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가까운 2차 병원 '4시간 48분'…지역의료 붕괴 '골든타임'[영상]

[CBS 창사 70주년 특별기획: '지역을 살피다, 미래를 살리다'①]
최근 전남 한 섬에서 심혈관계질환 앓던 50대 쓰러져 숨져
맹장염 의심 장염 환자 이송하려다 헬기 추락…4명 사망
경북·강원도 유사한 상황…운영 위해 원장들 병원서 숙식
"인구 소멸 위기 지역과 의료 취약지 일치, 우연 아냐"
김영록 전남지사 "어디나 차별받지 않도록 국가가 노력해야"

지난 11월 말 전남의 한 병원 응급실 앞에 환자를 실은 119구급차가 잇따라 들어섰다. 박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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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가장 가까운 2차 병원 '4시간 48분'…지역의료 붕괴 '골든타임'
(계속)

지난달 중순 전남의 한 섬에서 50대 A씨가 이웃 주민에 의해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이후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숨졌다. 그가 살던 섬에는 의사가 상주하거나 순회 진료하지 않는 보건진료소만 있었다. A씨의 상태를 확인해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의료 여건도 마련돼 있지 않았던 것이다.

심혈관계 질환이 있었던 A씨는 정기적으로 병원 진료를 받아 왔으며 불과 열흘 뒤 관련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주위를 더 안타깝게 했다. A씨가 거주하던 섬은 응급환자가 발생할 경우 행정선이나 해경선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병원 이송까지 최소 2시간이 소요되고 닥터·소방헬기로도 1시간은 족히 걸린다.

2015년 3월 중순, 궂은 날씨 속에 맹장염이 의심되는 어린 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전남 신안 흑산면 가거도로 출동한 해경 응급헬기가 추락했다. 당시 3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이후 4명 사망으로 정정)됐다. 이 환자는 실제로는 장염을 앓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만약 섬 내부나 인근에 기본 진료가 가능한 상황이었다면 소중한 생명을 잃지 않았을 것이라는 탄식이 나왔다.

'목숨 내놓고 산다' 전남서만 한 해 응급이송 3만 7천여 건

사망하거나 후유증 발생 가능성이 큰 심혈관계 질환의 골든타임은 넉넉하게 잡아도 4시간 정도다. 전남지역은 '사람이 살고 있는' 유인도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까닭에 심혈관계질환 환자가 발생할 경우 대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심혈관계 질환을 앓고 있는 섬 주민들은 사실상 목숨을 내놓고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2일 전남소방본부 등에 따르면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전남지역에서만 매해 3만 7천 건 이상의 응급 이송이 이뤄지고 있다. 응급 이송은 구급대원이 판단하기에 수분 이내에 신속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나 의식장애, 호흡곤란, 호흡정지, 심정지, 마비 등이 나타날 때를 뜻한다.

전남 도서 지역에서 여객선이나 쾌속선을 이용해 목포나 여수 등의 2차 병원으로 이송되는 시간은 최대 5시간 정도인 것으로 파악됐다. 일부 섬에서는 이미 심혈관계 질환 관련 모든 골든타임이 지나서야 육지나 다른 섬에 도착하는 것이다.

2차 병원은 의료법에 따라 100개 이상의 병상과 7개 또는 9개 이상의 진료과목, 각 진료과목에 전속하는 전문의를 갖춘 의료기관으로 실질적인 응급조치나 대응이 가능한 병원이라고 볼 수 있다.


주민 113명이 사는 전남 진도군 조도면 맹골죽도는 여객선만 258분 타고 진도(본섬)로 나와야 한다. 이후에도 30분 정도 이동해야 진도한국병원으로 이송될 수 있다. 대략 5시간이 걸리는 셈이다.

400명이 넘는 주민이 거주하는 가거도의 경우 쾌속선을 이용해도 200분이 소요되며 차량으로 15분 정도 이동해야 목포한국병원에 도착할 수 있다. 100명 정도의 주민이 거주하는 전남 완도군 청산면 여서도의 경우 여객선만 170분을 타야 한다.

진도군 조도면 서거차도에서 진도에 닿는 시간은 215분으로 차량으로 30분 더 이동해야 한다. 인근 동거차도의 상황도 비슷하다. 서거차도는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 당시 가장 많은 생존자가 이송됐던 곳이다. 당시 만약 응급 환자가 있었다면 치료는커녕 이송조차 어려웠을 수 있다.

