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그레 이글스은 강팀이었다. KBO 리그 1군 진입 후 세 번째 시즌이었던 1988년을 시작으로 1992년까지 5년 동안 한국시리즈에 무려 4번이나 진출했고 정규리그도 두 차례 제패(1989년, 1992년)했다. KBO 최초의 유격수 출신 홈런왕 장종훈을 앞세운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전성기가 바로 이때였다.
이후 빙그레는 다소 주춤했다. 1994년부터는 구단명을 한화로 변경했다. 1990년대 중반은 이전만큼 성적이 좋은 시기가 아니었지만 송진우, 정민철, 구대성, 송지만 등 새로운 세대들이 부상했고 이는 1999년 처음이자 마지막 한국시리즈 우승의 발판이 됐다. 강력한 마운드, 재건된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조화는 강력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가을야구를 나간 시즌보다 못 나간 시즌이 훨씬 더 많았다. 류현진이 등장한 2006시즌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 한 것이 최고 성적이다. 이후 10시즌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실수가 잦고 뒷심이 부족했던 이 시기의 한화 야구는 야구 팬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됐고 한화 팬들을 '보살'로 만들었다.
한화는 2018시즌 모처럼 가을야구 무대를 밟았지만 시리즈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다. 이후 지금까지도 가을야구 가뭄은 계속되고 있다.
올해는 다르다. 2025년 7월 들어 6경기에서 4승(1무 1패)을 쓸어담은 한화는 6일 현재 49승 33패 2무의 성적으로 공동 2위 그룹에 3.5경기 차 앞선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다. 이번 주말 열리는 올스타전 이전까지 예정된 3경기 결과와 관계없이 전반기 1위가 확정됐다.
한화가 KBO 시즌 전반기를 1위로 마치는 것은 이글스 야구가 가장 뜨거웠던 시절, 1992년 이후 무려 33년 만에 처음이다.
2024시즌 도중 부임한 김경문 감독의 리더십, 암흑시 시절 차곡차곡 쌓인 재능들이 마침내 조화를 이뤘다. 문동주, 김서현, 정우주 등 파이어볼러를 다수 보유한 한화는 '구속 혁명'을 이끄는 기수다. 타선에서는 데뷔 후 매시즌 타율을 비롯한 타격 지표를 발전시키고 있는 3년 차 문현빈의 활약이 돋보였다.
한화는 시범경기에서 탄탄한 마운드의 잠재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개막 초반 뒷문이 불안했다. 그러자 김경문 감독은 마무리를 3년 차 김서현에게 맡겼다. 이 결정은 한화의 운명을 바꿨다. 김서현은 전반기 39⅔이닝 동안 삼진 47개를 잡아내며 21세이브를 챙겼고 평균자책점 1.59를 기록했다. 김서현의 성장은 한화 팬들의 행복지수를 바꿔놓았고 이는 올스타 팬 투표 1위의 감격으로 이어졌다.
외국인 선수 선발은 완벽에 가까웠다. 코디 폰세는 다승 공동 선두(11승), 평균자책점 1위(1.95), 승률 1위(100%), 탈삼진 1위(161개)에 올랐다. KBO 2년 차 라이언 와이스도 전반기에 이미 10승(3패 평균자책점 3.07)을 기록하며 한화 선발진의 한 축을 지켰다.
외야수 에스테반 플로리얼의 부상 일시 대체 선수로 한화 유니폼을 입은 루이스 리베라토가 득점권에서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는 등 4할대 타율로 활약하면서 한화는 그야말로 날개를 달았다.
여기에 팀의 중심을 잡아주며 전반기 5승 4패 평균자책점 3.26을 기록한 베테랑 류현진의 역할도 빼놓을 수 없다. 흔들리는 수비 속에서 끝까지 분전하는 에이스 류현진의 불운은 한화 암흑기를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이제 그 시절은 지났다.
한화는 지난 6월 12일, LG 트윈스와 같은 날에 나란히 시즌 40승을 달성했다. 공동 1위로 40승을 조기 달성한 것인데 이 역시 한화 구단 역사에서 1992년 이후 처음이었다.
현재 49승을 기록 중인 한화는 전반기 잔여 3경기에서 50승 고지에 선착할 가능성이 있다. 8일부터 대전에서 최근 기세가 뜨거운 KIA 타이거즈와 3연전을 펼친다. 올스타 휴식기 이전의 마지막 일정이다.
역대 KBO 리그에서 50승을 선점한 구단이 정규리그를 제패하고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경우를 확률로 나타내면 70%가 넘고 한국시리즈 우승 확률은 60%로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