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빈곤과 불평등은 누가 만들었나…제이슨 히켈의 '격차'

아를 제공

빈곤과 가난, 극단적 불평등에 놓여 있는 누군가의 불행이나 실패의 원인이 그 사람 자신일 것이라고 가정하기 쉽다. 게으르거나 의지가 약해서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거나 직장에서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유엔 '인간개발보고서' 통계자문위원, 유럽 그린뉴딜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신진 경제인류학자 제이슨 히켈은 대표 저서 '격차'에서 그 원인의 상류를 지목하며 전혀 다른 논쟁적 비판을 제기한다.

"우리의 꿈은 빈곤이 없는 세상입니다." 유엔 협력기구이자 국제 금융기관으로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세계은행 본부의 로비에 붙어 있는 슬로건이다. 각종 국제기구와 단체들의 연례보고서에는  '개발', '발전', '원조', '성장' 같은 표현이 가득하지만 그들의 말처럼 세상은 정말 나아지고 있을까? 빈곤과 기아 인구가 줄어들고, 불평등은 해소되고 있을까?

저자는 전 세계적으로 개선되지 않고 있는 글로벌 불평등이 특정한 종류의 경제 체제가 일으키는 결과라고 말한다. 바로 '자본주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비즈니스, 시장, 교역 등을 떠올리고 서로 자유롭게 물건을 생산하고 서로에게 판매할 수 있게 해주는 경제 시스템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이 같은 경제활동은 수천 년 전부터 있어왔지만 자본주의는 겨우 500년 전에 서구 유럽에서 생겨난 비교적 최근의 체제이자 '반민주주의적인 체제'라고 비판한다.

오늘날의 빈곤과 불평등을 이해하기 위해 저자는 역사와 통계를 이용해 그 과정을 들여다본다.

자본주의가 등장하기 이전 16세기(약 1500년 경)만 해도 소득이나 생활 수준면에서 유럽이나 그 밖의 국가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당시까지 제국이나 왕조가 번성한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인도 등은 유럽보다 부유한 경우도 많았다. 저자는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자원과 노동력, 각종 개발 이권을 독점해 큰 부를 축적할 수단을 얻게 되면서 제국주의와 자본주의가 발호하고 유럽은 자신들의 부를 유지할 항구적 수단으로 본격적인 신민지 건설에 나선다고 전한다.

대부분의 대학 경제학 수업은 가난한 국가와 부유한 국가의 경제적 차이가 비교 우위 법칙과 수요 공급 법칙으로 설명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이 빠져있다.

가난한 나라는 자연적으로 노동력이 풍부하고 그들의 임금은 낮다. 따라서 그들은 노동 집약적인 생산에서 비교 우위에 있다. 1차 산업인 광업과 농업, 나중에는 경공업 같은 부문이 그렇다. 부유한 국가들은 자연적으로 자본이 풍부하다. 따라서 임금이 더 높고 자본 집약적인 고도 상품 생산에 특화할 것이다. 정통 경제학에서 이것은 자연적인 질서로 여겨진다.

저자는 여기에 역사를 대입하면 이 이론은 붕괴된다고 강조한다. 왜 애초에 가난한 나라들은 상대적으로 노동력이 더 풍부했는가? 수백 년간의 식민 통치로 인해 생계 경제가 파괴된 수백 만 명의 사람들이 터전에서 밀려나 노동 시장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는 실업률을 밀어 올렸고 임금을 끌어 내렸다. 그리고 19세기까지 내내 노예제가 유지되면서 임금의 하방 압력을 가중시켰다. 노동자들이 공짜 노동력과 경쟁해야 했기 때문이다.

왜 애초에 가난한 나라들은 자본이 상대적으로 적었을까. 그 이유는 귀금속을 약탈당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식민주의자들이 지역 산업을 강제로 파괴해서 사람들이 서구에서 수출하는 물품을 소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정통 경제 이론은 마치 국제 불평등이 늘 그렇게 존재했던 것처럼 가정하지만 역사적 기록은 그것이 의도적으로 만들어졌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이 점을 저자는 인위적으로 설계된 자본주의 산업사회의 현실적 빈곤과 불평등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저자는 오늘날 다양한 형태의 국제적 분쟁과 경제적 압박과 장벽에는 19세기 이후  발전주의 정책을 펴는 국가들에 대한 서구의 개입에는 미국과 유럽의 경제 고도성장을 모델로 한 국가 주도 개발, 각종 사회적 지출, 노동자에 대한 충분한 임금 등을 포함한 케인스주의적 기본 원칙을 빠르게 도입함으로써 성장하려는 이들 국가들에 대한 경계가 깔려 있다고 진단한다.  

직접적인 침략이나 폭력에 의한 수탈이 아니라 좀 더 은밀한 방법을 강구함으로써 '신자유주의적 반혁명(쿠데타)'을 일으켜 서구에 유리한 쪽으로 경제 정책을 되돌리는 데 집중했다. 1967년에 발발한 6일 전쟁(제3차 중동전쟁)과 그에 따른 석유파동을 계기로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들이 얻게 된 막대한 석유 달러가 미국 월가로 들어왔고 경제부흥을 외치는 이들 남부 국가들에게 막대한 대출을 해줬다.

"빚은 신자유주의를 전 세계에 밀어붙이는 강력한 메커니즘이었다."

저자는 우리에게 익숙한 WTO, 세계은행(IMF) 등의 등장에는 이같은 계산이 깔려있다고 지적하면서 차 악화하고 있는 기후 위기 역시 자본주의의 무한 성장 논리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저자는 이 같은 서구권의 역사적 자본주의 시스템을 파고들며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보다 부채 탕감, 보편 기본소득, 글로벌 최저임금, 기후행동 등을 통한 공정하고 합리적인 경제 체제를 위한 근본적인 해법도 제시한다.

그는 "지구에서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역량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빈곤을 근절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가지려면 우리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경제 모델을, 우리의 부를 훨씬 더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분배하는 시스템을 채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제이슨 히켈 지음 | 김승진 옮김 | 아를 | 464쪽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