제활동 포기를 반강제되는 셈이다. 실제로 2020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가 발달장애 부모 117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부모 5명 중 1명은 자녀 지원을 위해 한쪽이 직장을 그만뒀다고 답했다.

돌봄 부담은 그대로인데 수입이 줄면서 경제적 손실이 커진다. 이는 부부 갈등과 같은 가정불화로까지 이어져 극단적으로는 끝내 한 쪽이 떠나는 경우도 적잖다. 위 사례 중 시흥의 50대 엄마 또한, 과거 남편과 이혼해 딸과 단둘이 살며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렸다고 한다. 돌봄 부담이 경제적 부담으로, 경제적 부담이 가정불화로, 이는 다시 돌봄 부담으로 회귀하는 '악순환의 굴레'에 빠져드는 것이다.

연합뉴스

악순환은 반복될수록 그 위협의 강도도 세져 일정 시점부터는 삶을 본격적으로 벼랑 끝으로 몰아붙인다. 지속된 빈곤에 따르는 필연적인 결과인 '질병'까지 부모 또는 자녀에 찾아오며 벼랑 끝에서 가까스로 버텨온 이들은 결국 손을 놓게 된다. 위의 발달장애 가정들이 겪은 공통된 과정과 결말이기도 하다. "어떻게 자식을 죽일 수 있느냐"는 너무 당연한 비난과 원망조차 이들 앞에서는 쉽게 나오지 못하는 이유다.

매년 반복된 발달장애 가정의 비극의 책임이 이들에게만 있을 리 없다. 국가와 사회의 관심과 손길은 늦었거나 부족했고 심지어 아예 없기도 했다. 두 가정의 극단 선택 두 달 전부터 장애인 단체들은 오로지 가정에 맡겨진 장애인 부양 부담을 국가가 분담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했다.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 체계 구축이 대표적이다. 지난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전후해서는 전국 각지에서 발달장애 부모와 당사자들이 삭발식부터 단식농성까지 처절한 투쟁을 벌였지만 돌아온 건 무관심이었다.

국회사진취재단

끝내 지난달 29일에서야 국회 본회의에서는 발달장애인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됐다. 하지만 이조차 통합돌봄서비스를 제공할 법적 근거 마련 정도가 의의가 있을 뿐 발달장애인의 오랜 요구와는 거리가 있다. 대상도 합의된 정의가 없는 '최중증 발달 장애인'에 한정됐고 24시간 지원 체계 구축과 관련해서 구체화된 타임라인은 없다. 법이 공포 후 2년 뒤 시행되는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논의도 아직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
 
발달장애 딸을 죽인 60대 엄마가 지난달 25일 구속 심사를 앞두고 남긴 "같이 살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는 울먹임은 그간 수면 아래에 있던 발달장애 돌봄 실태에 경종을 울렸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딸의 목숨을 제 손으로 끊은 엄마는 스스로의 죄책감에 더해 곧 '살인죄'라는 잔혹한 죄명으로 다시 한번 법적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선택을 했던 선례들처럼 말이다.

딸을 장애시설에 맡길 경제적 여력조차 없던 점도, 30년 동안 돌봤지만 병마 앞에 손을 놓았다는 점도 살인을 용인할 이유가 될 수야 없겠다. 다만 모두의 외면 속 발달장애 자녀의 돌봄을 홀로 떠맡은 데 따른 참극에 이어 그 결과에 대해서 또다시 홀로 책임을 진다는 점에서 뒷맛이 쓰다. 발달장애 자녀는 피해자가 되고,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부모가 가해자가 되는 비극적인 사회를 언제까지 방치해야 할까. 가정에만 떠맡겨진 발달장애인의 돌봄을 국가가 공동 책임지는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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