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현장을 목격한 사람이 한 명도 없더라도 그곳에는 목격자가 있습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목격자 DNA입니다."
32년 만에 범인이 밝혀진 화성연쇄살인사건 진범 이춘재는 DNA를 채취한다고 했을 때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법과학자이자 국내 최고 DNA 감정 전문가인 저자는 혈흔이나 정액흔 외에도 모근, 손톱에 붙은 미세한 피부조각에서도 DNA 추출이 가능하다면서 사건 현장에는 증거들이 널려 있다고 말한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범죄자들이 아무리 잔머리를 굴려도 발전해가는 법과학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목격자'는 30년 동안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에서 근무하며 수많은 사건을 겪어온 베테랑 이승환 박사의 법과학 이야기다. 유영철 연쇄살인사건, 무학산 살인사건 등 무수한 미제 사건을 해결해온 베테랑 법과학자인 저자는 DNA 감정의 기초 개념과 적용부터 법정에서 허용되는 과학적 증거의 범위,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건들의 알려지지 않은 진실까지 전한다. 그렇게 이 책에는 법과학의 다양한 수사 기법과 핵심적 지식들이 생생한 사건 현장을 따라 펼쳐진다.
저자는 10주기를 맞은 세월호 희생자들을 감식하며 당시 힘들었던 마음을 풀어내기도 한다. 사고의 그날, 수습대책 인력과 인명구조 인력, 희생자 가족들이 얽히고설켜 참담하고도 부산했던 팽목항의 모습을 떠올린다.
잠수부가 침몰된 배에서 꺼낸 시신 한 구가 막 팽목항에 들어오자 이를 확인한 부모가 울부짖는다. 저자조차 흐르는 눈물과 미어지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정부와 기관 협의에서 24시간 이내에 국과수와 검찰이 각각 DNA를 감정한 결과를 해당 가족에게 통보한다는 것인데,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시신 인양 후 24시간 이내 감정 통보는 무리였다고 회고한다.
하지만 희생자 가족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있던 시점이라 조정이 어려웠다며, 당시 상황을 100미터 전력 질주를 마라톤 거리만큼 해야 한다는 심정이었다고 했다.
불길 속에 감추어진 아동학대 사건의 진실부터 마약왕을 잡기 위한 분석화학과 DNA 감정의 놀라운 협업, 지문 분석의 오류로 엉뚱한 사람을 용의자로 지목한 FBI의 흑역사, DNA 재분석으로 17년 6개월의 억울한 옥살이에서 풀려난 일본의 스가야 도시카즈 이야기, 각종 법과학 증거들을 모아 범행을 입증한 '농약 사이다 사건' 등 끝까지 추적해 스모킹건을 찾아내는 치열한 법과학의 세계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이승환 지음 | 김영사 | 2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