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매너는 비매너로?' 韓 테니스 간판, 가슴에 태극 마크까지 달았다면

권순우가 25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항저우아시안게임 테니스 남자 단식 2회전에서 카시디트 삼레즈(태국)에 패한 뒤 라켓을 내리쳐 부수는 모습. 웨이브 캡처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에서 비신사적인 행동으로 언론과 팬들의 집중포화를 맞은 남자 테니스 권순우(26·당진시청). 경기에서 패한 뒤 라켓을 수차례 내리쳐 부수고, 상대 선수의 악수 요청까지 거부한 비매너로 구설수에 올랐다.

권순우는 25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올림픽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대회 테니스 남자 단식 2회전에서 카시디트 삼레즈(태국)에 세트 스코어 1 대 2(3-6 7-5 4-6)로 패했다. 권순우는 남자 단식 세계 랭킹 112위로 이번 대회 4번 시드를 받고 나섰지만 세계 636위에 충격패를 당한 것.

경기 후 권순우는 화를 참지 못하고 라켓을 코트 바닥에 세게 내리쳤다. 여러 번 충격에 부러진 라켓으로 의자를 때리기도 했다.

삼레즈는 네트 쪽에서 인사하기 위해 기다렸지만 상대 선수가 오지 않자 권순우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나 권순우는 삼레즈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가방을 들고 경기장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반대 방향으로 가던 권순우는 진행 요원의 안내로 뒤돌아 가려다 다시 삼레즈와 마주쳤지만 인사는 하지 않았다. 권순우는 야유를 보내는 중국 관중 쪽을 노려보기도 했다.

이런 비매너에 대해 해외 언론들도 주목했다.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이날 '한국 테니스 선수가 패배 후 라켓을 산산조각 내고 태국 선수와 악수를 거부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전했다. "상대보다 순위가 500계단 이상 높은 한국 선수는 불미스러운 사건에 악수를 거부했고, 당황스러운 논란에 휩싸였다"고 보도했다.

해외 팬들은 권순우에 일침을 가했다. 한 중국 누리꾼은 "피아니스트가 손가락을 사랑하고, 사진가가 눈을 사랑하고, 군인이 총을 사랑하는 것처럼 테니스 선수는 라켓을 사랑해야 한다"며 "이런 선수는 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꼬집었다.

태국에서도 "권순우는 아마도 한국 최고의 선수일 텐데 이 정도라니 믿기지가 않는다", "승리와 매너를 모두 잃었다" 등의 부정적 여론이 일었다. 한국에서도 "왜 부끄러움은 국민의 몫인가", "나라망신이다, 영원히 선수자격을 박탈하라" 등의 거센 비난 여론이 형성됐다.

권순우가 경기에서 패배한 뒤 라켓을 땅에 내리치고 있다. 해당 트위터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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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삼레즈의 경기 매너도 문제는 있었다. 중국 포털 '소후닷컴'은 "삼레즈가 1세트가 끝난 뒤 화장실에 가서 10분 동안 돌아오지 않았는데 규정에 따르면 이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어 "또 권순우가 2세트에서 컨디션을 되찾았으나 승리를 눈앞에 둔 순간 삼레즈가 심판에게 메디컬 타임 아웃을 신청했고, 무력감을 느낀 권순우는 급기야 화가 나 상대방과 언쟁을 벌였다"고 덧붙였다.

테니스에서는 종종 화장실 매너가 논란이 된다. 특히 스테파노스 치치파스(5위·그리스)가 경기 중 10분 가까이 화장실에서 시간을 보낸 뒤 분위기를 바꿔 승리를 거두곤 하는데 비매너라는 지적을 받는다. 그러나 엄연히 승자는 치치파스였고, 이번에는 삼레즈였다. 경기의 일부인 것이다.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는 물론 메이저 대회까지 경험이 많은 권순우도 익히 알고 있는 부분이다. 규정의 허점을 파고든 상대의 노림수, 심리전에 당했다고 볼 수 있다. 소후닷컴은 "멘털이 무너진 권순우는 결국 경기에서 패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 병역 혜택이 간절한 권순우의 상황도 짚었다. 

사실 권순우는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평점심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테니스인들이 우려하고 있다. 감정이 폭발해 코칭스태프와 갈등이 생기기도 했다. 물론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노박 조코비치(1위·세르비아) 등 세계적인 선수들도 라켓을 내리쳐 부수기도 하지만 경기 후 상대 선수와 악수를 거부하는 행동은 테니스의 기본 예절에서 벗어나는 심각한 일이다.

지난 5월 권순우(오른쪽)가 요넥스와 후원 협약식에서 김철웅 요넥스코리아 대표와 기념 촬영을 한 모습. 요넥스코리아


권순우는 현재 한국 테니스의 간판이다. 2018년 호주오픈에서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 대회 단식 4강에 오른 정현이 부상으로 주춤한 사이 권순우는 ATP 투어에서 최초로 2회 우승을 이뤄냈다. 국내에 불어닥친 테니스 열풍 속에 권순우는 광고 촬영까지 하는 등 적잖은 기업들의 후원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 아시아의 주목을 받는 국제 대회에서 태극 마크를 단 한국 테니스 최고 스타가 볼썽사나운 꼴을 보이고 만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은 올해로 20회째를 맞는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코리아 오픈과 UTS(얼티밋 테니스 쇼다운) 등 아시안게임 이후 굵직한 국제 대회 개최를 앞두고 있다. 권순우의 일탈이 자칫 테니스 열풍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다. 이미 개인만 생각해서는 안 될 위치에 있고 어깨가 무거운 권순우다.

특히 권순우 본인에게도 어쩌면 막대한 피해가 갈 수 있는 상황이다. 이번 비매너 논란이 일파만파 커지면서 권순우의 후원 업체들도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해외 투어를 뛰어야 하는 권순우로서는 기업들의 후원이 필수적이다.

일단 권순우는 경기 다음날 삼레즈를 찾아가 사과했다. 또 대한체육회를 통해 자필 사과문을 내면서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비매너 행동이 워낙 깊게 각인된 터라 이미지를 회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만약 권순우가 경기 후 상대 비매너에도 대범하게 악수를 나누고 격려했다면 어땠을까. 순간의 화를 참지 못해 큰 대가를 치르고 있는 권순우가 과연 남은 복식에서 만회할 기회를 얻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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