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저출생 추세 반전을 위해 '일·가정 양립'에서 괄목할 성과를 보인 기업사례 확산에 나섰다. 특히 출산·육아 지원이 운영상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업장의 애로를 감안해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우수기업 등으로 선정된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정기 세무조사를 유예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또 반차나 단축근로 시 근로자가 원하면 30분의 휴게시간 없이 바로 퇴근할 수 있도록 관련법을 개정한다. 임신·육아기 직원을 시작으로 재택근무와 시차출퇴근제 등 유연근무를 제도화하는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다. 수도권 평균 120분에 이르는 통근시간은 줄이고,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취지다.
'완전자율' 출퇴근·'주4일제'에 직원만족도↑…회사도 '윈윈'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저고위)는 25일 서울 영등포구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4차 인구비상대책회의에서 이 같은 대책을 발표했다. '일·가정 양립 우수기업 성과공유회'를 겸한 이번 회의에는 관계부처 및 국회·경제계·금융계 등의 주요 인사와 성과공유회 관련 우수기업 관계자 등 약 150여 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총 5개 기업을 일·가정 양립 및 상생협력 우수사례로 선정해 공유했다. 지자체로는 서울시가 유일하게 대상에 포함됐다.
먼저 화장품 제조 중견기업인 마녀공장은 '코어타임'(필수 근무시간대)마저 없는 완전 자율 출퇴근제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 주목 받았다. 사측은 이를 위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근태관리 시스템과 클라우드 및 온라인 협업 툴(tool)을 적극 활용 중이다.
이러한 근무시스템이 안착하면서, 직원들은 각자의 생활패턴에 맞게 원하는 시간대에 업무에 효과적으로 몰입하고, 충분한 육아시간을 확보하게 돼 만족감이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회사 입장에서도 눈에 띄는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마녀공장의 이직률은 2년 새 4분의 1 수준으로 감소(2021년 말 46%→2023년 말 12%)했고, 매출액도 유의미한 증가세(2021년 647억원→2022년 1018억원)를 보였다.
중소기업인 한화제약도 직원들의 업무별 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유연근무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가령 집합근무가 필요한 생산공장에서는 월·목요일엔 8시간, 화·수는 11시간 30분을 일한 뒤 금·토·일 휴무를 보장하는 '주4일제'가 통용되고 있다. 또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사무직·연구직은 시차출퇴근제를, 외근이 잦은 영업직 직원들은 스마트워크를 주로 활용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제조업체도 생산성 하락 없이 주4일제 도입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줬을 뿐 아니라 시차출퇴근제로 남성 직원들의 육아 참여도 늘어났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한화제약에서 자녀양육 목적으로 시차출퇴근제를 활용 중인 직원의 71%는 남성이다.
LG전자는 연간 최대 6일의 '유급 난임치료휴가' 등 임신기부터 육아기에 이르기까지 전(全) 주기에 걸친 세밀한 지원이 돋보인다는 평가다. 난임 극복차 장시간 안정이 필요한 경우 연 최대 3개월의 난임치료 휴직제도 운영 중이다.
임신한 직원에겐 법정 육아휴직과 별도의 임신휴직을 6개월간 부여한다. '급여삭감 없는' 근로시간 단축제도도 함께 활용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육아휴직은 법정기간에 1년을 더한 총 2년을 쓸 수 있고, 사용 직원들의 복귀 이후 원 부서로의 복귀·평균 수준의 인사평가 등급 보장 등 인사상 불이익을 방지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도 작동되고 있다.
이외 협력사와 지역 중소기업 등도 자사 직원처럼 이용 가능한 '상생형 공동직장어린이집'(포항·광양 2개소)으로 유명한 포스코는 직장어린이집 전체 정원 중 협력자 자녀 비중 50%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현재 총 190개사의 직원 자녀들이 혜택을 보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지난해 10월부터 올 3월까지 585쌍의 난임부부에게 진단 검사비를 지원하는 등 임신을 준비하는 단계부터 육아·돌봄 등을 아우르는 사회공헌 활동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고위험 임산부를 위한 병실 입원료 지원도 준비 중이다.
또한 맞벌이 가정의 돌봄공백을 해소를 위한 공동육아시설인 '신한꿈도담터'를 전국적으로 200곳 조성했고, 중소기업의 육아휴직 대체인력 채용을 지원하는 대중소상생협력기금에 100억원을 출연하기도 했다.
