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저녁, 올해로 데뷔 55주년을 맞은 가수 조용필의 단독 콘서트 '2023 조용필 & 위대한 탄생 콘서트'가 열렸다. 2018년 50주년 공연 이후 5년 만에 주경기장에 돌아온 것이었다. 오래 기다려 온 팬들을 위한 '가왕'의 팬 서비스는 남달랐다. 이미 중앙 제어를 마친 응원봉을 모든 관객에게 무료로 나눠줬다. 공연장 입구에는 조용필 판넬을 두어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포토존을 마련하기도 했다.
당초 예정된 시작 시각은 저녁 7시 30분이었지만 3만 5천 명의 관객과 함께하는 대규모 공연이었기에 입장이 다소 지연됐고, 7시 46분부터 본 공연이 시작됐다. 큰 원을 반으로 자른 듯한 반원형 세트에 광활한 지구의 모습이 등장했다. 눈부신 폭죽이 관객석을 향해 뻗어나가는 것으로 공연은 시작됐다. 검은 재킷을 입고, 늘 그랬듯 선글라스를 낀 조용필은 '미지의 세계' 무대로 관객을 만났다. 웬만한 불꽃축제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 화려하고 웅장한 폭죽 쇼가 한 곡이 끝날 때까지 내내 이어졌다.
"안녕하세요"라는 짧은 인사에도 큰 환호를 보내자, 조용필은 관객들을 바라보며 더 크게 함성을 질러달라는 손짓을 했다. 올해로 데뷔 55주년을 맞은 조용필은 음악 인생을 나이에 빗대 자신을 55살이라고 소개했다. "인생을 여러분과 함께했습니다. 제 나이 몇인 줄 아시죠? 55! 55입니다. 아직 괜찮습니다" 주경기장 콘서트를 할 때마다 비가 왔는데 이날은 빗방울이 살짝 왔다 갔을 뿐 쾌청한 날씨였다. "저하고 같이 노래하고 춤도 추고 마음껏 즐깁시다, 오케이?"라는 조용필의 말에 곧바로 "네!" "오케이!"라는 답이 터져 나왔다.
조용필은 내로라하는 히트곡을 다수 보유한 가수다. 게다가 가수로 데뷔한 지 55년째. 세트리스트에 보통 스물 몇 곡이 들어가니, 누군가는 '듣고 싶었던 곡'을 못 듣고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 조용필은 "작년에 안 했던 곡들이 많다. 콘서트 때마다 꼭 그런 말씀을 하신다. '그거 들으러 갔는데 왜 그거 안 하냐'"라며 올해는 지난해 콘서트에서 못 들었던 곡을 준비했다고 예고했다. '창밖의 여자' '비련' '돌아와요 부산항에' '서울 서울 서울' '나는 너 좋아' '판도라의 상자' 등이 추가됐다.
지난해 말과 올해 나온 신곡도 세트리스트를 채웠다. '찰나'와 '세렝게티처럼'에 이어 지난달 26일 발매한 '로드 투 트웬티 - 프렐류드 투'(Road to 20-Prelude 2)의 타이틀곡 '필링 오브 유'(Feeling Of You)까지 세 곡의 무대가 펼쳐졌다. 팝 록 장르인 '필링 오브 유'는 다양한 신스 사운드와 시원하고 강력한 8비트 리듬, 일렉트릭 기타가 만난 곡으로 '위대한 탄생' 리더이자 기타리스트인 최희선과 키보디스트 최태완이 연주에 참여했다.
특히 신곡에서는 동시대의 트렌디함이 물씬 묻어났다. 이번 콘서트에서 무대를 최초 공개한 '필링 오브 유'는 스토리텔링 형식의 애니메이션 영상이 백미였다. 꼬마 왕자처럼 보이는 캐릭터와 호랑이의 우정을 소재로 했는데, 꽃과 나무가 모두 웃는 얼굴이라는 귀엽고 익살스러운 연출부터 서로 만나지 못하다가 다시 만났을 때의 벅차오름까지 고루 담아냈다.
노래에 착 달라붙는 고화질의 영상도 일품이었다.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고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라고 고백하는 '바람의 노래'는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라고 노래한다. 나뭇잎 하나 달려있지 않은 채 헐벗은 겨울나무가 노래가 끝날 때쯤 초록빛 잎으로 울창한 나무가 되는 연출은 감동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세렝게티 평원을 소재로 한 노래를 만들어 부르고 싶다는 바람을 실현한 곡 '세렝게티처럼' 영상은 드넓은 초원이 주인공이었고, 노래를 부르는 조용필은 실루엣으로 나와 대비를 이뤘다. 스타일리시한 사운드와 조용필의 감각적인 코러스가 특징인 팝 록 장르의 '찰나'는 색색깔의 물감이 튀어 오르고, 무지갯빛 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등 노래의 톡톡 튀는 느낌을 잘 살려냈다.
올해 74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조용필의 목소리는 힘이 있었다. 발음이 또렷한 편이라 가사 전달력도 좋았다. "저는 별로 멘트가 없다"라며 "그냥 즐겨라. 저는 노래하겠다"라고 한 말처럼 2시간 남짓한 공연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풀어낸 시간은 찰나였다.
세 번째 멘트를 하고 나서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부터 '잊혀진 사랑' '서울 서울 서울' '필링 오브 유' '고추잠자리' '단발머리' '꿈' '태양의 눈' '나는 너 좋아' '판도라의 상자' '모나리자' '여행을 떠나요'까지 12곡을 내리 불렀다. 개인적으로 가장 뜨거웠던 무대를 고르자면 흥겨우면서도 어딘지 울적하고, 곡의 분위기와 반전되는 고음 파트가 빛났던 '고추잠자리'다. 떼창 유발곡으로는 '모나리자'를 꼽고 싶다.
기타, 드럼, 베이스, 키보드, 피아노와 코러스의 조화는 곡의 매력을 드높였다. 그 덕에 노래는 더 입체적이고 풍성해졌다. '친구여'에서는 건반에서 조금 더 포근한 소리가 났다면, '서울 서울 서울'에서는 신스 사운드가 선명했고, 단출하게 출발했던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뒤로 갈수록 밴드 연주가 힘 있게 받쳐줘 든든했다. '자존심'에서는 코러스의 존재감이 돋보였다. '단발머리'에서 속삭이는 듯한 도입도 코러스의 몫이었다.
공연 주관사인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는 "관객들의 염원과 조용필의 라이브 무대에 대한 갈증, 최고의 연출진과 스태프가 모여 품격 있는 라이브 무대와 함께 또 다른 역사를 썼다"라고 밝혔다.
총 25곡의 무대를 관객에게 전한 조용필은 오는 27일 대구 스타디움 주경기장에서 다시 한번 팬들을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