서거차도 주민 한현재(63)씨는 "같은 국민으로서 지역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의료 여건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며 "큰 병은 차치하고 작업 환경이 특수해 직업병을 앓고 있는 주민들이 적지 않은데 병원비의 몇 배를 교통비와 숙박비로 지불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응급 환자가 아니더라도 섬 지역 주민들은 간단한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이틀을 내야 한다. 서거차도에 사는 주민들은 같은 진도군에 있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서도 꼬박 하루를 섬 밖에서 머물러야 한다. 진도군에서 섬을 오가는 배편이 하루 왕복 한 번밖에 없기 때문이다. 목포나 광주 등 다른 지역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이틀 이상 소요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북·강원 상황도 유사…생존 위해 병원서 사는 원장들

이 같은 상황은 비단 전남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북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경북의 인구 1천 명당 의사 수는 1.39명으로 전국 최저 수준으로 상급종합병원이 단 하나도 없다. 대구지역 대학 의대 정원이 218명이 늘면서 가장 많은 정원을 보장받았지만 이들 중 얼마나 많은 의사가 경북에서 일할지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안동대는 경상북도에도 국립 의대를 추진해야 한다는 내용의 국회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강원도 역시 상급종합병원이나 대학 병원이 있는 춘천, 원주, 강릉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지역이 사실상 의료 취약지역이다. 강원도청 관계자는 "전국적 현상이기는 하지만 수도권에 비해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하더라도 수개월 만에 떠나는 의사가 적지 않다"며 "도 대부분이 산지인 상황에서 환자가 이동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더 소요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응급실을 운영하는 경북 의성군의 영남제일병원과 강원 양구군의 양구성심병원은 60대 넘은 병원 원장들이 사실상 1년 내내 응급실 근무에 투입되고 있다. 공보의 지원마저 줄어 의사 한 명이 두 명 이상의 몫을 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이들 병원장들이 참여하는 농어촌의료취약지 병원장협의회에는 11월 말 기준 총 27개 병원장이 활동하고 있는 가운데 전남이 11명으로 가장 많고 경북이 7명, 강원이 3명이다.
 
전남 신안군 비금면의 신안대우병원 바로 앞에는 응급의료 전용헬기 긴급 이·착륙을 위한 공간이 마련돼 있다. 박요진 기자

이들 섬에 비하면 인공지능을 꺾은 유일한 바둑기사인 이세돌의 고향, 전남 신안군 비금도에 사는 주민들의 상황은 그나마 낫다. 1차 진료가 가능한 신안대우병원이 있기 때문이다. 의료기기 등이 상대적으로 열악해 정확한 진단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목포 등으로 환자를 이송시키는 중요한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상황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최명석 원장(농어촌의료취약지 병원장협의회 총무)을 포함한 의료진의 희생이 있기에 가능하다.

광주에 가족들이 사는 최 원장은 안정적인 병원 유지를 위해 2주일에 한 번만 섬 밖으로 나간다. 광주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20시간 남짓에 불과하다. 토요일 오후에 섬을 나섰지만, 일요일 오후에는 섬으로 돌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감기약 짓기 위해 육지로'…"생각만 해도 끔찍"

비금도에서 버스를 운전하는 소일섭(58)씨는 "대우병원의 존재만으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른다"며 "의학 지식이 없는 환자로서는 큰 병원에 가야 하는 상태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지만 의료진이 이를 판단해 알려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관광업에 종사하는 이모(62)씨의 생각도 비슷하다. 이씨는 "대우병원에서 더 많은 진료가 가능해지길 바라는 주민들이 있는데 이는 그만큼 대우병원의 역할이 크다는 방증"이라며 "단순 감기 증상만으로도 목포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사실 끔찍하다"고 말했다.

일반 환자가 여객선을 타고 목포 지역 병원으로 이동할 때 최소 2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응급환자가 발생할 때 신안군에서 운영하는 나르미(선박)와 닥터 헬기 등을 이용해 이송하기도 하지만 기상악화 등으로 골든타임을 지키지 못하기도 한다.

최명석 원장은 "인구 소멸 위기 지역과 의료 취약지 대부분 일치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인구 소멸 극복을 위한 마련된 예산 일부를 의료 취약지 개선에 사용하는 방안이 검토돼야 하는 이유"라며 "최소한의 의료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곳에서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 살거나 아이를 낳기를 기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완도대성병원은 완도에서 신안대우병원 이상의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대성병원은 응급실까지 운영하고 있어 심혈관계 질환 등 응급 환자에 대한 기본 조치를 취한 뒤 목포한국병원 등으로의 이송을 돕고 있다.

