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난달 3일 밤 외교부가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에게 공식적으로 취한 첫 조치는 전화로 '계엄 관련 성명서'를 통보하듯 낭독한 일로 파악됐다.
최근 임기를 마친 필립 골드버그 전 주한 미국대사는 9일 보도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달 3일 한국 측에서 아무도 전화를 안 받는 상황에서 "외교부의 누군가가 자고 있던 나에게 전화를 걸어 계엄관련 성명서(statement)를 읽어줬다"며, 이에 "나는 이의를 제기했고, 반대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한국 측과의 접촉에 어려움을 겪던 골드버그 전 대사는 외교부의 전화 통보에 이어 가까스로 "대통령실의 누군가와 통화했는데 그는 계엄과 관련해 아는 게 없어 보였다"며, 그에게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언론을 통제하는 내용의, 내가 들은 계엄 포고령 내용에 반대"하고 "심대한 우려(grave concern)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대통령이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지에 대한 추가 설명을 이 관계자에 요구"하면서 "계엄이 한국의 명성을 크게 훼손할 것"임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통화 과정에서 골드버그 전 대사는 '고함'을 지른 사실도 부인하지 않으며 "조금 그랬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계엄 초기 본국에 보고한 내용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한 논의들이 있었다"며 "초기 몇 시간 동안 우리가 아는 모든 이들이 경계 상태를 갖출 수 있도록 대사관 내 조직을 정비했고, 다른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그날은 밤을 새웠다"고 덧붙였다.
골드버그 전 대사는 비상계엄 사태에 대해 "슬픈 사건이고 슬픈 시기이지만, 국회의원들이 매우 신속하고 초당적인 (계엄 해제) 조치를 취했고 윤 대통령 탄핵안을 통과시켰다"며 "한국의 민주주의와 헌법이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그는 향후 한국의 대선 결과가 한미관계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 "한미동맹은 한국 민주당을 포함해 양국의 엄청난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고, 몇 주 전 민주당 대표를 만났을 때 그(이재명 대표)는 한미일 3자 협력 및 일본과의 양자 협력 관계를 지지한다고 했다"면서 "정권이 바뀌면 나라가 무너질 것이라는 식의 인식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한편 민주당 정동영 의원은 최근 골드버그 대사와 통화가 된 대통령실 관계자는 김태효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라고 밝힌 바 있다. 정동영 의원은 비상계엄 해제 직후 골드버그 대사가 김태효 차장으로부터 '계엄선포가 불가피했다'는 설명을 듣고 '경악했다'는 사실을 소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