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 빼고 다 오른다'는 말이 실감 나는 고물가가 계속되는 가운데 주요 사립대학들을 중심으로 2025학년도 학부 등록금 인상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교육부는 올해로 17년째 '민생난'과 '엄중한 시국상황'을 이유로 동결 기조 유지를 요청했지만, 그간 정부에 협조적이었던 국립대들도 재정난을 이유로 등록금 인상을 진지하게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쪼들리는 학생들 불만에도 연세대 등 '인상' 기류
10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앞서 학부 등록금 인상을 의결한 서강대와 국민대에 이어 연세대, 경희대, 한양대, 성균관대, 중앙대, 이화여대 등 서울 소재 복수의 주요 대학이 올해 등록금 인상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연세대는 이르면 내주 등록금심의위원회에서 '인상'으로 가닥이 잡힐 수 있다는 기류도 감지되고 있다.
최근 캠퍼스 정문에 "교육비 부담에 고통 받는 학생들을 외면 말고 연세대 당국은 등록금 인상 계획을 철회하라"는 대자보를 붙이는 등 재학생은 90% 이상이 '인상 반대' 의견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다만 대학 측은 내부적으로 '동결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연세대와 경희대는 법정 최대한도 인상(5.49%↑)을 고려 중이다. 현행 고등교육법상 대학들은 최근 3년간 물가상승률의 1.5배까지 등록금을 올릴 수 있다.
학비 및 생활비의 많은 부분을 대출에 의존해 학업을 이어가는 대다수 학생들은 애초에 책정된 등록금 자체가 너무 고액이라고 토로한다. 교육부 대학정보 공시시스템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일반·교육대학 평균 등록금은 연간 682만 원이다. 특히 사립대의 평균 등록금은 762만 9천 원으로 국·공립대(421만여 원)와 격차가 컸다.
이에 수천억 원의 적립금을 쌓아 둔 대학들이 어수선한 시국을 틈타 학생들에게 또 부담을 전가하려 한다는 지적도 재차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더불어민주당 정을호 의원(국회 교육위원회)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대학들의 적립금은 전년도보다 3804억 원(3.5%) 증가한 11조 1358억 원이다. 이 중 20%인 2368억 원이 등록금회계에서 적립된 것으로 파악됐다.
추가로 정 의원이 교육부 제출자료를 토대로 등록금 인상이 미칠 영향을 분석한 결과, 대학들이 올해 등록금을 최대 상한(5.49%)으로 올릴 경우, 학생 1인당 재정 부담은 평균 31만 4천 원 증가하고, 대학의 전체수익은 6331억 원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상승 무시한 10여 년 간 동결에 대학들은 '곡소리'
다만, 대학들은 10여 년 간 물가상승률과 무관하게 등록금 액수를 유지한 것 자체가 무리수였다는 입장이다. 교수 채용과 기자재 확충 등 기본적인 학사운영 준비조차 녹록치 않고, '동결 기간'이 축적된 만큼 시설 노후화 등의 피해도 커졌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소위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실험실습 첨단화 등은 딴 세상 얘기다.
교육부는 지난 2009년부터 등록금 동결 정책을 고수해 왔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사총협)는 "그로 인해 등록금 수입은 16년 전에 비해 3분의 1 이상이 줄었다"고 말한다.
사총협은 회원대학 설문에 응한 회원 대학 90개교 중 8~9할 이상이 '학사운영 및 교육과정 개편'(83.3%)도, '우수 교직원 채용·충원'(96.6%)도 "어렵다"고 답한 현안 조사결과를 지난 7일 내놨다.
총장들의 94.5%는 '학생복지(기숙가·학식·보건 등) 개선'도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지역이 비해 그나마 형편이 낫다는 서울 대학들에서도 화장실·기숙사 등의 개비가 쉽지 않다는 호소가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이에 더해 지난해 의·정 갈등에 따른 의대생들의 휴학도 해당 학교들의 재정상황 악화에 한몫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번 사총협 조사에서 과반(응답자 53.3%)에 해당하는 48개 대학이 '(등록금을) 인상할 계획'이라고 밝힌 이유기도 하다. '아직 논의 중'이라고 답한 38곳(42.2%)도 상당수가 인상에 동참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년도 등록금 인상 대학 수는 예년 수준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등록금을 올린 대학은 지난 2022년 6곳, 2023년 17곳, 지난해엔 26곳 정도였으나 올해는 대폭 증가가 예상된다.
장학금 지원조건 완화 '당근' 메리트↓···탄핵 국면도 한몫
이에 대해 교육부가 내민 당근은 '국가장학금Ⅱ 유형 참여조건 완화'다. 등록금 동결 시 교내장학금을 전년 대비 90% 이상 지원하는 경우에도 해당 유형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국가장학금Ⅱ는 기존 등록금을 유지하는 대학에 한해서만 국고 지원이 이뤄지기에 그동안 인상을 반강제로 억제하는 수단으로 쓰여 왔다.
하지만 물가가 치솟다 보니, 한도 내 등록금 인상분을 취하고 이 혜택을 포기하는 것이 오히려 이득이라는 계산이 나오면서, 대학들이 '인상' 쪽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12·3 내란 사태' 이후 '대행의 대행' 체제에서 부처별 정책리더십이 약해진 것도 영향이 있다고 본다.
이러한 변화는 국립대학들의 동향에서도 미묘하게 드러난다. 교육부는 지난 8일 오석환 차관 주재로 거점국립대총장협의회와 등록금 관련 간담회를 열었는데, 협의회는 "어려운 시기에 특별히 국립대가 동결에 협력해 달라"는 차관의 부탁에 '신중히 검토하겠다'며 즉답을 피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교육부 측에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 등의 재정 확충과 더불어 재정 지원사업의 유연성 제고 방안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노선을 답습하고 있는 교육부의 지원책만으로는 동결 적용이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전국 4년제 대학들이 참여 중인 한국대학교육협의회도 "총장들의 의사만으로 등록금 인상이 결정되지는 않는다"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올해 분위기가 예년 같지 않다는 점은 부정하지 않았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등록금 인상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경우, 추가적인 대책이 있는지에 관해 "(차관) 간담회에서 나온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이외) 아직 뾰족한 답은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현재까지 '동결'을 확정한 국립대는 서울대와 인천대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