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세에 금메달…스트리트 파이터 고수들의 원기옥을 모아 쾅!

김관우, 항저우 아시안게임 e스포츠 스트리트 파이터 5 우승
e스포츠 첫 정식 종목 채택…韓 최초의 금메달리스트 우뚝
전국 고수들이 연습 상대 자청…"그 분들 없었다면 이렇게 못해"

한국 e스포츠 최초의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김관우. 노컷뉴스

"저의 게임 인생에서 가장 큰 고비요? 오락실 게임비가 50원에서 100원으로 올랐을 때? 네 판을 하던 거 이제 두 판밖에 못 하는데 이거 어떻게 하나. 게임하다가 참지 못하면 집에 갈 버스비까지 털어서 집에 걸어가야 할텐데, 그때가 가장 위기가 아니었을까요"

28일 오후 중국 항저우의 e스포츠 센터에서 스트리트 파이터 V 결승전이 개최됐다.

특별한 설렘을 안고 경기장을 찾은 팬, 관계자, 취재진의 숫자가 적잖았다. 1979년 9월생으로 올해 나이 44세인 '40대의 희망' 김관우를 응원하는 사람들, 어린 시절 오락실에서 형들의 눈치를 보며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을 즐겼던 동년배들. 김관우와 맞붙은 대만의 시앙 유린도 1979년생이다.

경기장은 화려했다. 젊은 팬이 많은 e스포츠답게 경기 전부터 열기는 뜨거웠다.

두 선수는 중앙 가림막이 있는 테이블에 서로 마주보는 형태로 앉았다. 오락실에서 격투 대전 게임을 할 때의 구도와 같았다. 고개를 옆으로 내밀어 건너편에 누가 있나 살펴보던 추억을 떠올릴만 했다.

경기는 먼저 4세트를 이기는 선수가 우승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각 세트는 3판2선승제로 치러졌다. 스트리트 파이터 게임의 특성상 경기의 호흡이 무척 빨랐다. 지연없이 곧바로 다음 경기가 펼쳐졌다.

관중은 숨죽이며 매순간을 즐겼다. 장소가 중국이다 보니 대만 선수를 응원하는 목소리가 압도적으로 컸다.

그러나 게임은 게임이다. 김관우가 7년 동안 한 우물을 팠던, 자신과 한 몸이나 다름 없는 캐릭터 '베가'가 무려 23콤보를 작렬하자 게임을 좋아하는 관중은 일제히 열광했다.

김관우는 첫 세트를 따낸 뒤 내리 두 세트를 졌다. 이후 다시 두 세트를 따냈지만 6세트를 패하면서 승부는 최종 7세트로 접어들었다.

경기장의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두 선수는 이미 캐릭터 뿐만 아니라 관객의 마음도 조종하고 있었다. 버튼을 한 번 누를 때마다 탄성과 탄식이 교차했다. 광란의 분위기였다.

최종 승부에서 '베가'의 날카로운 칼날이 대만 선수의 캐릭터 '루크'를 찔러 남은 에너지를 모두 날려버린 순간 한국 e스포츠 사상 최초의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가 탄생했다.

스트리트 파이터 5 베가의 화려한 기술이 작렬하고 있다. 노컷뉴스

김관우는 우승 소감을 묻자 "재밌었습니다. 게임을 왜 하겠습니까? 재밌으려고 하는 겁니다. 재밌었습니다"라고 답하며 웃었다.

오락실에 동전을 넣어가며 게임을 즐기던 어린 시절에는 자신이 언젠가 대한민국을 대표해 이름을 널리 알릴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김관우는 "어렸을 때 오락실은 절대 금기였다. 40대 분들만 이해하실 것 같은데 학교에서 오락실 간 게 걸리면 선생님한테 혼났다(기자는 이해했다). 부모님도 싫어하셨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어쩔 수 없구나 생각하고 반 포기 상태로 하고 싶은 거 하라고 내버려두셨다"며 웃었다.

이어 "나중에는 제가 입상할 때마다 좋아하셨다. 2등을 하면 왜 1등을 못 했냐고 하셨다. 금메달을 땄으니까 정말 기뻐하시지 않을까. 게임하라고 그냥 내버려둔 걸 잘했다고 생각하시지 않을까"라며 환하게 웃었다.

김관우는 시상식을 마치고 공동취재구역에서 취재진을 만났고 인터뷰는 오랫동안 진행됐다.

인터뷰 도중 오락실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일부 취재진과 자연스럽게 농담을 주고 받다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44세의 나이에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가 된 김관우에 흥미가 생긴 한 일본 기자가 다가와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일본의 캡콤사가 개발한 스트리트 파이터가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건 두 번째 버전부터다. 1990년대 초중반부터다. 1980년대 말 출시된 스트리트 파이터 1은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그런데 김관우는 스트리트 파이터 1을 기억한다. 그러니까 게임 경력만 36년 정도 된다.

김관우는 "스파 1은 기술도 잘 안 나갔다. 본격적으로 대전을 즐긴 건 2부터다. 저는 독특한 걸 좋아해서 블랑카, 달심을 주로 했다. 형들한테 많이 맞았다"며 웃었다.

오락실에서 형들한테 맞았다는 뜻은 명확하다. 그 시절부터 실력이 좋았다는 것이다. 격투 대전 게임에서 진 '동네 형'이 자신을 이긴 어린 아이에게 화풀이를 하는 경우가 종 있었다.

실력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오락실에서 주위 눈치를 살폈던 어린 아이들은 전국에 수도 없이 많았다. 그 중 누군가는 프로게이머가 됐을 것이고 일부는 게임을 잊고 살고 있을 것이다.

강성훈 대표팀 감독은 아시안게임을 위해 전국에 퍼져있는 스트리트 파이터 고수들을 불러 모았다. 대표팀 선수들에게 질 높은 연습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김관우는 "감독님은 대한민국에 있는 스트리트 파이트 5 선수들 누구든 불러 모을 수 있는 분이시다. 최고의 감독님이시다"라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금메달리스트 김관우와 대한민국 스트리트 파이터의 원기옥을 모은 강성훈 감독. 노컷뉴스

이어 "몇 년 전까지 하시다가 그만 둔 분들도, 이 분은 좀 부르기 어렵지 않을까 했던 분들도 선뜻 찾아와서 도와주셨다. 지금은 6가 나왔는데 예전에 했던 5를 연습해서 감을 되찾고 도와주신 분도 계셨다. 지방에 사시는 분 같은 경우는 온라인으로 도와주셨다. 그 분들이 없었다면 저는 절대 이렇게 못 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스트리트 파이터 선수 풀이 그렇게 넓지는 않다. 그렇지만 굉장히 알차고 풍성한 선수들이 포진해 있다. 대진표가 나오기 전부터 그 분들의 도움으로 한국에서 대부분의 매치업을 이미 연습했다. 저는 이렇게 표현했다. 대한민국 스트리트 파이터의 원기옥을 모았다고", 강성훈 감독의 말이다.

한국 선수단의 최고령 금메달리스트가 된 김관우는 마지막으로 게임을 좋아하는 40대를 향해 메시지를 던졌다.

김관우는 "(게임할 때) 반응이 잘 안 되고 머릿 속에서 하라고 하는데 손이 잘 안 움직이고 그러기는 한데 더 많이 연습하면 우리도 옛날의 실력을 되찾을 수 있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면 저처럼 금메달을 딸 실력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게임에 한정된 이야기였지만 그렇지 않게 들렸다. 게임을 초월해 모두에게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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