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여름가을겨울이 꿈꾸는 '지속 가능한' 음악 세계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이 '브라보 마이 라이프'(Bravo My Life)의 20주년을 맞아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CJ 아지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김수정 기자
"조금 더 음악적이고도 지속 가능한, 재생산이 가능한 그런 세상을 한 번 열어보겠습니다." (김종진)


밴드 봄여름가을겨울(김종진·고 전태관)이 2002년 발표한 앨범 '브라보 마이 라이프'(Bravo My Life)의 20주년을 맞아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CJ 아지트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김종진은 "봄여름가을겨울이 5집이 대중음악으로서는 마지막 LP였다"라며 "어디를 찾아봐도 LP 공장을 찾을 수 없을 때여서 미국에서 극소량 만들어 판매했는데, LP에 관해 무언가를 제시했던 앨범이다. 대중음악의 마지막 LP를 다시 이어준다는 의미에서 리셀(되팔이) 시장에서 굉장히 큰 가치를 갖게 됐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예를 들어 신발 리셀도 신고 즐기는 것보다 보고 팔고 거기서 생기는 부가가치가 있고 그것도 물론 가치 있고 즐길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LP 리셀에서) 음악이 사라져버리는 걸 안타깝게 생각했다. 음악 본질에 최선을 다해서, 현재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최고의 음질과 최고의 패키지를 만들어 제시해야겠단 생각으로 만들었다"라고 설명했다.

소속사에 따르면, 김종진은 이번 앨범을 위해 소장 중이던 20년 전 마스터 테이프를 두 달 동안 새로 믹싱했다. 사운드의 완성도를 높이고자 그동안 카펜터스, 마이클 잭슨, 스틸리댄 등의 앨범에 참여한 버니 그루만에게 마스터링과 바이닐 커팅을 의뢰했고, 블루노트로 유명한 RTI에서 스탬퍼 작업을 했다. 제작 전 음악 팬들과 검수용 LP를 최고급 하이파이로 청음하며 음질 테스트를 했다고도 덧붙였다.

발매 당시 국민적인 사랑을 받은 봄여름가을겨울의 최대 히트곡 중 하나인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포함해 '사랑하나봐' '갈망' '한잔의 추억' '웃으며 헤어지던 날' '롱 타임 노 씨'(Long Time No See) '인 더 시티'(In The City) '화해연가'(和解戀歌) 등 총 15곡이 수록됐다.

김종진이 지난 1일 발매된 '브라보 마이 라이프' LP를 들어 보이고 있다. 김수정 기자
이 중 김종진의 '원픽'은 '웃으며 헤어지던 날'이라는 연주곡이다. 그는 "열아홉 살의 정재일이 콘트라베이스를 쳤고 제가 클래식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를 쳤다. 안타깝게도 무엇을 예견했는지 모르겠지만 전태관은 연주에 참여하지 않았다. 2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면 '이 곡이 왜 만들어졌을까' '음악가의 삶에는 예지가 있나' 한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너무 많은 데이터가 들어 있지 않으니까 음값을 분석하기가 참 좋다. 너무 많은 데이터가 들어오면 (청자에게는) 안 들린다. 세 개의 악기가 쫙 차분하게 연주하니까 다 들리고 그 무드까지 즐길 수 있다"라고 추천했다.

김종진은 LP의 매력으로 '약간의 유격(裕隔, 기계 작동 장치의 헐거운 정도)'을 들었다. "결국 LP 시장이 발달하게 된 건 디지털이 주지 못하는… 음악으로 전하는 '열반의 문'이 닫혔지만 바이닐은 (그걸) 준다는 믿음 때문에 바이닐을 추구하게 된 것 같다"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디지털은 완벽하게 선명한데 LP는 약간 유격이 있다. 좀 선명하지 못하고 커팅 과정에서 소리가 좀 깎이는 부분도 있지만 음악적으로는 더 상상하게 할 수 있는 룸을 준 거다. 저는 그걸 '상상의 헤드록'이라고 표현한다"라며 "극한의 음질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완벽보다는 약간 부족한 음질에 상상력을 더하면 좋다는 걸 알고 진정한 음악 세계는 거기에 있다, 해서 바이닐이라는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라고 바라봤다.

LP 발매 후 기억에 남는 반응을 묻자, 데이식스 멤버가 LP를 샀다는 인증 사진을 보내온 것을 두고 "큰 힘이 됐다"라고 고백했다. 김종진은 "뮤지션이 다른 뮤지션의 음악을 듣는 게 이렇게 큰 감동이구나. 특히 후배 뮤지션, 전 세계에서 사랑받는 아이돌 밴드가 우리 음악을 들어준다는 게 이렇게 감사한 거구나 생각했다"라고 전했다.

지난 1일 발매된 봄여름가을겨울의 '브라보 마이 라이프' LP. 김수정 기자
'브라보 마이 라이프' 앨범의 LP 발매를 맞아, 봄여름가을겨울은 특별한 공연을 준비했다. 김종진은 "이번 콘서트는 매우 독특하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앨범에 들어있는 곡만 연주해 드린다. 앙코르가 있어도!"라며 "여러분이 공연에서 늘 듣길 원하는 곡을 연주하지 않고, 오로지 '브라보 마이 라이프' 앨범에 있는 곡만으로 공연을 구성한다. 한 시간의 미학을 한 번 시전해보겠다"라고 귀띔했다.

봄여름가을겨울은 드러머 전태관이 지난 2018년 세상을 떠나, 현재는 김종진만 남아 있다. 하지만 김종진은 "무대 위에 올라가면 저는 전태관씨가 늘 같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바로 음악의 힘이 아닌가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모든 예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데 있다. 그것은 예술가에게 더없는 위안이 된다'. 김종진은 헤르만 헤세의 이 말을 인용한 후 "살아있는 동안 저는 소비하는 것보다 창조하는 사람이 되는 게 목표"라며 "계속 창조의 원천이 되는 메시지와 에너지를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죽는 순간에도 음악을 하고 싶다"는 김종진은 오늘(15일) 서울 마포구 광흥창 CJ 아지트에서 '만원사례'라는 공연을 오후 4시와 오후 7시 총 2회차로 진행한다. '브라보 마이 라이프' LP 구매자에 한해 무료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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