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나르시시즘…재현의 관능적인 루프물 '스모크' MV[EN:박싱]

재현 첫 솔로 앨범 '제이' 제작기 ② 뮤직비디오 편

데뷔 8년 만에 첫 솔로 앨범 '제이'를 지난달 26일 발매한 NCT 재현. NCT 공식 트위터

엘리베이터 숫자 등이 켜진다. 19, 21, 23… 모자를 쓰고 나타난 재현은 경계심을 품은 눈빛으로 카메라를 바라본다. 호텔엔 마치 감시하는 눈처럼 CCTV가 있다. 오디오 속 카세트테이프 A면이 돌아가며 음악이 시작된다.

일그러진 얼굴로 모자와 코트, 구두 등을 무신경하게 벗어두고 방 안에 들어온 재현은 주위를 샅샅이 살피고는 붉은 테이프를 붙인다. 가위 같은 도구를 꺼낼 새도 없이 입으로 대충 뜯은 테이프로, 외부의 시선이 들어올 만한 구석을 차단한다. 다소 강박적으로 보일 만큼 비누칠을 하고 새 옷을 갈아입은 재현이 잠금을 풀고 마주하는 건 다름아닌 거울이다.

혼자뿐인 방 안, 재현은 입술을 문지르고, 뚫어져라 스스로를 바라보고, 코피를 흘리고, 백합의 향을 맡고, 꽃 안의 물을 마시고, 그리웠던 연인을 만난 것처럼 자신의 손을 어루만진다. 모두 거울 앞에서다. 하지만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도취의 시간은 중단되고 재현은 귀를 막은 채 괴로워한다. 급기야 물이 들이찬 소파 속으로 빠지기까지 한다.

지난달 26일 공개된 첫 번째 솔로 앨범 '제이'(J)의 타이틀곡 '스모크'(Smoke) 뮤직비디오에서 재현은 어딘가 불안정해 보이는 나르시시스트(자기애를 가진 사람)를 연기한다. 재현은 강박과 도취를 오가기도 하고, 남의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유롭게 춤을 추기도 하는 등 외양뿐 아니라 행동까지도 다채로운 캐릭터를 표현해 눈길을 끈다.

'스모크' 뮤직비디오를 제작할 때 1순위는 재현이 가진 섹시함을 흔하지 않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스모크' MV 캡처

'스모크' 뮤직비디오는 재현이 직접 출연해 연기를 펼쳤다는 점, '나르시시즘'을 소재로 해 상상과 해석의 여지를 남기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재현은 '스모크' 뮤직비디오에 직접 댓글을 달아 "계속해서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보는 사람들에게 모든 컷이 납득이 갔으면 하는 마음으로 촬영"했다며 "마스터피스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CBS노컷뉴스는 소속사 SM엔터테인먼트로부터 '제이' 제작기를 들었고, 이번 편은 '스모크' 뮤직비디오를 중점적으로 살펴본다. 앨범 정식 발매 전 공개한 홍보(프로모션) 영상과 하이라이트 메들리 영상도 다룬다. 답변은 네오 프로덕션(4센터) 뮤직비디오팀, 크리에이티브 비주얼 이소희 리더와 정미니 담당이 맡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1. '더 스모키 나이트'(The Smoky Night)라는 트레일러 영상은 기묘하면서도 으스스한 분위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꽃을 다듬어 얼리고, 그 꽃에서 연기가 나는 장면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전체적인 기획 의도가 궁금합니다.

뮤직비디오팀 : 재현이 '제이'를 늦은 오후부터 새벽까지 듣기 좋은 앨범이라고 소개했는데, 그중에서도 '새벽'의 차갑고 묘한 느낌을 재현의 새로운 모습을 통해 보여주려 한 트레일러입니다. 보통 앨범 프로모션 맨 앞에 발매하는 트레일러 영상은 앨범 전반의 무드를 아울러서 담아내고자 하는데, 트레일러 바로 다음에 발매된 선공개곡 '댄디라이언'(Dandelion)과 '로지즈'(Roses)가 가진 '꽃'이라는 이미지와 타이틀 곡 '스모크'의 '연기'라는 요소를 조합해 캐릭터 및 시놉시스를 구체화했습니다.

