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기]'전 시즌 조작' 오명에도 '프듀' 못 놓는 CJ ENM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방송한 엠넷 '프로듀스' 시리즈
시청자(국민)가 곧 프로듀서이니, '당신의 소녀'(혹은 소년)에게 투표하라.

첫 시즌부터 대박이 나 단숨에 엠넷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부상하고 아이돌 오디션 열풍을 일으킨 '프로듀스' 시리즈. 100명이 넘는 대규모 인원을 모집해 시청자의 선호도(투표 결과)에 따라 데뷔해 성공한 생존자와 실패한 탈락자로 나누어진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었다.

영광은 3년여 만에 끝났다. 시즌 1부터 시즌 4까지 전 시즌에서 조작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조작 의혹이 제기된 게 2019년, 부정 청탁을 받아 투표 결과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법원에서 인정해 안준영 PD-김용범 CP에게 실형을 내리고,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에서 전 시즌 조작을 이유로 1억 2천만 원이라는 과징금을 부과한 게 2020년이다.

"피고인들은 개인 이익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지만 국민 프로듀서가 데뷔 멤버를 정한다는 기준을 설정하고 데뷔 멤버를 조작하는 발상을 했다. (…) 이는 기본적으로 방송을 사유물로 생각하고 시청자를 들러리로 생각하는 데 불과하다."

1심 구형 당시 검찰이 지적했듯 '프로듀스' 시리즈는 연출진이 결과를 조작하면서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했다. 아이돌 지망생에게 생사나 다름없는 데뷔 여부를 '국민 프로듀서'가 직접 정한다는 점을 셀링 포인트로 두면서도 시청자의 의견이 그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이 같은 일이 전 시즌에서 반복됐다는 것은 시청자를 작정하고 속였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왼쪽부터 안준영 PD, 김용범 CP. CJ ENM 제공
엄청난 인기를 견인해 네 시즌이나 이어진 간판 프로그램이 한 편의 사기극이었다는 결론 앞에 CJ ENM은 고개를 숙였다. 2019년 12월 허민회 대표이사가 기자회견에 참석해 대국민 사과했고 피해보상과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K팝, 한류, 음악시장 생태계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일탈로 인해 발생한 일"이라며 안준영 PD-김용범 CP '개인의 일탈'이라는 점을 은근히 강조했다.

"방송 매체를 통해 열광적 대중을 속이고 국민 기만행위를 했다. 뿐만 아니라 선량한 참가자들의 노력을 헛되게 했다"(허미숙) "단순히 개인 PD 한두 명의 일탈 행위로 볼 수 없고, 내부 통제가 되지 않은 책임은 방송사에 있다"(이소영) "객관성이 결여된 방법으로 오디션 과열 경쟁을 부추기고, 시청자 신뢰를 훼손한 방송사 책임이 막중하다"(강진숙) "방송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 범죄 행위"(이상로) 등 방심위원이 사상 최고 과징금을 의결하며, '조작 사태'에 CJ ENM의 책임이 막중하다고 판단한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안준영-김용범 두 PD의 1심 결과가 선고되고 방심위의 1억 2천만 원 과징금 의결이 부과된 2020년, 한편에서는 CJ ENM이 '프로듀스 101' 시즌 2의 그룹 워너원 합동 무대를 추진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2021년 11월 안준영 PD가 만기 출소한 날, 다시 한번 워너원 재결합설이 등장했고 워너원은 결국 그해 엠넷 음악 시상식 '마마'(MAMA) 무대에 섰고 '뷰티풀 파트 3'(Beautiful Part Ⅲ) 음원까지 냈다.

한때 신드롬급 인기를 누린 그룹을 탄생시켰다는 것이 '조작 사태'의 면죄부가 될 수 있을까. CJ ENM은 '그렇다'는 식의 행보를 보였다. 프로그램 투표에 참여한 시청자와 투표수 조작으로 결과가 달라진 참가자의 피해가 명백한데도 과거의 영광을 소환하고자 애썼다. 법원은 2021년 항소심 판결 시즌 1('프로듀스 101') 김수현·서혜린, 시즌 2('프로듀스 101' 2) 성현우·강동호, 시즌 3('프로듀스48') 이가은·한초원, 시즌 4('프로듀스X101') 앙자르디 디모데·김국헌·이진우·구정모·이진혁·금동현 연습생이 투표수 조작으로 피해를 봤다고 발표한 바 있다.

CJ ENM 제공
시리즈 사상 가장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 '시즌 2'의 프로젝트 그룹 워너원 재결합을 지속적으로 추진한 것이 한 예다. 그때마다 CJ ENM은 '멤버들의 의지가 강했다'라고 주장했으나, 멤버들의 의지가 강하다 해도 프로그램을 만든 주체인 CJ ENM이 제동을 거는 게 마땅했다. 다분히 '프로듀스' 시리즈를 떠올리게 하는 '걸스 플래닛'과 '보이즈 플래닛'이라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연달아 내놓은 것에서 '반성'의 기미를 읽기는 쉽지 않다.

'그룹 멤버들은 죄가 없다'면서도, 활동 중이거나 활동을 앞뒀던 그룹 존속에는 상반된 결론을 냈다. 시즌 4의 엑스원은 해체했지만 시즌 3의 아이즈원은 계약 기간까지 활동했다. 시청자 누구도 시키지 않은 조작을 감행해 불명예스러운 꼬리표가 달린 상태에서 활동을 유지하는 것이 과연 그룹을 위한 선택이었을까. 오히려 그룹 '보호'와는 정반대의 길이 아니었나.

형기가 짧았던 김용범 CP는 안준영 PD보다 더 먼저 복귀해 근무 중이고, 2일 안준영 PD의 재입사가 공식적으로 확인됐다. 초유의 시청자 기만행위로 실형까지 선고됐으나, 회사는 "지난 과오에 대한 처절한 반성, 엠넷과 개인의 신뢰 회복을 위해 역할을 하고 싶다는 간절한 의지를 고려"해 이들을 복귀시켰다. CBS노컷뉴스가 사규나 취업규칙상에 문제는 없는지 문의하니, CJ ENM은 "문제가 없다"는 답을 내놨다.

조작 사태의 장본인을 '품은' CJ ENM의 이번 결정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한편, '예견된 수순'으로 바라보는 반응이 많은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적어도 CJ ENM이 언급한 '신뢰 회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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