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의 망상 걷어내는 한강의 '언어'…'노벨 주간' 피날레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칼 구스타프 16세 스웨덴 국왕으로부터 노벨문학상 메달과 증서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가장 어두운 밤에 우리의 본성에 대해 질문하는, 이 행성에 깃들인 사람들과 생명체들의 일인칭을 끈질기게 상상하는, 끝끝내 우리를 연결하는 언어를 다루는 문학에는 필연적으로 체온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렇게 필연적으로, 문학을 읽고 쓰는 일은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들의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폭력의 반대편인 이 자리에 함께 서 있는 여러분과 함께, 문학을 위한 이 상의 의미를 나누고 싶습니다."

아시아 여성 첫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소설가 한강이 지난 10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 콘서트홀에서 열린 시상식 뒤 이어진 연회를 통해 밝힌 소감의 일부다. 윤석열 정권의 12·3 내란사태 이후 상식에 반하는 충격적인 관련 증언이 이어지는 가운데 단비처럼 내린 축복의 언어였다.

이날 노벨문학상 시상식에서 한림원 종신위원인 스웨덴 소설가 엘렌 맛손은 연설을 통해 "(한강의 작품 속) 인물들은 상처를 입고 부서지기 쉬우며 어떤 면에서는 나약하지만, 그들은 또 다른 발걸음을 내딛거나 질문을 던질 만큼의 충분한 힘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인류를 위로하는 한강의 언어 덕에 우리는 긴 어둠의 터널 끝에 맺힌 찬란한 빛을 목격하고 있다. 우리를 다독이는 한강의 언어는 12일 스웨덴 스톡홀름 왕립연극극장에서 열린 '노벨 낭독의 밤' 행사를 통해 절정에 이르렀다.

한강은 이 행사에서 12·3 내란사태를 언급하면서 "이번 일로 시민들이 보여준 진심과 용기 때문에 감동을 많이 했다"며 "그래서 이 상황이 끔찍하다고만 생각하진 않는다. 밖에서 보는 것처럼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는 "광주의 기억을 트라우마로 가지고 있는 제 또래나 저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도 (시위현장에) 많이 가셨다"며 "그대로 두면 상황이 얼마나 나빠질 수 있는지 알기에 모두가 걱정과 경각심을 가지고 행동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시위 현장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제 책(소년이 온다)을 읽고 있는 분들의 사진을 봤다"며 "뭉클한 마음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시민들이 보여준 진심과 용기에 감동"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11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출판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강은 이날 낭독의 밤 행사에서 소설 '희랍어 시간'을 깜짝 낭독했다. 7백여 객석을 가득 메운 현지 관객들은 잔잔하면서도 힘있는 한강의 언어에 귀를 기울였다.

그가 우리말 원문으로 '희랍어 시간' 일부를 낭독한 뒤 스웨덴 배우 카린 프란스 셸로프이 번역본을 낭독했다. 이로써 지난 6일부터 일주일 동안 진행된 '노벨 주간'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노벨 주간 공식 일정을 모두 마친 한강은 곧 귀국, 다시 집필에 매진할 계획이다. 앞서 한강은 노벨문학상 수상 뒤 첫 공식석상인, 지난 10월 17일 서울 삼성동 아이파크타워 포니정홀에서 열린 '제18회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 무대에 올라 다음과 같이 집필 계획을 전한 바 있다.

"약 한 달 뒤에 저는 만 54세가 됩니다. 통설에 따라 작가들의 황금기가 보통 50세에서 60세라고 가정한다면 6년이 남은 셈입니다. 물론 70세, 80세까지 현역으로 활동하는 작가들도 있지만 그것은 여러 모로 행운이 따라야 하는 일이니, 일단 앞으로 6년 동안은 지금 마음속에서 굴리고 있는 책 세 권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습니다. 물론, 그렇게 쓰다 보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 6년 동안 다른 쓰고 싶은 책들이 생각나, 어쩌면 살아 있는 한 언제까지나 세 권씩 앞에 밀려 있는 상상 속 책들을 생각하다 제대로 죽지도 못할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지만 말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참을성과 끈기를 잃지 않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일상의 삶을 침착하게 보살피는 균형을 잡아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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