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열흘도 채 남지 않은 가운데 지난 2월 시작된 의·정 사태는 10개월 넘게 '현재진행형'이다. 핵심은 2025학년도 의대 정원이다. 문제는 이달 31일 정시 모집을 앞두고도 내년도 정원 관련 갈등이 해결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의료계는 여전히 '의대 2천 명 증원 백지화(취소)'를 요구하고 있지만,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후 권한대행 체제로 넘어온 현 정부가 기존의 정책 기조를 뒤집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게 중론이다.
정치권에서는 행정상 문제로 '2026년도 의대 정원규모'로 논의방향을 트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다만 의료계는 내년도 증원 절차가 끝내 완료될 경우, 내후년은 아예 의대 신입생을 받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이라 정시 선발 직전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23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대한의사협회(의협)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교육부와 회동을 갖고 2025년도 의대 정원 관련 증원규모를 재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다.
이 자리는 각각 국회 교육위원회·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의원과 같은 당 박주민 의원의 주선으로 마련된 것으로 파악됐다.
의협 박형욱 비상대책위원장은 전날 서울 용산구 의협 회관에서 열린 '의료농단 저지 및 책임자 처벌을 위한 전국의사대표자회의' 종료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 같이 밝혔다. 당일 회의에는 의대 교수와 전공의, 의대생, 개원의, 봉직의 등 200여 명이 모였는데, '12·3 내란 사태'로 윤 대통령이 탄핵된 이후 의료계 모든 직역이 만나 머리를 맞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들은 회의에서 채택된 결의문을 통해 최후의 순간까지 2025년도 의대정원 감원을 위해 대정부 투쟁을 이어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전국 14만 의사를 대표하는 전국의사대표자 일동'은 "2025년 의대 모집은 최대한 중단돼야 한다"며 애당초 증원정책 자체에 '합당한 근거와 절차'가 누락됐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부가 이런 경고를 무시한다면 2026년 의대 모집을 중지하고 급격히 증가한 의대생들을 순차적으로 교육시키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이 예정대로 마무리된다면 내후년은 교육 여건상 신입생이 '0명'일 수밖에 없다는 취지다. 박 위원장은 "의대 정원은 원래 3천여 명이었는데 내년도 의대 모집이 그대로 진행되면 (휴학생 포함) 의대생(예과 1학년)이 7500명이 돼 평시보다 2배 이상 많아진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현재 각 대학은 지난 13일까지 수시모집 최초합격자 발표를 마친 뒤 추가합격자 발표를 진행 중이다. 추가합격자 충원까지 끝나는 27일부터 30일 사이에는 수시 전형으로 뽑지 못한 미충원 인원을 이월한 정시모집 선발인원을 확정해 학교별 홈페이지에 공고해야 한다.
대학들이 수시를 통해 뽑으려 했으나 선발되지 못한 TO는 정시로 넘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때문에 의료계는 수시 미충원 인원을 전원 이월하지 않는 방안을 정부와 여야에 계속 요구해 왔다. 현 상황에서 내년도 의대 정원을 일부라도 감축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카드다.
전국 39개 의대의 내년도 신입생 모집인원은 전년도 대비 1497명 늘어난 총 4610명이다. 이 중 과반인 3118명(67.7%)은 수시로, 나머지 1492명(32.4%)은 정시 선발로 각각 할당됐다.
다만, 의대정원 급증에 따라 소위 'N수생'이 몰린 이번 대입에서는 중복합격에 따른 수시합격 등록 포기도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로학원 등에 따르면 서울권 의대 수시 최초합격자의 미등록 비율이 36.7%에 달하는 등 수시 미충원 인원이 예년보다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공식적으로 '의대 모집 전면중지'를 고수 중인 의료계가 각론으로는 수시 미충원 인원의 정시 미이월을 최선의 대안으로 밀고 있는 배경이다.
입시는 각 대학의 고유한 전권임을 강조하며, 의대 학장들의 '결단'을 촉구한 것도 이와 동일한 맥락이다. 정부 지침과 무관하게, 학교들이 자체적으로 정시 모집에 제동을 걸어 달라는 것이다.
전날 의사대표자 회의에 같은 '의사 출신'인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과 참석한 개혁신당 이주영 의원도 비슷한 제안을 내놨다. 이 의원은 "젊은 의사들이 다시 이 일(의료)을 하고 싶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선배의사들뿐"이라며 "저는 지금 정시 모집을 중단시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각 의과대학에 그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기엔 탄핵 정국으로 여야 대치가 강화된 국회 상황상, 극적인 '합의'로 법령 개정 등을 이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거란 판단도 깔렸다.
이 의원은 "교육부 또한 책임지기 대단히 어려워한다"며 "이럴 때 (각 학장 및 교수들이) '우리 학교에 관한 법적인 문제, 소송까지도 책임지겠다'며 준비된 만큼 (신입생을) 뽑겠다고 학생들 앞에 꼭 나서 달라"고 호소했다.
이러한 의료계 분위기를 감안할 때, '2026년도 의대 감원' 여지를 약속하는 것은 당장의 출구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현재 국회에는 의료인력수급추계위원회 논의를 통해 향후 의대 정원을 결정토록 한 법 개정안이 총 3개(민주당 김윤·강선우 의원, 국민의힘 김미애 의원 각각 대표발의) 계류 중이다.
강선우 의원이 대표발의한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일부개정안은 특히 부칙에 특례조항을 두어, 전년도 증원 관련 사회적 부작용 등으로 규모 조정이 필요할 경우 감원이 가능하다는 점을 명시했다.
의료계에서는 이를 두고 일부 환영의 뜻을 표하면서도, 내후년 의대 정원은 아직 '차후의 문제'라는 기류를 보이고 있다.
박 비대위원장은 지난 19일 교육·복지위원장과의 비공개 간담회에서도 일단은 2025학년도 의대정원 문제부터 매듭지어야 한다는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파악됐다.
교육부는 수시 미충원 인원을 정시로 이월하지 않는 방안 등 의료계가 요구해온 대안을 수차례 검토해 봤으나, 소송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일체 조정이 불가하다는 방침이다. 의정사태 이후 정부는 의료계가 의대 정원 관련 합리적 단일안을 제시할 경우, 2026년도 의대 정원은 현장 의견을 반영해 충분히 조정할 수 있다는 입장 외 뚜렷한 대안을 제시한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