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가습기 살균제 '국가 책임' 인정…"위자료 청구는 기각"

"위법한 직무집행과 피해자 건강에 인과관계 있어"
국가 책임은 인정했지만, '위자료 청구'는 기각

연합뉴스

법원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국가 배상책임을 재차 인정했다. 다만 국가가 이미 구제급여 등으로 배상해 유족들이 추가로 위자료를 청구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17-2부(차문호·오영준·한규현 부장판사)는 지난 26일 A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같이 판결했다.

A씨는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다 2011년 6월 숨진 23개월 아이의 아버지다. A씨의 아이는 가습기 살균제 사용 5개월여 만에 건강이 악화했고, 병원 치료를 받았지만, 2개월 만에 간질성 폐질환으로 숨졌다. 이에 A씨는 2014년 8월 제조사 세퓨와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앞서 1심은 "세퓨가 A씨에게 약 3억7천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하며 제조사의 배상책임을 인정했다. 그러나 A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는 국가를 상대로 항소했고, 2심 재판부는 1심과 달리 국가 책임을 인정했다.

2심 재판부는 "공무원의 과실이 인정되고 이런 위법한 직무집행과 가습기 살균제 사용자들의 건강 피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환경부 장관 등은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이나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GH) 등 이 사건 화학물질에 대한 유해성 심사를 할 때 특정 용도와 노출 환경에서 사용되는 것을 조건으로 심사했음에도 고시할 때는 아무런 기재도 없이 '유독물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만 적어 이를 10년 가까이 방치했다"고 지적했다.

또 "심지어 PHMG에 대해서는 불충분한 과학지식 등에 근거해 고분자물질이라는 이유만으로 독성시험을 면제하면서 물에 잘 녹는지 여부 등도 확인하지 않고 용도 제한 없이 '유독물 등에 해당하지 않는다'라고 공표했다"며 "이는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어 사회적 타당성이 없거나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해 위법하다"며 공무원의 과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위자료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미 A씨가 2021년까지 정부로부터 2억원 넘는 구제급여를 받았고, 이는 A씨에게 인정되는 위자료보다 많았기 때문이다.

앞서 서울고법 민사9부(성지용 부장판사)는 올해 2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등 5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들 중 3명에게 국가가 300만~5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국가 배상 책임을 처음으로 인정한 이 판결은 지난 6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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