서울시의 경우, 출산장려 및 일·생활 균형을 위한 제도를 도입·시행하는 중소기업에 대해 일정 포인트를 적립해주고, 누적 포인트에 따라 차등적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중소기업 워라밸 포인트제' 등이 모범 사례로 소개됐다.
가족친화·'워라밸' 우수기업은 정기 세무조사 유예 추진
정부는 이 같은 기업 사례들과 현장 건의를 수렴해 일·가정 양립을 위한 세부대책을 내놨다.
우선 앞으로는 단축근무와 반차 등으로 하루 4시간을 일할 때 근로자가 원하면 휴게시간 없이 즉시 퇴근이 가능해진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4시간 근무 시 의무적으로 30분의 휴식을 취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일을 다 마친 후에도 30분을 일부러 더 기다렸다가 퇴근해야 하는 불편이 있었다.
기업들의 가족친화 경영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기 위한 인센티브도 강화한다.
정부는 향후 가족친화인증(여성가족부) 또는 일·생활균형 우수기업(고용노동부 등)으로 선정된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국세청의 정기 세무조사를 유예할 방침이다. 주형환 저고위 부위원장은 "정기 세무조사 유예는 국세청과 이미 합의가 완료된 사안"이라며 "바로 시행될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밝힌 통계에 따르면, 현재 가족친화기업 중 중소기업은 약 4100개, 일·생활균형 우수기업은 총 100개 중 60~70개 정도다.
이어 지방세 세무조사 유예로 추가 확대하는 방안도 지자체들과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 서울시와 부산, 광주, 대전, 충북 등이 해당 방안을 긍정적으로 검토 중이다.
육아휴직 등에 따른 대체인력 확보에 애를 먹고 있는 중소기업도 적극 지원한다.
정부는 한국여성과학기술인육성재단 등 직종별 협회나 단체와 함께 등록 회원들의 구직수요를 발굴해 대체인력 풀을 구성할 예정이다.
"가족과 더 많은 시간 함께하게"…임신·육아기부터 유연근무 제도화
아울러 출·퇴근 부담을 덜고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재택근무와 시차출퇴근제, 근무시간선택제와 같은 유연근무를 '더 많이, 더 쉽게' 활용하게 하기로 했다. 특히 상당수가 필요성에 공감하는 임신·육아기 근로자부터 이러한 유연근무제를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도록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논의를 거쳐 마련한다.현재 근로자가 사업주에게 '청구'해야 하는 배우자 출산휴가는 근로자가 사업주에게 '고지'하는 것으로 절차를 변경해 사용 문턱을 낮춘다. 포스코의 상생형 공동직장어린이집 사례를 참고해 여유가 있는 국·공립 직장어린이집은 지역주민 자녀들에게도 개방할 계획이다. 일단 정부청사에서 운영 중인 직장어린이집 18곳부터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했다.
육아 지원의 사각지대인 자영업자와 플랫폼종사자 등과 관련해선 지원 범위와 방식, 재원조달 방안 등에 대한 연구용역을 진행한다. 연말까지는 관계부처 TF 논의를 통해 제도개선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아울러 중견기업연합회와 중소기업중앙회는 각각의 단체협의회에 '일·가정 양립 위원회'(가칭)를 설치해 우수사례를 공유·전파한다. 저고위와 노동부 등 정부도 필요 시 해당 위원회에 참여해 개선대책을 논의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 6월 인구비상사태 선포 후 육아휴직 급여를 월 150만원에서 최대 월 250만원으로 대폭 인상하는 등 건전재정 기조에도 저출생 3대 핵심분야 예산만큼은 올해보다 22.2% 늘린 19조 7천억 원을 편성했다"며 "7월 출생아 수와 혼인건수 증가 등 출산율 반등의 불씨를 살린 만큼 이제는 확실히 반전의 모멘텀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 부위원장도 "저출생 극복을 위한 사회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문화적 대응 노력도 계속 추진하겠다"며 "가족과 아이의 소중함에 대한 가치가 사회적으로 확산될 수 있게 각종 매체를 활용해 육아의 즐거움 등을 담은 방송 프로그램 제작·홍보를 대폭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