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7일 이스라엘을 기습공격하고 이스라엘이 보복 공습을 지속하면서 막대한 대규모 인명 피해가 발생하자 주최측은 시상을 취소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면서 "지금은 누구에게도 축하하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작가에게 양해도 구하지 않은 성급한 결정이라며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니 에르노, 올가 토카르추크를 비롯한 전 세계 작가 1천여명이 공개 서한을 통해 비판하고 나섰다.
이스라엘-하마스(팔레스타인) 분쟁과 이 책은 무슨 상관이 있길래 문학상 시상까지 취소된 것일까?
아다니아 쉬블리가 12년에 걸쳐 집필해 2017년 발표한 장편소설 '사소한 일'은 1949년 8월 이스라엘 남부 네게브 사막에서 이스라엘 점령군에 의해 강간 사살된 아랍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으로 70만 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터전에서 추방당한 '알 나크바'(대재앙) 1년 후의 일이다.
책은 수 십 년이 흐른 후 팔레스타인 여성이 자신의 생일날 이 사건이 벌어졌음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그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을 현대적 시각에서 냉철하게 그려낸다. 그러나 유럽 일부에서 이 작품이 반(反)유대주의 정서를 표출한다는 비난을 쏟아내면서 단숨에 '문제작'으로 부상했다.
2020년 영역본으로 출간돼 같은 해 '전미도서상' 번역문학상 최종 후보작 명단에, 2021년 영국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작 명단에 이름을 올리며 국제적인 관심을 모았다. 국내에도 하마스 공습 한참 전인 지난 7월 번역돼 출간됐다.
최근 쉬블리가 방한했다. 경기도와 경기문화재단이 개최하는 '2023 DMZ 평화문학축전'의 '전쟁·여성·평화' 세션에 참가해 자신이 2014년 7월 팔레스타인 라말라에서 겪은 경험을 풀어냈다.
쉬블리는 그러나 논쟁이 된 리베라투르상 수상 취소에 대해 말을 아꼈다. 그는 "작품이 나오고 난 뒤에는 독자의 손으로 넘어간다. 작가는 독자의 해석을 더 이상 좇지 않는다. 그 해석도 독자의 몫"이라고 말했다.
가자지구에서 일촉즉발로 이어지고 있는 하마스와 이스라엘 사이 무력 충돌에 대해서도 그는 "때론 침묵 속에서 글을 쓰는 것도 중요하다"며 즉답을 피했다.
1974년 팔레스타인 갈릴리에서 출생한 그녀는 영국 이스트런던대학교에서 미디어문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사논문 주제는 '대 테러전에서 시각 매체의 역할'이었다. '문화 이론'으로 영국 등 유럽 대학들의 강단에 섰던 그는 잠시 2014년 팔레스타인 한 대학에서 가르치기 위해 귀국하다 이스라엘의 폭격을 경험한다.
1996년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해 2002년 첫 장편소설 '접촉(Touch)'을 출간했다. 두 번째 장편소설 '우리 모두 공평하게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We Are All Equally Far From Love)', 런던 트리스탄 베이츠 극장에 오른 희곡 '실수'를 선보이며 '팔레스타인 젊은 작가상'을 두 번 수상했다. 2005년 광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위원회 초청으로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올해가 두 번째 방문이다.
전미도서상과 부커상 후보작에 이어 리베라투르상 수상작에 올랐지만 결과는 취소였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따르면 쉬블리 소설이 최종 수상작으로 선정되자 일부 심사위원이 사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책 '사소한 일'에서 소녀의 죽음은 관찰자, 때론 방관자 입장에서 수많은 폭력과 분쟁 속에서 벌어진 사소한 것 중 하나에 불과할 수 있다. 하지만, 쉬블리는 주인공 여성을 통해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폭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드러내려 한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이스라엘 민간인의 피해에 대해서는 배제하고 있다는 비난을 듣지만 저자는 묵묵히 진실의 속으로 들어가려 한다.
우리에게 비슷한 연민이 있다면, 그것은 수없이 회자되는 일제강점기와 일본제국주의의 폭력성과 야만성을 경험한 데서 찾을 수 있을까.
책의 구조는 독특하다. 이스라엘군 소대장은 소녀를 끝내 살해하고 파묻지만, 주인공 팔레스타인 여성은 진실을 파헤치는 역설적 데칼코마니를 만들어낸다.
쉬블리는 한 인터뷰에서 "염소도 다른 염소가 도살장에 끌려갈 때 그것을 알아차리는데, 사람이 (동료 인간에 대해) 그걸 못한다는 말인가?"라면서 "희생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도, 팔레스타인 사람의 고난을 증언함으로써 외부인을 설득하는 것도 아니"라고 강조한다.
복잡한 정치적·민족적·역사적 배경이 때론 불편하고 탐독을 방해한다. 책을 읽는 동안 의식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전쟁과 폭력과 배제와 무력감 앞에 놓인 인간 존엄성의 진실이 드러난다. 그때까지는 이 소설의 결과를 쉽게 예단할 수 없을 것이다.
아다니아 쉬블리 지음 | 전승희 옮김 | 출판사 강 | 17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