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전후 미국 이민사회에서 억척 같은 삶을 살다간 '한국엄마'

글항아리 제공

전쟁 같은 맛


한반도와 일제강점기, 재일조선인 사회를 관통하는 대하 역사 속에 고국을 떠나 억척스럽게 생존해야 했던 한인 이민 가족 4대의 삶과 꿈을 그려낸 팩션 '파친코'가 있다면, 미국에는 한국전쟁과 기지촌을 거쳐 미국 이민을 떠나 조현병과 폭력, 트라우마 속에서도 고통을 뛰어 넘는 존재 어머니 '군자'의 삶을 다룬 한국계 미국인 아들의 회고록 '전쟁 같은 맛'이 주목을 끈다.

뉴욕 시립대 스태튼아일랜드대학 사회학·인류학 교수인 그레이스 조는 상선 선원이던 백인 미국인 부친과 기지촌 여성이었던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언어, 문화적 배경이 다르고 냉전 시기 외국인 혐오가 극심했던 워싱턴주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저자는 "진실되고 근면했던, 사랑과 고독으로 가득 차 있었던 어머니의 삶을 그려내보고자 했다. '타락한 여자'라는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명예로운 삶을 살았고, '정신병자'라는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이성적이었던 어머니의 존재"를 그녀가 겪은 '조현병'의 뿌리에서 파헤친다.

전후 한인 이주여성의 기구한 삶은 쉽지 않았다. 종전 후 살아남기 위해 미국인 상선 선원을 만나 미국에 정착한 한인 1세대 여성. 남편이 바다에 나가있는 동안 '튀기 아이코노'라는 놀림을 받던 두 아이들에게 평범한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두 아이를 억척스럽게 키워낸다. 한인 입양아와 이주여성을 따뜻하게 품고 친정식구들의 미국이민을 돕지만 불현듯 찾아온 조현병은 그녀를 그녀 안에 가둔다.

과거와 정신질환을 숨긴 채 철저하게 가족 내에서, 사회에서 방치된 그녀의 고립이 사회적 문제임을 드러낸다.    

저자 그레이스 조는 '한인 디아스포라의 출몰: 수치심, 비밀, 그리고 잊힌 전쟁'(2008)으로 2010년 미국사회학회 '아이아 및 아시아계 미국인' 부문 우수도서상을 받았다. 이 책 '전쟁 같은 맛'은 2021년 전미도서상 논픽션 부분 최종 후보에 올랐고, 2022년 아시아·태평양 미국인 도서상을 수상했다.

그레이스 M. 조 지음ㅣ주해연 옮김ㅣ글항아리ㅣ464쪽

남해의봄날 제공

산복빨래방


180계단 까마득한 언덕 위 산복도로 마을 한복판에 '산복빨래방'이 문을 연다. 빨래는 무료지만 이야기로 값을 치러야 한다.

부산일보 청년 기자들이 주민들의 빨래를 도와주고 빨래가 마르는 동안 어르신들의 삶의 이야기를 듣고 기사로 써내려간 산복도로 정착기이자 지역 밀착 취재기 '산복빨래방'이 출간됐다.

이들 청년 기자들은 단순히 현장의 이야기만 옮겨담지 않고 어르신들과 함께 에어로빅을 하고 바다로 소풍을 떠나고 영화관 나들이도 하며 마을 주민들의 삶으로 스며들었다.

제54회 한국기자상, 2023 한국신문상, 2022년 지역신문 컨퍼런스 대상, 26회 일경언론상 대상 등을 수상하며 화제가 된 산복빨래방 프로젝트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책에 담아 펴냈다.

한국전쟁 당시 피란민들이 판자촌을 이루며 만들어진 마을 산보도로는 산업화 시대에는 노동자드의 보금자리가 되어준 부산의 근현대 역사를 함께 헤쳐온 공간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산복도로를 개발과 도시 재생의 관점으로만 바라보지만 청년 기자들은 근현대사를 살아낸 산증인들의 저마다의 서사가 담긴 공간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모인 삶의 이야기는 낙후된 공간에 생기를 감돌게 하고 공간의 시설과 개발에 앞서 그 마을이 품은 이야기는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김준용·이상배 지음ㅣ남해의봄날ㅣ256쪽

난다 제공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고명재 시인의 첫 산문집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는 사랑이라는 이상한 리듬을 말하기 위해 무채색에 얽힌 백 가지 이야기를 담았다.

시인이 들여다본 무채 속 풍경은 사랑이라는 밥솥에서 끓어오르는 밥물과 같다. 누군가를 먹이고 돌보려 먹이는 하얀 밥, 흰살 생선, 밀가루, 두부, 멸치의 은빛, 능이버섯, 간장, 양갱 등을 차려내며 "사랑은 화려한 광휘가 아니라 일산의 빼곡한 쌀알 위에 있다"고 말한다.

동생과 어머니, 아버지와 헤어진 채로 할머니집에 맡겨진 시인은 그곳에서 시라는 '이상한 리듬'을 배운다. 시인은 서문에 "이 글은 순전히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고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썼던 글"이라며 "색을 열고 색을 삼키고 색을 쥔 채로 나를 키운 사람들의 마음 이야기"라고 회고했했다.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 올 것이 있다. 비와 눈은 오는 것. 기다리는 것. 꿈의 속성은 비와 눈처럼 녹는다는 것. 비와 눈과 사람은 사랒는 것. 그렇게 사라지며 강하게 남아 있는 것. 남아서 쓰는 것. 가슴을 쏟는 것. 열고 사는 것. 무력하지만 무력한 채로 향기로운 것. 그렇게 행과 행 사이를 날아가는 것." -'편지' 중에서

시인은 "캄캄할 때 당신 생각을 해도 되겠다"며 '사랑'이라는 이상한 리듬을 고백한다.

고명재 지음ㅣ난다ㅣ2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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