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가 가장 아프게 썼던 대하소설 '미망' 개정판 출간

박완서와 딸 호원숙 수필가의 어린시절. 노컷뉴스DB

신분제가 들썩이던 조선 말 개화기. 비범한 상업 감각으로 인삼 농사와 장사를 통해 집안의 부를 축적한 전처만 영감과 그가 유난히 애틋하게 아끼는 손녀 태임, 그리고 그의 남편이 되는 쇠락한 양반 가문 출신 종상, 태임의 어머니가 친정의 하인과 간음하여 낳은 태임의 이부 동생 태남, 이후 시간이 흘러 태임과 종상이 결혼하여 낳은 딸 여란 등 이 가문을 중심으로 4대에 걸친 인물들은 혼란한 역사 속에서 각자의 신념과 욕망을 찾아 헤매며, 그 와중에 서로 반목하고 연민하거나 경쟁하고 다시 동지가 된다.

1990년 초판을 출간한 박완서 작가(1931~2011)의 장편소설 '미망'(전 3권)이 민음사에서 새롭게 출간됐다.

조선 말부터 일제강점기를 지나 한국전쟁 이후 분단에 이르기까지 개성의 한 중인 출신 상인 전처만 집안의 일대기를 다룬 대하소설이다. 미망(未忘)은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음'이란 뜻이다.

이 소설은 박완서가 1988년 남편을 잃고 이어 아들마저 떠나보낸 가장 힘든 시기에 탄생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생전에 작가가 "내 작품 중 혹시 오십 년이나 백 년 후에도 읽힐 게 있다면 '미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라고 말할 만큼 깊은 애착이 담긴 작품이었다.

박완서가 1988년 남편을 잃고 3개월 뒤 아들마저 잃은 극한의 고통을 통과하며 개인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에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6년 채시라, 최불암, 홍리나, 김수미, 전광렬, 김상중, 최주봉 등 인기 배우들이 출연한 드라마로 만들어져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민음사 제공


소설은 대한민국 이전의 조선, 그 이전의 고려 시절부터 맥을 이어 온 개성 상인을 통해 역사와 경제, 어수선했던 구한말, 일제강점기 일본의 수탈과 해방, 한국전쟁을 겪으며 몰락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그리고 박완서 작가 특유의 여성주의적 관점에 더해 구시대의 가족과 그로부터 뻗어 나가 변해 가는 아들 딸들의 시대에 대한 통찰이 담겨 있다.

종종 제목의 동음이의어인 '미망(迷妄)', 즉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상태'가 쓰인다. 시대의 바람에 속절없이 나부꼈던 잎새 같았던 민초들의 격랑을 의미하는듯하다.

박완서는 초판 '작가의 말'에서 이제는 가지 못하는 고향 개성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며 "내가 만들어낸 인물들만이라도 그 그리운 산하를 거침없이 누비며 운명과 싸워 흥하고 망하고 울고 웃게 하고 싶다는 건 내 오랜 작가적 소망이자 내 나름의 귀향의 방법이었다"라고 썼다.

출판사는 1990년 출간된 초판을 토대로 방언과 입말을 통일했고, 한자어와 일본어, 숙어 표현 등에서 현대 독자들이 잘 알 수 없거나 쓰지 않는 고어(古語·옛말)를 박완서의 맏딸이자 저작권자인 호원숙 작가와 상의해 의미를 풀어 적었다.

개정판 초판 한정으로 제공되는 부록에는 '미망' 읽기 돕기를 위해 평론 네 편과, 박완서가 '미망' 집필 당시 육필로 쓴 작품 구상 노트(사진)가 실렸다.

박완서 지음 | 민음사 | 전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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