대성병원에서 받은 초기 진료와 검사 결과는 그대로 한국병원으로도 공유돼 환자가 어떤 치료가 필요한 상태인지 준비를 가능하게 한다. 얼마 전 대성병운을 찾은 한 60대 남성은 자신이 심근 경색으로 쓰러져 대성병원으로 이송됐는데 초기 조치가 잘 이뤄져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며 감사함을 표하기도 한다.
 
완도대성병원에는 내과2·외과2·산부인과1·소아청소년과1·정형외과1·신경외과1 등 총 8명의 전문의가 근무 중이며 전체 98개 병상이 운영되고 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전이양 원장은 위급 상황이 발생할 경우 출산을 지원하고 있다. 몇 해 전 일요일 오전 긴급 분만을 한 아이가 출생 이후 숨을 쉬지 않는 응급 상황이 발생했지만 심폐소생술 등을 통해 아이의 소중한 목숨을 살리기도 했다.
 
전이양 원장(농어촌의료취약지 병원장협의회 부회장)은 "응급실 운영 등을 고려할 때 한 과당 최소 2명 이상의 의사가 근무해야 하는데 상황이 여의찮아 진료 환경이 열악해지는 악순환에 놓여 있다"며 "응급실의 정상적 운영을 위해서는 하루 15명 정도가 근무해야 하는데 현재 상황에서는 인건비도 충당할 수 없는 구조로 병원 전체적으로 한 해 수억 원의 적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 원장 역시 마음 놓고 휴가를 떠난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상황이다. 의사들뿐만 아니라 간호사 등 다른 의료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지역을 찾는 일정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고 나가더라도 이틀 이상 시간을 보내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비금도 신안대우병원 등의 의료진 일부는 신속한 대응을 위해 아예 병원 안에서 지내기도 한다. 공공이 담당해야 할 역할의 일부가 민간병원에 떠넘겨진 상황에서 사실상 모든 책임이 해당 병원의 의료진들에게 맡겨진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어디에서나 차별받지 않고 살 수 있어야"

이 같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방안으로 더불어민주당 김윤 의원이 대표 발의한 공공의료 강화 4개 법안이 제시되고 있다.

지난 11월 15일 국회 소통관에서 대한민국 의료체계 공공성 강화 4개 법안을 공동발의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완도대성병원 제공

김 의원이 발의한 '공공의료 강화 4법(공공보건의료법·농어촌 보건의료특별법·지방의료원법·지방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공공의료 인프라 확충과 역량강화를 위해 진료권 중심의 공공병원 확충 근거 조항을 마련하고 ▲공공의료 정책 결정 거버넌스 강화를 위해 진료권 중심의 공공의료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 ▲공공의료가 '착한 적자'를 감당할 수 있도록 지역필수의료기금을 재원으로 하는 특별회계를 신설해 재정 지원 기전을 마련했으며 ▲공공병원 간 협력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중앙 공공보건의료지원센터를 지정하고, 시도 공공보건의료지원센터 설치를 의무화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여기에 의료취약지에 대한 규정이 모호한 상황에서 이에 대한 지원 근거 등을 만들기 위한 용역을 울산대 의과대학에 진행하고 있다. 해당 용역이 완료될 경우 전국적 의료취약지 실태는 물론 지원 방안 마련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전국에서 가장 의료 여건이 취약한 곳으로 평가받는 전라남도에서는 전국 시·도 중 유일하게 의과대학이 없는 현실을 고려해 국립 의과대학 설립과 병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목포대와 순천대가 통합을 통한 의대 유치에 나선 가운데 양 대학은 공동 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최근 첫 회의를 열기도 했다. 오는 2026년 3월 개교를 목표로 하고 있는 가운데 의대 정원 확보가 가장 큰 과제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의과대학과 상급종합병원이 없는 전라남도는 그간 대한민국 국민의 기본권리인 생명권, 건강권조차도 보호받지 못했다"며 "대한민국 국민으로 어디에서나 차별받지 않고 살 수 있도록 국가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정부는 통합대학 의과대학에 의대 정원을 신속하게 배정해야 안정적인 대학 설립과 운영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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