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은 지난달 2일 권순찬 전 감독이 경질되는 등 극심한 내홍을 겪었다. 이후 한 달 넘게 감독직을 비운 상태에서 김대경 감독 대행 체제로 시즌을 치렀다.
어수선한 분위기에도 팀은 하나로 똘똘 뭉쳐 상승세를 달렸다. 권 전 감독이 떠난 뒤에도 11경기 8승 3패로 호성적을 거뒀다. 그 결과 지난 15일 2022-2023시즌 도드람 V리그 여자부 5라운드 페퍼저축은행전 승리 이후 1위에 올라섰다.
하지만 계속 감독직을 비워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흥국생명은 세계적인 명장 아본단자 감독 선임에 열을 올렸고, 지난 18일 계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아본단자 감독과 2024-2025시즌까지 동행하게 됐다.
1996년 이탈리아 리그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아본단자 감독은 이탈리아 대표팀 코치, 불가리아, 캐나다, 그리스 대표팀 감독을 연임했다. 또 라비타 바쿠(아제르바이잔), 페네르바체(튀르키예), 차네티 베르가모(이탈리아) 등 세계적인 클럽을 이끌었다.
튀르키예 리그 페네르바체 감독 시절 '배구 여제' 김연경(35·흥국생명)과 한솥밥을 먹기도 했다. 2013-2014시즌부터 4시즌 동안 페네르바체에서 김연경과 두 차례 리그 우승과 준우승, 유럽배구연맹(CEV)컵 우승 등을 함께 일궜다.
V리그 데뷔전을 앞둔 소감에 대해서는 "데뷔전을 앞두고 매우 감성적이다. 인생의 새로운 출발을 앞두고 있다"면서 "배구에서도 새로운 도전이다. 높은 수준의 팀과 미디어를 만나게 되서 매우 기쁘다"고 전했다.
앞서 다수의 팀을 지휘한 바 있는 아본단자 감독은 이번에 흥국생명 지휘봉을 잡으면서 8번째 팀을 맡게 됐다. 그는 "나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고, 새로운 배구 세계에 발을 들이고 싶었다"면서 "흥국생명의 첫 외국인 감독으로서 능력을 보여주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세계적인 명장으로 이름을 날린 아본단자 감독이 추구하는 배구 철학은 무엇일까. 그는 "기본적인 철학은 하나로 뭉친 강한 팀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아직 선수들에 대한 파악을 마치지 못했다. 내가 추구하는 배구 철학은 선수들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내가 하고 싶은 배구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본단자 감독은 한국에 오자마자 19일 GS칼텍스전을 관전했다. 앞으로 맡게 될 흥국생명의 경기를 지켜본 그는 "선수들이 한 팀으로 뭉쳐서 경기를 즐기는 모습이 좋았다"면서 "서로를 위해 열심히 하는 모습이 만족스러웠다"고 웃었다.
이날 팬들과 첫 인사를 나눈 아본단자 감독은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있을 때도 한국 팬들의 열정적인 응원을 느꼈다"면서 "김연경 선수 때문에 한국 팬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원래 쑥스러운 사람이 아닌데 팬들의 관심에 쑥스럽다"고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흥국생명은 현재 22승 7패 승점 66으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정규 리그 7경기를 남겨둔 가운데 아본단자 감독은 "당장은 혼란을 야기하고 싶지 않다. 1위로 잘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잘할 거라 믿는다"면서 "선수들이 적응하고 나도 선수들에게 적응하는 게 우선이다. 일단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했다.
그동안 팀을 잘 이끌어 온 김대경 코치에 대해서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본단자 감독은 "앞으로도 계속 잘해줬으면 좋겠다. 정말 잘해왔고, 지금도 나를 많이 도와주고 있다"면서 "내게 꼭 필요한 코치다. 나보다 선수들과 팀에 대해 경험이 많은 코치이기 때문에 많이 도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해온 것들에 대해 축하를 보내고 싶다"고 격려했다.
아본단자 감독의 부임으로 완전체를 이룬 흥국생명은 이제 우승을 향해 새롭게 출발한다. 아본단자 감독은 "현재 1위인 상황에서 최소 3위 안에는 들지 않을까 싶다"면서 겸손하게 말했지만, "모두 이긴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목표는 반드시 승리하는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