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의 강'을 거부한 국민의힘이 공산당을 닮아가고 있는 것 같다. 한동훈 당 대표는 '질서 있는 조기퇴진'이라는 사술을 동원해 당이 주도하는 국정 운영 계획을 밝혔다. 국민들을 농간해도 분수가 있는 법이다.
한동훈 대표는 국회 탄핵 투표가 예정된 7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한덕수 총리를 만났다. 이어 8일 오전에는 두 사람이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정국 안정 방안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두 사람은 "질서 있는 대통령 조기 퇴진으로 정국을 수습하겠다"며 "윤 대통령은 퇴진 전이라도 외교를 포함해 국정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를 포함해 국정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대통령의 직무 정지를 말한다. 대통령의 유고 상태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두 사람이 대통령 직무정지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윤석열은 행안부 장관 이상민의 사표를 수리했다. 윤이 대통령의 대표적인 고유 권한 중 하나인 '인사권'을 행사한 것이다. 불과 4시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일이다. 한동훈의 윤석열 직무정지는 '거짓'임이 확인된 셈이다.
더욱이 대통령의 직무 정지를 총리와 당 대표가 선언할 수 있는 근거가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당초 대통령의 직무정지는 탄핵이나 스스로의 하야 밖에는 성립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만나 대통령 권력을 찬탈하거나 대통령 놀음을 하지 않고서야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동훈은 이상민 사표 수리에 대해 "대통령의 적극적 직무행사라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이 발언 또한 충격적이다. 국민의힘 당 대표가 헌법과 법률 위에 존재하는 '공산당 지도자'라도 되는 건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느 것은 적극적 직무행사이고, 어느 것은 소극적 직무행사이며, 또 어느 것은 긍정적 직무행사이고 어느 것이 부정적 직무행사라 할 수 있는가. 그 기준을 한동훈 대표가 정해줄 수 있는가. 마치 공산당 지도자의 현지 지도를 보는 것 같다.
한동훈은 당 대표 이전, 자타가 공인하는 법률가이다. 법률가라면 공산당 지도자식 '질서'를 말하지 말고, 헌법과 법률에 적시된 '질서'를 얘기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순조로운 질서 방식이다. 윤석열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다. 비록 그가 내란죄의 수괴로 처벌 위기에 놓여있으나 당장은 엄연한 현직 대통령 신분이다.
우리 헌법은 제1조 2항에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못박았다. 이 말은 선거로 선출된 공직자만이 국민으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았다는 사실을 말한다. 비록 현직 대통령이 형사 소추의 대상이 되는 '내란죄 피의자'라 하더라도, 대통령은 대통령이다. 불행한 일이지만 헌법은 이런 상황을 염두해두고 질서 있는 대통령의 사임 절차를 정해 놓았다. 헌법보다 당이 우위에 있는 공산국가라면 몰라도 그 유일한 방법이 탄핵인 것이다.
헌법의 퇴진 절차를 무시하고 여당 대표와 국무총리가 담합하여 사실상 직무정지 상태인 대통령의 권한을 자신들이 대신하겠다는 발상은 철회돼야 한다. 더욱이 윤석열은 7일 발표한 담화에서 스스로 직무정지를 선언한 사실이 없다. 그는 "임기를 포함해 정국 안정 방안은 우리 당에 일임하겠다"고 했으나, "향후 국정 운영은 우리 당과 정부가 함께 책임지고 해나가겠다"라고 밝혔다. 윤 스스로 권한을 함께 행사해 나가겠다고 분명히 말했다.
한덕수와 한동훈 사이에, 또 윤석열 사이에 국민들이 알지 못하는 모종의 '밀약'이 존재하는지 의문스럽다. 설사, 밀약이 있다손치더라도 그 밀약은 모두 불법이며 위헌적이다. 문제가 되자, 한 대표는 "주11회 이상 총리-대표 정례회동이지 국정권한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백 번을 이야기해도 꼼수일 뿐이다. 이는 남의 집 부동산 등기를 가로 챈 뒤 등기 말소가 안 된 집주인을 대신해 자신의 이름을 등기하는 이치와 다를 것이 없다.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수십만 명의 시위대가 탄핵을 외치던 날, '국민의 눈높이'를 외치던 한동훈은 이미 '윤석열과 함께'하며 국민에게 등을 돌렸다. '내란수괴 체포'가 울려퍼졌던 광장에서 수많은 10, 20대, 30대 젊은이들은 강추위 속에서 몸을 덜덜덜 떨며 국민의힘과 한동훈 대표에게 호소했다. 제발 당장의 '정치적 이득'이 아니라 '국민의 이득'부터 생각해달라고 외치고 또 외쳤다. 그들이 원하는 건 조속한 탄핵심판이다.
탄핵 투표 참여 집단 거부로 국민의힘은 '국민의 적'이 되었다. 국민과 국회에 총을 겨눈 내란수괴와 공범이 되는 길을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질서 있는 조기 퇴진'이란 반헌법적이고 공산당 식 슬로건을 내걸어 또다시 국민을 아둔하게 속이려 하고 있다.
한동훈 대표의 '조기 퇴진' 속셈은 '제 2의 노태우'를 꿈꾸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의힘이 탄핵심판 참여를 거부한 직후 김용현은 검찰에 출석했고 긴급체포됐다. 검찰은 윤석열을 피의자라고 불렀다. 한 대표는 검찰과 교감 하에 탄핵을 피하고 검찰 수사를 통해 윤을 퇴진시키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공간을 확대하기 위해서 말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도무문이라고 했다. 큰 길에는 문이 없다. 혼란할수록 법에 정해진 절차에 따라야 국민이 동의한다. 헌법과 법률에 기반해 대통령의 퇴진을 이룩하는 것만이 대한민국의 혼란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가 공산국가 아닌 이상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