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연세대 학생 3명은 캠퍼스 내 시위로 인한 소음으로 수업을 들을 권리가 침해됐다며 그해 5월 청소노동자들을 형사 고소했고, 6월에는 민사소송까지 제기했다.
이 사건은 한 학생이 재학생 익명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 청소노동자 집회로 피해를 보고 있다며 고소에 동참할 이를 모집한 뒤 2명의 학생과 함께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하면서 촉발됐다. 이들은 계속되는 시위로 학습권이 침해되고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수업료와 정신적 손해배상, 정신과 진료비를 합쳐 638만원을 지급하라고 요구했다.
연세대 청소·경비 노동자들은 시급 400원 인상과 퇴직인원 충원, 그리고 샤워실 설치를 요구하며 학내에서 시위를 벌여 왔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학생과 시민 등 2300명은 청소·경비노동자들을 향한 연대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에는 고소와 민사소송을 진행한 이들을 지지하는 수많은 글들이 올라왔다. 대다수 글에서는 청소노동자들을 향한 비난과 비아냥 등을 포함한 혐오 표현이 주를 이뤘다.
민주화라는 시대정신이 대학가에서 사라진 오늘날, 이 사태는 청년들의 가중되는 취업난이 대학을 치열한 경쟁의 장으로 내모는 시대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회적 현상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대학의 본래 목적이 학문을 연구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곳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연세대가 청소·경비노동자들의 학내 시위에 대해 '용역업체와 노조간 문제'라는 기본 입장을 내세운 채 사태 해결에 미온적 태도를 보여 문제를 키운 것도 사실이다.
해당 사태 이후 이 대학 나임윤경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일부 청년들의 그릇된 '공정감각'을 일갈하며 '사회문제와 공정'이라는 강의계획서를 통해 이번 사태를 신랄하게 비판해 화제를 모았다.
이 책 '공정감각'은 노동, 성차별, 능력주의, 장애인 인권, 성소수자, 기후 위기(비거니즘) 등 우리 사회 주요 의제들이 청년들의 일상에서 어떻게 벼려지고 실천되는지 나 교수와 '사회문제와 공정' 수강생 13인의 글을 엮었다.
그렇게 혐오 표현이 난무하고 반지성주의가 팽배한 커뮤니티 '에브리타임'을 민주적 공론장으로 변화시킬 방안을 모색하는 그들의 분투와 생생한 목소리가 담겼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에브리타임'을 민주적 공론장으로서 기대했던 학생들의 삭제된, 앞으로 삭제될 글들을 모았다. 이들의 글이 올라오면 실시간으로 신고되고, 삭제되기도 했다. 해당 글 작성자는 커뮤니티 접속을 거부당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자기의 글이 실시간으로 관찰 당하고 신고 당하고 삭제될 줄 몰랐던 만큼 같은 학교 동료 학생들에게 실망하고 상처 받았다. 이 책은 그 순간들을 기록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책은 '왜 한국 청년들의 공정 잣대는 기득권이 아닌 약자를 향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교내 청소노동자 고소와 소송에 관한 이야기는 언론을 통해 자극적으로 확대 재생산됐다. 이로 인해 근본적인 문제보다 세대, 진영, 젠더, 부자와 빈자의 대결구도로 희석됐다고 지적한다.
나 교수는 이에 대해 "소수의 목소리 크고 선명성이 남다른 사람들의 압도적으로 많은 의견에 언론이 마이크를 갖다 대니, 그들이 마치 20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양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간 정연한 논리와 맥락이 완전히 부재한 일부 청년세대의 '공정'에 관한 태도, 우리 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급부상한 '젠더 갈등'과 이른바 '이대남' 현상에 대한 다양한 분석 시도가 있다. 하지만 청년 담론은 자칫 세대 담론으로 흐르거나 정작 청년층을 타자화해 버리기 쉽다고 이 책은 꼬집는다.
나 교수는 '다양한 존재와의 공존 없는 공정이 얼마나 무의미하며 무엇보다 이율배반적인가'와 같은 질문에 개인과 공동체가 나름의 답을 찾는 기회를 마련하고 싶었다며 '이대남'과 '이기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MZ세대'라는 프레임에 가려진 '다른' 20대를 드러내고 이야기하고자 한다.
김누리 중앙대 교수는 이 책 추천서를 통해 "다행히, 그 속에서 유토피아의 기억을 간직하고 고투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승리는 불확실하지만 '역사는 이상주의자들이 좌절한 만큼 진보한다'는 사실만은 확실하다"며 이 청년들을 응원한다.
저자 중 한 명인 영어영문학·사회학 전공 김세명 씨 역시 썰리고 퇴출 당했던 이 상처가 앞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 글 한 편으로 당신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는 서로의 삶을 알지 못한다. 그저 읽고, 들을 뿐이다. 이번 글을 통해 내가 얻고자 하는 바는 작은 '계기'다. 단 한 명이라도 누군가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면 이 글의 목적을 달성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나임윤경·허가영 외 지음 | 문예출판사 | 36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