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 차인' 말디니, '레드카드' 토티가 기억하는 2002년은?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전 당시 말디니(왼쪽)와 안정환. 연합뉴스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 한국과 이탈리아의 경기를 앞두고 이탈리아의 플레이메이커 프란체스코 토티는 "한국을 이기는 데 1골이면 충분하다"고 발언해 당시 수많은 논란을 낳았다.

이 경기에서 팀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한 토티는 연장전 헐리웃 액션으로 레드카드를 받고 경기장을 떠났다. 수적 우위를 점한 한국은 연장 후반 12분 안정환의 골든골로 이탈리아를 물리치고 8강에 진출했다.

당시 이탈리아의 주장이었던 파올로 말디니는 이 경기에서 패배한 후 더 이상 월드컵 무대에서 볼 수 없었다.

지난 22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페어몬트 앰배서더에서 열린 한국·이탈리아·브라질 3개국 '레전드 올스타전' 기자회견에서 왼쪽부터 프란체스코 토티, 파올로 말디니가 경기에 입을 유니폼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그로부터 21년이 지났고, 이들이 다시 한국 땅을 밟았다. 두 레전드는 그때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어느덧 50대 중반, 40대 후반이 된 말디니와 토티. 이들은 지난 22일 서울 영등포구의 페어몬트 앰배서더 서울에서 열린 '레전드 매치' 기자회견에 모습을 보였다. 이 자리엔 당시 경기에서 맞붙었던 한국의 레전드 안정환과 최진철도 동석했다.

말디니는 우선 21년 전을 '아픈 기억'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정말 아픈 기억이 남았지만, 함께 뛸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다"며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2006년 월드컵을 우승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선제 득점 후 환호하는 이탈리아 벤치. 연합뉴스

토티 역시 당시 기억을 더듬었다. 토티는 "무척 멋있었지만 어려운 경기였다"며 "두 명 다 열심히, 멋있게 뛴 기억이 남는다"고 회상했다.

안정환은 "이탈리아는 당시 세계 최고였기 때문에 두려운 존재였다"고 돌이켰다. 그러면서도 "이탈리아를 이겼던 것은 제 축구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라고 했다. 최진철도 "21년이나 세월이 지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기억은 두 선수가 굉장히 좋은 기술을 가졌다는 것이다. 두 선수들을 보면서도 스스로도 좀 더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16강전에서 공중볼 경합 중인 안정환(오른쪽)과 말디니. 연합뉴스

골든골이 터지기 직전, 안정환을 마크하던 이탈리아 수비수는 말디니였다. 이영표의 크로스가 올라왔고 안정환과 말디니는 동시에 공을 향해 뛰었지만, 안정환이 공중볼 경합에서 승리했다.

안정환의 머리에 맞은 공은 이탈리아 골키퍼 부폰을 뚫어냈다. 득점과 동시에 경기가 종료됐다. 이 골은 한국에겐 기적과도 같은 8강을, 이탈리아에겐 쓰라린 패배를 선사했다.

안정환이 골든골을 넣기 직전 말디니와 공중볼 경합 상황. 연합뉴스

이 장면을 가장 가까이서 봤을 말디니는 당시 어떤 심정이었을까.

말디니는 "월드컵에서의 골이니까 당연히 기억이 난다. 골든골이라서 더욱더 기억에 남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골이 들어가는 순간 '내 커리어는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 심정을 표현했다.

그러면서도 "스포츠에서는 이런 아픈 결과도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시간이 지나서는 이런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안정환의 골든골이 터지는 순간 좌절하는 말디니. 연합뉴스

후반전이 진행되던 중, 볼 경합을 하다 넘어져 있는 말디니의 머리를 이천수가 걷어찬 장면은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이후 이천수는 "이탈리아 팀이 거칠었다"면서도 "말디니에겐 지금도 죄송하다고 생각한다"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말디니는 이천수의 사과를 받아줬다. "굳이 지금까지 저한테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말디니는 "그렇게까지 기억은 잘 안 난다"며 "축구 경기에서는 여러가지 일들이 많이 생긴다"고 대인배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 당하는 토티. 연합뉴스

당시 토티는 국내에서 자만심 가득한 이미지로 비춰졌다. 한국전을 하루 앞두고 천안 국민은행연수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국은 좋은 팀이지만, 우리는 한국을 상대로 마음만 먹으면 골을 넣을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을 이기는 데 1골이면 충분하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또 "한국은 조직력과 체력, 스피드가 뛰어나지만 테크닉에서는 우리가 몇 수 위에 있다"며 "테크닉으로 한국을 압도할 수 있는 특화된 선수들이 여럿 있는 만큼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토티는 당시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래도 토티는 "그때 당시에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며 "뼈아픈 기억이라고 생각한다"고 후회 섞인 답변을 내놨다.

답변하는 토티. 연합뉴스

21년 전 그라운드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적수였던 양 국가 레전드들 모두 이젠 건강을 걱정하는 40, 50대가 됐다. 그러나 이들은 내달 21일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릴 '레전드 매치'를 통해 다시 그라운드에 선다.

말디니는 "안타깝게도 무릎 부상이 있어서 7~8년 동안 축구를 하지 못했다"면서도 "이 경기를 위해서 많이 준비해 왔다"고 결의를 다졌다. 또 "2002년 월드컵보다 더 재밌는 경기를 만들겠다"며 "많은 분들이 오셔서 즐겨주시면 좋겠다"고 희망했다.  

토티는 "체력을 다해 45분을 잘 뛰는 게 목적"이라며 "골을 넣는다면 장난기를 담아서 텀블링 세레머니를 하고 싶은데, 나이를 생각해서 자제해야겠다"고 익살스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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