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양치기' 한동훈이 될 것인가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 황진환 기자

법조기자 시절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직접 만나지 못했다. 그는 국정 농단 특검 파견 이후 검찰의 주요 수사를 기획하고 좌우하는 슈퍼스타였다. 이미 알려졌지만 '서초동 편집장'이라고 불렸다.

심지어는 검찰 출입 한 달도 안 된 기자를 불러다 수사 내용을 지도(다이어그램과 유사)를 그려가며 기사 보도를 재촉했다. 그 기자는 해당 언론사 팀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고 기사를 써도 되는지 물었다.

맘먹고 흘려주는 검찰 취재원의 기사를 쓰는 일은 결과적으로 '받아쓰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저널리스트 윤리측면에서 꺼림칙했던 것이다. 그 팀장은 '쓰라고 흘려준 수사 내용인데 기사 처리를 하자'고 말해 결국 그가 흘려준 내용은 기사화가 됐다. 법조기자 시절 알고 있는 한동훈에 대한 인식은 이것으로 끝났다.  

한동훈은 총선 패배 이후 국민의힘 당 대표로 선출되면서 비로소 정치적 성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으로 4.10 총선을 주도할 때 작위적이며, 지나치게 관심을 끌려고 하는 동작들이 편견을 더했다. 하지만 당 대표에 오른 직후,  한동훈은 이전과 다른 정치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역시 정치인은 시련과 어려움 속에서 정치적 근육을 키우게 되는 모양이다. 그를 정치적으로 성장시키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그를 한때 '독립 투사'라고 불렀던 윤석열과 당내 친윤들이라고 할 것이다. 윤석열이 12.3 계엄 내란을 저질렀을 때, 그는 사태 초기에  "비상 계엄 선포는 위헌"이라고 명료하게 말했다. 그의 발언은 국민들에게 일말의 안도감을 줬다. 만약 그가 친윤들처럼 "비상 계엄은 야당에 대한 경고성이고 해프닝이었다"고 했다면 그에 대한 기대감은 완전히 사라졌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을 끝까지 믿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의 언행은 중의적이고 지나치게 해석적이어서 도대체 결론이 어디로 튈지 짐작하기 어렵다. 그에게서 양치기 소년의 기질을 보고 실망하게 된다.

박종민 기자

계엄은 위헌이라고 말했던 그가 다음날에는 "비상 계엄을 합리화할 순 없지만 당 대표로서 준비 없는 혼란으로 인한 국민과 지지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 이번 탄핵은 통과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또 그 다음날에는 "윤석열이 자신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직접 내렸다며 조속한 직무 집행 정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탄핵을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종잡기 어렵다.

그의 '국민 눈높이' 발언은 기준과 잣대가 늘 변한다. 그 눈높이가 자신의 키높이가 아님은 분명할 것인데, 내란 사태 속에서 그에게 매일 속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도 윤석열이 "당에 자신의 임기를 일임한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하자, 한동훈은 "대통령의 조기 퇴진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국회가 오늘 표결에 부친 탄핵에 동의할 생각이 없다는 얘기다.

정치인은 발언에서 해석의 영역을 남겨둘 수 있다. 그러나 더이상 국정 수행이 불가능한 대통령의 직무 정지를 온 국민이 학수고대하고 있는 시점에서 정치적 '간'을 보며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는 일은 실망스럽다.

특히 그는 윤석열의  담화 발표 직후, 국무총리 한덕수를 만나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 한덕수가 내란 범죄에서 어떤 지위를 가지고 있었는가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덕수는 내란죄의 공범 혐의자라 할 수 있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제외하면, 그는 국무위원 가운데 유일하게 윤석열의 비상 계엄 선포 사실을 미리 알았던 인물이다.

비상 계엄 선포 사실을 미리 알았던 한덕수는 국무 위원들의 국무회의 참석을 미리 막아야 할 의무가 있었다. 왜냐하면 비상 계엄 선포는 국무회의에서 '의결' 사안이 아니라 '심의'로 통과된다. '의결'을 거친다면 각각의 국무위원들이 거수를 통해 자신의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 즉, 각자가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 윤창원 기자

그러나 비상 계엄이 심의 사항에 해당하므로 한덕수는 불법적 비상계엄을 막기위해 국무회의 소집도 응하지 말아야 했다. "비상계엄 선포가 위헌"이라고 말했던 그가 비상계엄 선포를 알고 용인한 인물과 후속대책을 논의한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한동훈이 당내에서 배신자 프레임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사실은 현실적인 정치 계산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치적 유불리에 해당한다. 국가 지도자를 꿈꾸는 그가 바라봐야 할 목표는 얄팍한 계산이 아니라 이 나라 대한민국의 미래다.

한동훈도 지적한 것처럼, 윤석열은 통치능력을 이미 상실했다. 미국 정부의 고위 외교관은 이미 윤석열이 "나쁜 오판을 했고 비상계엄은 불법"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영원한 우방인 이스라엘의 총리 네탄야후조차 총 한발을 발사하더라도 미국에 먼저 통보한다. 숨소리도 같이 나눈다며 동맹을 강조했던 윤석열에게 미국 정부는 완전히 속았다며 분개하고 있다.

외교가에서 들려오는 일본 외교관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일본 총리 이시바 시게루조차 "황당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 바이든은 "한미일은 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한다며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윤석열이 민주주의 가치를 불법적으로 훼손시켰기 때문에 그와 함께 하기 어렵다는 분위기이다. 국제 무대에서 윤석열의 정상적인 외교는 이미  불가능해졌다. 윤석열이 국제무대에 나간다면 서방의 지도자들은 그를 '독재자'로 바라볼 것이다.

외교만 문제가 아니다.  윤석열은 이미 군통수권자로서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 통치 기반을 상실한 것이다. 이런 대통령의 직무를 당장 정지시키지 않고, '조기 퇴진'이라는 꼼수로 정권 연장을 한다면 한동훈은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리게 된다. 또한 그의 정치적 성장을 훼손시킬 것이다.

정치인은 어떤 상황에서도 전부를 얻을 수 없다. 정치에서 득점은 어차피 51대 49의 게임이다. 정치인이 얻을 이익이 있다면, 자신의  손발을 내놓고 결단을 할 때가 있다. 국가 지도자로 성장하는 길은 어렵고 힘들다. 당근만 먹겠다며  '양치기 소년' 수법으로  국민들을 더이상 기만하지 않고 먼저 나라를 구하는 지도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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