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딴 악재 탓인가' KBO 개막 미디어 데이, 활기보다 숙연했다

프로야구 42번째 시즌 기대하세요. 연합뉴스
KBO 리그 개막 미디어 데이는 새 시즌을 손꼽아 기다리던 팬들과 소통하고 감독 및 선수들이 출사표를 던지는 자리다. 진행자와 취재진의 유쾌한 질문으로 분위기가 한껏 끌어올라 개막 전 팬들의 기대감도 부풀어오리기 마련이다.
 
선수들은 각 구단의 개성이 드러난 복장을 착용하고 등장하거나 팬들의 열렬한 응원을 유도하기 위해 재치 있는 각오를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2023시즌 개막 미디어 데이는 사뭇 다른 분위기로 진행됐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30일 서울시 용산구에 위치한 그랜드 하얏트 서울 그랜드 볼룸에서 2023시즌 개막 미디어 데이를 개최했다. 10개 구단 감독 및 대표 선수 2명이 참석해 새 시즌을 향한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이날 눈에 띄는 복장을 착용하고 등장한 선수들은 오재일, 원태인(이상 삼성), 이정후, 김혜성(이상 키움) 정도였다. 오재일과 원태인은 구단 로고가 박힌 은색 목걸이를 차고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이정후와 김혜성은 올 시즌 구단의 슬로건인 '함께 더 높게'라는 문구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나왔다. 이외에는 모두 평범한 복장으로 자리에 나섰다. 
 
선수들에게 우승 공약을 물었을 때는 유쾌한 답변이 나왔다. 이정후는 "예전에 선배들이 (우승을 하면) 고척돔에서 캠핑을 하자고 했는데 아직 하지 못했다. 다시 그 공약에 도전해보겠다"고 말했고, 김도영(KIA)은 "KIA 자동차를 타는 팬들을 추첨해 선수들이 직접 세차를 해드리겠다"고 전했다. 
 
LG 주장 오지환의 우승 공약이 가장 눈길을 끌었다. 이날 미디어 데이에 참석한 한 팬의 결혼식 사회를 봐주겠다는 약속을 해 좌중의 환호성을 자아냈다. 우승 여부와 관계 없이 실천에 옮기겠다는 각오였다.
 
프로야구 팬 여러분 사랑합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후 취재진과 별도로 진행된 인터뷰에서는 다소 무거운 대화가 진행됐다. 먼저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한 선수들은 부진한 성적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한국 야구 대표팀은 이번 WBC에서 4강 이상 진출을 목표로 내걸었지만 2013, 2017년 대회에 이어 3회 연속 1라운드 탈락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떠안았다. 특히 숙명의 라이벌로 여긴 일본과 경기에서 13 대 4 대패를 당하고 자존심을 구겨 팬들에 깊은 실망감을 안겼다. 
 
호주와 대회 첫 경기에서 나온 강백호(kt)의 치명적인 실수는 팬들의 한숨을 자아냈다. 강백호는 호주와 경기에서 4 대 5로 뒤진 7회말 통쾌한 중월 2루타를 날렸지만 주먹을 불끈 쥐는 세리머니를 하다 그만 베이스에서 발이 떨어져 상대 수비에 태그 아웃을 당했다. 이후 추격 의지를 잃은 한국은 호주에 7 대 8로 패했다.
 
강백호는 "준비를 할 때 최선을 다했지만 결과가 아쉬웠다는 게 마음이 안 좋다. 팬들에게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드려서 아쉽다"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좋지 못한 결과지만 그 속에서도 가능성을 봤다고 생각한다. 많이 배웠기 때문에 올 시즌 더 많은 기대를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마운드 역시 불안한 모습이 역력했다. 조별 리그 4경기에서 무려 26실점을 하고 무너졌다. 이에 구창모(NC)는 "많이 기대하셨는데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너무 죄송하다"면서 "실전에서 잘해야 하는데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했다 나 때문에 꼬인 느낌이 들었다"고 자책했다.
 
이정후(사진 왼쪽). 연합뉴스
하지만 대회 이후 이보다 더 충격적인 사건들이 잇따라 발생했다. 롯데 투수 서준원이 성범죄 혐의로 기소됐고, KIA 장정석 단장이 박동원(LG)과 협상 과정에서 '뒷돈'을 요구한 사실이 드러나 야구계를 혼란에 빠뜨렸다.
 
서준원은 지난해 8월 온라인을 통해 알게 된 미성년자에게 신체 사진을 찍어 전송하도록 해 아동 청소년의 성 착취물을 제작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롯데 구단은 자체 징계위원회를 열고 서준원을 퇴단 조치했고, 한국야구위원회(KBO)도 참가 활동 정지 처분을 내렸다.
 
지난 2020년 결혼을 하고 자녀까지 둔 서준원의 범죄 혐의가 준 충격은 컸다. 최동원기념사업회는 제1회 고교 최동원상 수상자인 서준원의 상을 박탈하면서 "앞으로도 사회적 패륜 범죄와 중범죄를 범한 수상자는 고교 최동원상과 최동원상을 가리지 않고 '수상 박탈'과 관련해 이사진 논의를 거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KIA 장정석 단장이 지난해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포수 박동원(LG)과 협상 과정에서 '뒷돈'을 요구한 사실이 밝혀졌다. KIA 구단은 제보를 통해 이 사실을 알게 됐고, 곧바로 징계위원회를 거쳐 장 단장을 해임 조치했다.
 
장 단장은 KIA 구단에 해명을 하는 과정에서 농담성 발언이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KIA 관계자는 "사실 관계를 떠나 그 어떤 이유에서라도 소속 선수와의 협상 과정에서 금품 요구라는 그릇된 처신은 용납할 수 없다는 판단에 장정석 단장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했고, 최종 해임 조치했다"고 전했다.
 
이에 강백호는 "같은 야구인으로서 좀 아쉽다"고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새 시즌 개막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좋지 않은 일이지만 선수들은 착실히 준비를 잘하고 있다"면서 "팬들에게 좋은 경기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는 만큼 더 질 좋은 경기를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어 "선수이기 전에 사람으로서, 팬들의 선수로서 지켜야 할 예의를 지키겠다"면서 "선행을 보여주는 선수들도 많기 때문에 그런 모습을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 저도 더 좋은 모습 많이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잇따른 사건에도 팬들의 관심은 여전했다. 이날 미디어 데이에는 KBO 리그 41주년을 맞아 총 410명의 야구 팬들이 찾았다. 이정후는 "시즌을 앞두고 좋지 않은 사건이 있었고, WBC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음에도 팬들이 많이 찾아와주셨다"면서 "팬들의 관심과 성원에 너무 감사드린다. 경기력 뿐만 아니라 팬 서비스도 프로 선수로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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