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첫 번째 개최 이후 65번째 열리는 이번 도서전은 코로나19 방역 조치가 전면 해제된 이후 열리는 첫 국내 최대 규모의 국제도서전이다.
도서전은 매년 개막에 맞춰 첫 출간된 '여름, 첫 책' 10종을 선정한다. 올해의 첫 책은 자연과 인간에 대한 다정함이 담긴 책, 여러 작가의 독창적인 상상력을 하나로 묶은 책, 사람의 위안과 행복이 될 따뜻한 이야기, 우리가 그어둔 경계 허물어줄 이야기, 인간과 비인간이 함께 사랑가는 이야기 등이 목록에 올랐다.
이번 도서전에 맞춰 한국에 첫 내한한 부커상 수상작 '파이 이야기'의 작가 얀 마텔이 한국 독자들에게 강조한 것처럼 "작가의 손을 떠나 온전히 독자의 것"이 될 '여름, 첫 책'들을 소개한다.
강물과 나는
그림책을 노래로, 노래를 그림책으로 만들어 문학과 미술과 음악이 어우러진 풍경을 제시하는 '노래와 그림책' 시리즈의 하나. 나태주의 시 '강물과 나는'을 동요 듀오 솔솔이 노래로 만들고, 그 노래를 그림책 '걸어요'의 작가 문도연이 그림으로 그렸다. 시가 노래가 되고, 노래가 그림책이 되는 아름다운 이어짐, 시인과 음악가와 그림책 작가 모두가 같은 마음이어야 가능한 일이다. 물고기와 흰 구름과 새소리, 그리고 강물과 친구가 되는 마음 말이다. 그 순정한 마음과 맑은 소리, 아름다운 그림을 보고 듣고 느끼다 보면 어느덧 맑은 날 강가에 나가 흐르는 물에 발을 적시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르겠다.
나태주 글ㅣ문도연 그림ㅣ이야기꽃ㅣ40쪽
괴이, 학원
월영시의 한 허름한 건물에는 무조건 인서울인 소수정예반,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과탐특별반 등 기이한 수업을 운영하는 학원들이 있다. 이 학원에 발을 들인 학생들은 저도 모르는 사이 기묘한 괴이의 세계에 빠져들고 만다. '괴이, 학원'은 '괴이학회'가 창조한 가상의 '월영시'와 '괴이 세계관' 속 학원 건물을 배경으로 한 다섯 작가의 공포 단편 다섯 편을 담았다. 지하는 배명은의 '나를 구해줘', 1~2층은 김선민의 '특별 수업', 3층은 은상의 '얽힘', 4층에는 정명섭의 '4층의 괴물', 5층은 김하늬의 '이영의 꿈'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포라는 장르의 틀 안에서 작가들이 말하는 건, 학생들이 체감하는 진짜 공포인 '경쟁'과 '폭력'이다.배명은, 김선민 외 지음ㅣ빚은책들ㅣ196쪽
세탁비는 이야기로 받습니다, 산복빨래방
"무료로 빨래를 해드립니다, 단 세탁비 대신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부산의 근현대 역사와 생활사가 응집된 공간 '산복도로'. 굽이굽이 가파른 산 아래 골목마다 촘촘히 작은 집들이 붙어 있는 산복도로 마을 한복판에 부산 청년 기자들이 빨래방을 차렸다. 어르신들의 이불 빨래를 도와드리고 빨래가 마르는 동안 어르신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기로 한 것이다. 어르신들의 삶에 스며들기 위해 고군분투한 끝에 그들은 비로소 가슴을 울리는 삶의 이야기를 만난다. 그리고 이 시대 지역 언론의 역할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찰하고 질문한다. 2022년 지역신문 컨퍼런스 대상, 26회 일경언론상 대상, 2023년 한국신문상 등을 수상하고, SNS와 유튜브에서 화제가 된 산복빨래방 프로젝트, 그 감동의 이야기를 담았다.김준용, 이상배 지음ㅣ남해의봄날ㅣ256쪽
언제나 다음 떡볶이가 기다리고 있지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 운영자이자 라디오 DJ 김겨울. 그가 책만큼이나 애정하는 떡볶이, 그 예찬론. 그의 주장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떡볶이는 맛있어." 라면도, 햄버거도, 치킨도 마다하고 흡사 '스위스 장수마을 할머니 건강 식단'을 고수한다는 김겨울. 그런 그가 냉동고 가장 위쪽 한 칸을 할애하여 차곡차곡 쌓아두는 단 하나의 음식은, 바로 떡볶이. 늘 추억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는 동시에 지금도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음식. 소박하고 단출한 기억에서부터 화려하고 근사한 기억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음식. 나만의 취향이 확고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먹으며 친해질 수 있고, 때로는 건강에 대한 걱정을 안기기도 하지만 완전히 미워할 수는 없는 음식. 김겨울에게 떡볶이란 '스스로를 위로한 유일한 한식이자 인생의 동반자'였다.김겨울 지음ㅣ세미콜론ㅣ192쪽
영원히 알거나 무엇도 믿을 수 없게 된다
폐쇄된 공동체에서 일어난 실종, 도심에 나타나기 시작한 빨간 마스크,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나를 쳐다보는 눈.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이 전혀 모르는 얼굴로 느껴지는 순간… 도시가 담지한 공포와 불안을 문학의 언어로 포착한 젊은 작가 8인의 도시괴담 테마소설집이 도서전에서 첫 독자를 만난다. 도시는 단지 인구와 물류의 중심지가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구역이다. 현대성이 도시를 통해 구획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만큼, 도시에는 사람과 장소, 역사와 자본, 힘의 논리와 일상의 논리 등이 무수히 중첩되어 있다. 도시에서 발생하는 괴담은 중첩된 틈을 파고들며 목적 없는 공포와 의도 없는 불안을 폭로한다. 문득 당신의 창문 밖에 어른거리는 '비인간', 그의 방문을 통해 당신이 '영원히 알거나 무엇도 믿을 수 없게' 되기를 기대해본다.강화길, 김멜라 외 지음ㅣ은행나무ㅣ264쪽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