아티스트와 앨범이 가진 섹시함을 보여주자는 의도를 베이스로 하고요. 트레일러에서 본인의 작업에 몰두하여 헝클어졌는지도 모른 채 꽃을 다듬었던 플로리스트가 자신을 말끔하게 만든 뒤 꽃을 얼리는데, 이 행위를 통해서 시들지 않는 꽃, '영원함'을 열망하는 캐릭터를 그리고자 했습니다. 연기가 나는 장면은 타이틀곡 '스모크'에 대한 일종의 힌트였습니다.

재현은 솔로 앨범 '제이' 하이라이트 영상을 곡마다 의상과 분위기를 다르게 해 구성했다. NCT 공식 트위터

2. 이후 공개된 '#신(#Scene) 01'부터 03까지 영상은 수록곡과 타이틀의 무드를 나타낸 것인가요?

크리에이티브 비주얼 이소희 리더·정미니 담당 : 이번 앨범은 비주얼라이징 전반에 걸쳐 지금까지 재현이 보여주었던 이미지를 한층 업그레이드하는 것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이전 앨범에서 부드러운 인상을 비쳤다면 솔로 앨범에서는 매스큘린(masculine, 남성적인)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세 편의 '#신' 영상은 앨범의 세 가지 주요 콘셉트가 차례로 이어지도록 기획했습니다. 첫 번째 신에서는 관능적인 감정을 내면적으로 표현하고, 두 번째 신에서는 사적인 공간 속에서 생각에 잠긴 모습을 내추럴하지만 무게감 있게 담았고, 세 번째 신은 연인을 실제로 마주하러 가는 순간으로, 감정이 행동으로 옮겨지는 모습을 표현했어요. 전체적인 앨범이 지닌 감정과 스토리를 짧은 필름 형태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더불어 세 편의 무드 샘플러 영상 외에 네 번째로 공개된 티저 이미지에서는 콘셉트의 연장선으로 재현의 모습을 꾸밈없이 자연스럽게 촬영했습니다. 앨범 전반적으로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만큼 이를 관통하면서도 마냥 부드럽지만은 않은, 낯설지만 자연스러운 재현의 모습을 비주얼 라이징하는 동시에 진지하면서도 조금의 위트(재치)를 가미한 것이 이번 자켓 기획에서 중요한 포인트였습니다.

'스모크' 뮤직비디오 콘셉트 사진. SM엔터테인먼트 제공

3. 하이라이트 메들리에서는 곡마다 다른 분위기로 연출했습니다. 편안한 차림으로, LP 바에서, 피아노 연주하며, 악기 세션과 함께 등 여러 형태의 가창 장면이 나왔습니다. 재현씨는 제작기 영상 '더 저니 오브 제이'(The Journey of 'J')에서 곡마다 본인이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다고 했는데, 이를 반영해 영상의 방향성을 잡은 건지 궁금합니다.

뮤직비디오 팀 : 사전 회의를 통해 아티스트가 생각하는 곡의 느낌을 대략 파악했고, '각 곡의 무드를 잘 살리면서 아티스트의 강점이 잘 드러날 수 있는 콘셉트가 무엇일까' 고민하여 제작한 영상입니다. 로맨틱과 섹슈얼한 모습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아티스트이기에 곡의 특성에 맞춰 조금씩 다른 재현의 모습을 심어보고자 했습니다.

예를 들어 칠(chill)하게 흥얼거리는 곡인 '플래밍 핫 레몬'(Flamin' Hot Lemon)은 사적인 공간에서 녹음기에 대고 사랑을 속삭이는 재현을 담았고, 피아노 선율의 곡인 '컴플리틀리'(Completely)는 월광이 비치는 밤 홀로 피아노 연주를 하는 재현을 담았습니다. 타이틀곡 '스모크'는 차 안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감정을 피어오르는 연기에 은유적으로 담아낸 가사에서 착안해 영상 방향성을 잡았습니다.

4. '밤편지' '내게 어울릴 이별 노래가 없어' 등을 연출한 비하인드더씬의 이래경 감독이 '스모크' 뮤직비디오를 연출했는데 함께하게 된 계기와 만족도가 듣고 싶습니다.

