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5년 전만 해도 20%대에 머물렀던 중국 전기버스의 국내 시장 점유율이 어느덧 절반을 넘어 이제는 국산을 앞질렀다. 도로에 새로 들어오는 전기버스 2대 중 1대가 중국산일 정도다. 공격적인 시장 확대를 견제하고자 보조금 혜택도 줄여봤지만, 중국 업체들의 굴기는 여전히 꺾이지 않고 있다. 그야말로 중국 전기버스의 전성시대다.
이같은 중국 전기버스의 활약을 두고 그간 업계 안팎에서는 '저가 마케팅'의 성공 사례로 단순 분석했지만 내막은 달랐다. 알고 보니 무서운 속도로 침투한 중국 전기버스의 장악력 뒤에 업체 사이 이면계약으로 차값을 대폭 깎아주는 일종의 '뒷거래'가 횡행했던 것이다. 겉으로는 정당한 값을 지불한 듯 꾸미고선 실제로는 수천만원을 할인해 국산 전기버스와의 가격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꼼수였다. 경찰은 암암리에 퍼진 중국 전기버스 업체들의 뒷거래를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중이다.
25일 CBS 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중국 전기버스를 둘러싼 뒷거래는 업계에서 오랜 시간 관행처럼 이어져왔다. 중국 전기버스를 국내로 들여오는 수입사와 이를 사들이는 운수업체 사이에서 뒷거래가 주로 오갔다. 운수업체가 정부 규정에 따라 지불해야 할 대금을 수입사에서 몰래 깎아주거나 다른 명목으로 보전해주는 수법을 통해서다.
현행 환경부의 전기차 보조금 지침상 전기버스 구매자는 차값의 최소 1억원을 직접 부담해야 한다. 이를 '최소 자부담금'이라고 한다. 해당 지침은 지난 2021년에 처음 도입됐다. 중국 전기버스의 가격이 싼 탓에 운수업체가 정부·지자체 보조금만 받으면 거의 공짜로 살 수 있는 형편이 되자 '최소 1억원을 부담해야 보조금을 주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국산 전기버스 업체가 받는 역차별을 해소하고 시장 형평성을 맞추겠다는 취지가 반영된 지침이었다. 기존 국산 전기버스는 운수업체가 1억원 정도를 부담해야 나머지를 정부·지자체 보조금으로 충당해 구매할 수 있었다.
중국 전기버스 수입사가 노린 대목은 바로 이 '최소 자부담금' 부분이다. 지침이 마련되면서 국산과 중국산 모두 '부담금 1억원'이라는 동일선상에 놓이게 되자 중국 전기버스 수입사들이 아예 뒤에서 차값을 깎아주기로 방향을 튼 것이다. 방식은 차값 할인이나 대출이자 대신 부담 등으로 다양했는데, 그 액수는 전기버스 1대당 3천만원 안팎에 달했다. 결과적으로 최소 자부담금 지침을 무력화하면서 국산 전기버스보다 수천만원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소 1억원을 부담해야 보조금을 지급하는 정부 지침에 맞춰 수입사들은 실제로는 뒤에서 수천만원을 깎아주고도 서류상으로는 1억원을 모두 지불받은 양 꾸며 지자체에 제출했다. 그렇게 지침이 도입된 2021년부터 올해까지 중국 전기버스 수입사와 경기지역 운수업체들이 부당 수령한 보조금만 100억원에 이른다.
그러는 새 중국 전기버스는 국내 시장을 빠르게 파고들었다. 지난 2019년만 해도 신규 등록된 전기버스 가운데 중국산의 비중은 23.9%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54.1%로 부쩍 증가했다. 국내 진출한 중국산 전기버스 브랜드만 10개가 넘는다. 업계 관계자는 "공공자금이 투입되는 버스 사업에서 이면계약에 숨은 베네핏이 중요한 요소가 됨에 따라 국산 전기버스는 밀려나고 결국 중국 기업만 배불리는 꼴이 됐다"고 지적했다.
현재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이같은 중국 전기버스 수입사와 운수업체 간 이면계약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중이다. 최근에는 중국 전기버스 수입사인 E사의 전임 대표와 경기지역 운수업체 대표 등 11명을 보조금 관리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다. E사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회사 차원에서 드릴 말씀은 아무 것도 없다"며 "(사업상)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어떤 부분도 (수사로) 결정된 게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