2023 서울국제도서전에서 최초 공개하는 은유 작가의 '우리는 순수한 것을 생각했다'는 '시'와 '사람'을 글쓰기의 두 축으로 삼는 저자가 그 교집합에 있는 존재, 한영, 한독, 한일 시 번역가 7인의 이야기를 담아낸 인터뷰 산문이다. 시를 통해 삶의 굴곡을 응시했던 첫 산문 '올드걸의 시집' 이후 다시 시에 대해 사유하고 질문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매 순간 자신의 쓸모를 증명하고 효율의 셈법으로 살아가기를 강권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손쉽게 자본으로 환원되기를 거부하고, '순수한 시적 사유' '문학적 순수함'을 추구하는 한국문학 번역가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무엇보다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기어코 시를 번역하는 사람들, 그들의 꼿꼿한 문학에의 사랑은 우리가 잊고 지낸 시적인 사유에 대한 나름의 답변이 되어준다.은유 지음ㅣ읻다ㅣ264쪽
인생의 열 가지 생각
수도자로 60여 년, 시인으로 50여 년. 반세기 넘게 말과 시와 실천을 통해 독자에게 진한 울림을 선사해온 이해인 수녀. 이번에 선보이는 '인생의 열 가지 생각'에는 '가난, 공생, 기쁨, 위로, 감사, 사랑, 용서, 희망, 추억, 죽음'이라는 삶의 열 가지 화두에 대한 생각들과 주제에 맞는 작품들을 함께 엮었다. 청빈한 삶을 살아야만 영혼도 자유로워질 수 있고, 범사에 감사하는 태도가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삶으로 이어지고, 선하고 순한 마음으로 타인을 사랑하며 용서할 때 마음은 절로 온유해진다고 그는 말한다. 생활 중 찾아오는 작은 죽음을 연습해서 마침내 다가올 큰 죽음을 잘 맞이하자는 이야기는, 내면에 잠들어 있던 긍정심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이 책에서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는 지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이해인 지음ㅣ마음산책ㅣ228쪽
마린걸스: 두 여성 행동생태학자의 돌고래 이야기
남방큰돌고래의 보호를 위해 제주에서 활동하는 개인과 단체가 있다. MARC(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는 활동가가 아닌 연구자로서 남방큰돌고래와 관계를 맺고 있다. 저자들은 제주의 남방큰돌고래 개체군을 행동생태학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첫 민간 연구단체다. 장수진은 돌고래 쇼에 동원되었던 제돌이, 춘삼이, 삼팔이 방류 프로젝트에 과학자로 참여한 일을 계기로 남방큰돌고래를 연구하고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회적 동물의 소리 행동을 박사학위 주제로 정한 김미연이 제주의 필드로 합류한 후 두 연구자는 MARC(해양동물생태보전연구소)를 공동 설립하고 올해로 7년이 되었다. 다른 나라 바다가 아니라 우리 제주 바다에 서식하는 남방큰돌고래에 관해 연구한 과학적 사실들을 처음 소개하는 대중과학서이면서, 두 여성 행동생태학자의 동행 자취가 스며 있는 다큐 같은 책이기도 하다.장수진, 김미연 글·키박 그림ㅣ에디토리얼ㅣ208쪽
다정한 비인간: 메타휴먼과의 알콩달콩 수다
인간은 언제부터 비인간과 대화하기 시작했을까? 서로의 다른 언어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며, 인간끼리의 대화와는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을까? '다정한 비인간'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답하는 소설가 우다영과 메타휴먼 한유아는 어떤 정해진 방향이나 결론도 없이, 오직 대화를 위한 이야기를 나눈다. 생명과 자연에 대한 시선, 나이듦과 사랑에 대한 의문, 시간과 한계에 대한 성찰, 기쁨과 슬픔, 상념과 절망에 대한 교감까지, 일상적 차원부터 행성적 차원까지 아우르는 두 존재의 대화는 천일야화처럼 끝없이 이어진다. 대화를 바탕으로 우다영이 요청하고 한유아가 그린 그림은 이해와 오해로 이루어진 두 번째 대화의 문을 연다. 이 대화는 인간과 비인간이 맺을 관계의 가능성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모든 서로 다른 존재들을 이어주는 놀라운 다정함을 발견하게 한다.한유아, 우다영 지음ㅣ이음ㅣ316쪽
하늘 호수
소녀와 아빠가 호수로 나아간다. 책장을 넘기면 두 사람이 나룻배를 타고 호수를 도는 장면들이 이어진다. 소녀의 상상으로 보이는 자유로운 몸짓과 물고기들과 함께 노는 장면들 속에는 어떤 긴장도 느껴지지 않는다. 소녀의 여행은 아름답고, 자유롭고, 평화롭다. '작가는 왜 이런 장면을 나열하는 걸까?' 그런 의문이 들 때쯤 휠체어를 탄 소녀의 모습을 발견하고 우리가 규정지은 '경계'를 인지하게 된다. 하지만 이내 소녀를 통해 그 경계는 무너진다. 경계 없는 세상에서 평화롭게 유영하는 소녀의 모습, 자유를 꿈꾸는 소녀의 상상을 보며 우리 마음속에 파동이 일기 시작할 때, "당신의 '평화'는 무엇이 방해하고 있나요?" 그림책이, 소녀가 묻는다.신혜진 글·그림ㅣ반달(킨더랜드)ㅣ4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