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주판알 튀기면 망한다…내란사태에서 정치인이 걸어야 할 길

"정치인 체포해 과천 수감 장소에 수감하려 했다" 충격적 증언 공개
입법부 무력화 노린 비상계엄은 '체제전복 기도'
지금은 엄중한 시국…대의명분 붙잡고 정도 걸어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비상 의원총회가 열리고 있는 6일 오전 당대표실을 나와 국회를 나서고 있다. 황진환 기자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6일 "윤석열 대통령의 조속한 직무집행 정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직무집행 정지'라는 표현으로 대신했지만, 사실상 탄핵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표명한 것이다. 입법권력 전복을 기도한, 사태의 엄중함을 감안할 때 환영할 만한 일이다.
 
충격적인 대목은 한 대표가 최고위원회의에서 공개한 비상계엄 사태의 내막이다. 한 대표는 "계엄령 선포 당일 윤석열 대통령이 주요 정치인 등을 반국가세력이라는 이유로 고교 후배인 여인형 방첩사령관에게 체포하도록 지시했던 사실, 대통령이 정치인들 체포를 위해 정보기관을 동원했던 사실을 신뢰할 만한 근거를 통해서 확인했다"고 밝혔다. 심지어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그렇게 체포한 정치인들을 과천의 수감장소에 수감하려 했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것도 파악됐다"고 말했다.
 
현장에 투입된 육군 특전사 요원들에 따르면 계엄이 발령되기 전에는 '북한 관련 상황이 심각하다', '카트리지(탄창)도 사용할 수 있게 정비할 것'이라며 작전에 투입될 수 있다는 공지가 하달됐으나 실제 헬기를 타고 내린 곳은 대북작전이 아니라 여의도 국회였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발언과 정황이 사실이라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일 밝힌 비상계엄 선포 당시의 특별담화가 단순한 엄포용이 아니었음을 상기시킨다. 소름이 돋고 머릿카락이 쭈뼛 설 정도로 섬뜩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시 특별담화에서 "지금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다"며 "저는 가능한 한 빠른 시간 내에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고 국가를 정상화시키겠다"고 말했다. 빠른 시일 내 반국가세력을 척결하겠다는 약속이 구체적인 계획으로 추진됐음을 암시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주요 우방국들이 민주질서 회복을 기대하며 사태의 전개를 예의주시하고 있으나, 내란을 획책한 세력들 대부분이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국가를 위해서 커다란 위협요인이 아닐 수 없다는게 대다수 민심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내란 사태에 불법적으로 참여한 군지휘관들에 대한 인사조치를 하지 않고 있고, 대통령의 충암고 9년 후배이자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장을 거친 여인형 방첩사령관도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우물쭈물 하다간 비상계엄을 포함해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극약처방이나 돌발행동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야6당이 발의한 윤석열 탄핵소추안이 7일 오후 국회 본회의 표결을 앞두고 있다. 야당출신 국회의장을 포함해 현재 범야권의 전체 의석수는 192석으로, 국민의힘에서 최소 8명 이상의 이탈표가 나와야 탄핵소추안이 가결될 수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이날 입장선회로 국민의힘에서 다수의 이탈표가 나올 공산이 커졌지만 당내 중진의원들은 탄핵반대를 표명하고 있어서 탄핵안 가결 여부는 아직 가늠하기 어렵다.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 사회민주당 한창민 대표, 기본소득당 용혜인 대표, 조국혁신당 신장식 의원, 개혁신당 천하람 원내대표가 지난 4일 오후 국회 의안과에 대통령(윤석열) 탄핵소추안을 제출하는 모습. 황진환 기자

그러나 이번 사태의 수습 문제는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주판알을 튀길 사안이 결코 아니다. 헌정질서를 지키고 국제사회의 기대에 부응해 민주국가의 위상을 바로 세우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순실 게이트'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내란음모와 실행에 관한 문제이다. 무력으로 입법부를 제압하고 전복하기 위해 정치인 불법구금을 계획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3권 분립이 민주주의의 요체인데, 입법권력 장악 등 3권을 다 가지려는 것 자체가 독제체제를 꿈꿨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다. 잘못을 시정하고 단죄하는 것이야 말로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헌법 1조1항을 굳건히 지키는 길이라 본다. 헌법을 지키는데 있어 좌고우면이나 눈치보기, 간보기, 주판알 튀기기가 끼어들어선 곤란하다. 성급하게 차기 대선의 유불리를 개입시키는 것 자체가 사태의 본질에서 벗어난 발상이라 본다.
 
이미 세계 각국이 대한민국을 여행 주의국으로 지정하고 있다. 위험한 나라라는 것이다. 환율은 계속해서 오르고 있다. 대한민국의 화폐가 제값을 못받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 판국에 국회를 침탈당하고도 입법부 일각에서 한가하게 정치적 유불리나 따지고 있다면 아직도 정신을 못차린 것이라 볼 수밖에 없다.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자세는 대의명분을 갖고 정도를 걷는 길일 것이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소명을 이야기한다. 직업정치가가 권력에 수반되는 책임을 제대로 감당하려면 열정과 책임감, 균형감을 갖춰야 하는데 열정은 대의명분에 대한 헌신이라는 것이다.
 
수 많은 헌법학자와 법률가들은 이번 사태를 명백한 위헌이자 위법한 행위라고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를 짓밟은 것은 주권자인 국민을 위협한 행위에 다름아니다. 이 때문에 위임한 권력을 회수하는 것은 헌법에 근거한 정상국가의 당연한 절차다. 정치인이 붙잡아야 할 대의명분, 걸어야 할 정도(正道)에서 벗어나려 한다면 국민적 심판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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