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했던 전쟁범죄, 일본군은 왜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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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죄책


나치 전범들은 뉘르베르크 재판에서 단죄되고 오랜 추적 끝에 검거되어 처벌받기도 했다. 유대인을 학살한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보며 정치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성실하고 평범해보이는 그의 잔학행위를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으로 설명했다.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평범한 사람들이 권위에 복종해서 타인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강한 충격을 가하는 실험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입증했다.

식량과 물자 보급 없이 약탈을 전재로 중국과 한반도, 동남아와 태평양 섬들에서 벌인 태평양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이 일상적으로 비무장 주민을 학살하고 여성을 고문하고, 731부대가 아닌 일반 군의관들이 일상적으로 농민들을 생체 해부하고, 초보 병사가 살아 있는 포로들을 대상으로 총검술을 연습하는 등 충격적인 전쟁범죄를 일으킨 이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들에게서 군인들이 흔히 겪는 전쟁신경증이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을 찾아보기 힘들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난징대학살을 폭로한 군인들의 일기에서는 2만 명의 포로를 학살하면서 감정의 동요 없이 아름다운 자연 풍경에 도취하거나 쇠고기 튀김 등 식욕을 나타낸 기록을 확인한다. 감정이 왜곡된 사람들은 깊은 감정을 느끼는 대신 감상에 쉽게 빠지거나 갑자기 감정이 폭발하곤 했다.

책은 밀그램의 실험의 의의를 분석하고 일본군에게 적용한다. 그러면서도 이 책 전반에서 저자의 분석은 권위에 복종하는 개개인의 심리가 아니라, 수직적 위계질서 속에서 인간을 도구화하며 감정을 마비시키는 일본 사회와 문화를 향한다.

책에 등장하는 전범들은 지금은 용기를 내어 전쟁범죄를 고백하고 반전 평화운동을 하는 양심적인 사람들이다. 어려서부터 가족, 마을, 학교에서 천황제 이데올로기에 세뇌당하며 군국소년으로 길들여졌다. 저자는 정체성이 형성될 때부터 천황과 국가를 위해 나머지를 희생시키는 강자의 논리를 내면화해, 효율과 타산의 관점으로만 인간을 대하게 되었다고 진단한다.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문화 속에서 자란 이 아이들은 군인이 되어 자신의 고통을 고통으로 느끼지 못하도록 성장했다. 저자는 몸이 약하고 민감한 소년을 억지로 '강한 남자'로 키워낸 폭력적인 가정환경과 학교 교육이 주입한 천황제 이데올리기는 쉽게 사디즘, 가학적 남성성으로 전환된다는 것을 비판했다.
 
저자는 이에 노출되었던 전범들에게 잔인하리만큼 집요한 질문을 던지며 그들이 '상처 입을 수 있는 인간' '슬픔을 느끼는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건조하고 절제된 문체로 담담하게 전달한다.

우리가 역사 교과서나 미디어를 통해 접해왔던 역사적 개요에서 더 나아가 참전했던 전범들의 생생한 전쟁범죄와 이들의 내면까지 후벼 파는 저자의 분석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역사적 진실의 축과 마주하게 한다.

한편으로는 '어릴 때부터 경쟁에 몰아넣고, 선망과 굴욕의 경계에서 공격성을 고조시켜 그것을 조직의 힘으로 바꾸는 매커니즘'은 이러한 일본 군국주의가 한국 군대문화와 사회문화에 미친 잔인한 영향력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었던 1944년 태어난 이 책의 저자 노다 마사아키의 부친은 군의관으로 참여했지만 전쟁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의사가 되고 나서도 선배 의사들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병든 사회의 병든 사람들을 연구하며 아버지의 전쟁을 조사하고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비로소 진실을 말하기 시작한 아버지뻘 노병들을 인터뷰해 이 책을 완성했다.

1998년 일본에서 출간된 이 책은 2000년 '전쟁과 인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 이번 책은 초판을 번역했던 어혜영 번역자가 2022년 출간된 문고판을 기준으로 표현과 설명을 다듬었다.

저자는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중국의 조선족, 탈북민, 사할린의 조선인, 재일한국인과 재일조선인, 북미 한인 등 수많은 한인과의 만남을 되돌아보며 "이 책은 서구 제국주의를 본떠, 한반도, 중국, 남아시아 사람들을 침략하고 지배했던 일본 천황제 군국주의가 얼마나 사람들의 정신을 황폐하게 했는지 다시 타자와 교류하는 정신을 되찾은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 내면을 분석한 것"이라고 술회했다.  

노다 마사아키 지음ㅣ서혜영 옮김ㅣ또다른우주ㅣ4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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