뮤직비디오팀 :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면서 1순위로 생각했던 지점이 아티스트와 곡이 지닌 섹시함을 흔하지 않게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이성에 대한 끌림을 이야기한 것이 아닌 인물 자체가 가진 복잡한 면모를 섹시하게 풀어내고 싶었고, 그 캐릭터성을 잘 표현하기 위해 드라마타이즈 형식의 뮤직비디오로 구성하고자 했습니다.

이런 부분을 섬세하게 캐치해서 시네마틱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 분이 이래경 감독님이라고 생각해 함께 작업하게 되었습니다. 예상한 대로 감독님께서 재현과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캐릭터와 스토리를 설계해 주셨고, 재현 또한 감독님의 의도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연기하여 모두가 만족했던 작업이었습니다.

'스모크' 뮤직비디오 캡처

5. '나르시시즘'을 주제로 한 '스모크' 뮤직비디오에서 재현씨는 아주 강박적이거나, 물에 빠지고 태양을 향해 걸어가고, 아랑곳하지 않고 여유롭게 춤을 추는 등 무척 다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공개 가능한 선에서 캐릭터 설정과 줄거리 설명 부탁드립니다.

뮤직비디오팀 : 우리 모두가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길티 플레저(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무언가를 좋아하거나 즐기는 것)를 '나르시시즘'을 주제로 한 드라마타이즈의 뮤직비디오로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호텔 스위트룸에는 자신을 관찰하고 탐구하는 길티 플레저를 가진 재현이 있습니다. 자신의 단점이 들킬까 두려워 외부의 모든 빛, 카메라, 거울을 차단하지만, 객실 밖 노크 소리에 화들짝 놀라 도망칩니다. 재현이 도망친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빌딩 숲의 수많은 타인이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옥상입니다. 그곳에서 재현은 커다란 태양을 보고 홀린 듯 떨어지는데, 공허함으로 가득 찬 재현은 허공을 유영하게 됩니다.

그렇게 다시 한번 떨어진 곳은 가장 밑바닥인 지하도의 환풍구입니다. (설정상) 이 도시의 모든 욕망의 찌꺼기가 정처 없이 흘러가는 지하도 환풍구에서, 재현은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끼며 자유롭게 춤을 춥니다. 새롭게 태어난 재현은 여전히 스위트룸에서 스스로를 탐구하고 있는 재현을 구하러 가지만, 이내 문을 두드리길 포기하고 다시 춤을 춥니다.

화들짝 놀랐던 그 노크 소리의 출처가 사실은 본인을 구원하러 온 자기 자신이었다, 라는 루프물입니다. 엔딩에서는 재현이 또 한 번 카메라 렌즈를 가리는데, 뮤직비디오 속에서 루프가 돌고 돌았다면 이제 그 밖의 관객들까지 이 루프물의 한 축이 되어버리도록 함으로써 '관객들도 러닝 타임(상영 시간) 내내 재현을 관찰했다'라는 메시지를 재미있게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재현. SM엔터테인먼트 제공

6. 화면비가 초반 4:3에서 잠시 16:9가 되었다가 다시 4:3으로 돌아오는 연출의 이유가 궁금합니다.

뮤직비디오팀 : 단순하게는 호텔 안의 인물과 호텔 밖의 인물을 분리하는 장치입니다. 스토리적으로 풀자면 누구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지에 따라 비율을 달리했습니다. 외부와 단절된 재현의 시점에서는 4:3 비율을 사용해서 표준 비율보다 조금 답답하게 느껴지게끔 연출했고, 다시 태어나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는 재현의 시점에서는 16:9 비율을 사용하여 탁 트인 이미지를 가져감과 동시에 자유롭고 해방된 캐릭터의 감정을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후반부 3인칭 시점에서는 다시 4:3 비율을 사용하여 우리 모두가 이 이야기를 관찰하고 있었다는 메시지를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7. 이 외에도 뮤직비디오의 관전 포인트를 짚어 주신다면요?

뮤직비디오팀 : 엘리베이터 숫자판, 모노톤과 컬러톤의 변화, 재현의 타투, 소파 등 뮤직비디오 안에 세세하게 숨겨둔 요소들이 많습니다. 어떤 의미일지 유추하면서 보는 것이 재미있는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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