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조지 오웰은 예리한 통찰과 통쾌한 독설이 담긴 에세이를 많이 남겼다. <정치와 영어>라는 글에서는 정치언어의 타락에 주목했다. 오웰은 "명료한 언어의 대적은 위선이다. 진짜 목적과 겉으로 내세우는 목적이 다를 경우, 사람은 거의 본능적으로 긴 단어와 진부한 숙어에 의존하게 된다"고 일갈했다.
독일어, 러시아어, 이탈리아어의 경우도 당시 독재정권 때문에 상당히 타락했을 것으로 진단하면서 "생각이 언어를 타락시킨다면, 언어 또한 생각을 타락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목적으로 언어를 왜곡시키면 그런 타락한 언어가 관습과 모방에 의해 사람들의 생각을 타락시킬 수 있다는 경계의 말이다.
김민수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1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의힘은 탄핵의 강을 건널 힘이 없다. 탄핵의 강은 행정,입법,사법까지 장악한 민주당이 건널 수 있다"는 다소 뚱딴지 같은 말을 했다. 강을 건넌다는 표현은 대개 돌이킬 수 없는 어떤 중대한 결심을 내린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따라서 탄핵의 강을 건너려면 힘이 필요한 게 아니라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법인데, 언어를 혼탁케하는 교묘한 말장난으로 탄핵의 강을 건널 주체를 민주당에 전가했다.
김 최고위원은 "우리 국민은 헌법재판관에게 법 절차까지 무시한 채 헌법상 보장된 대통령의 권한을 심판할 어떠한 권한도 부여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씨를 석방하라"고도 했다. 헌재의 탄핵심판을 부정하는, 즉 헌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폭주가 아닐 수 없다.
윤석열 파면을 부정하는 그의 말은 상습적이다. 지난달 28일 방송출연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은 어떤 국민도 다치게 할 의도도, 어떤 국민도 불안하게 할 의도도 없었다"고 계엄령을 두둔했다. 하지만 이미 헌재는 "국회가 신속하게 비상계엄해제요구 결의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시민들의 저항과 군경의 소극적인 임무 수행 덕분이었다"며 "헌법수호의 책무를 저버리고 주권자인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윤석열에 대해 만장일치로 파면을 선고하지 않았던가.
국민의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윤 어게인' 발언을 공개석상에서 하는 것은 국민의힘에겐 해당행위나 다름없다. 사실상 당 윤리위에 넘겨야 할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성훈 수석대변인이 뒤늦게 "김 최고위원의 발언은 당 지도부의 합의된 의견이 아니다"라며 선긋기에 나섰지만, 장동혁 대표나 송언석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 어느 누구도 최고위원회의에서 제지하지 않은 만큼 역할분담이 아니냐는 의심이 드는게 사실이다.
"헌재의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겸허히 수용한다"는 지난 4월 권영세 전 비대위원장의 발언을 장동혁 지도부가 뒤집겠다는 것인지, 이와 배치되는 발언을 '개인의 의견'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중대한 모순이다.
장동혁 신임대표는 당대표 취임 일성으로 단일대오를 강조한 바 있다. "단일대오에 합류하지 못하고 당을 분열로 몰고가는 분들에 대해서는 결단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당내 어느 일방에만 결단하겠다는 단일대오라면 앞서 조지 오웰이 언급한 '정치언어의 타락'의 또다른 예일 뿐이다.
장 대표의 그간 정치행보나 당대표 당선 이후의 메시지도 어지럽다. "이재명 정권을 끌어내리겠다"고 하면서도 제대로된 반성과 혁신이 없으니 여론의 시선은 싸늘하다. 장동혁 대표는 "중도에 매력있는 보수를 만들겠다"는 그럴듯한 정치적 수사를 사용했는데, 같은 지도부에 속한 김민수 최고위원은 탄핵의 부당성을 주장했으니 당 지도부가 발신하는 메시지도 혼란스럽다.
윤 어게인 세력의 독무대를 지켜보는 당내 일각에선 "뺄셈의 정치를 하면 망조(亡兆)가 들 것"이라는 불안감과 냉소가 팽배해 있다. 정당의 존립 근거는 선거에서 이기는 것인데,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122개 선거구에서 19개 밖에 못 건진 암담한 현실을 지도부가 모르면 안된다고 말한다.
이재명 정부 첫 정기국회가 1일 개막했다. 산적한 민생 현안을 풀어야 할 과제가 한 보따리다.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현안이 있으랴만 우리는 윤석열 정부의 검찰권 오남용과 국정농단이 몰고온 비극적 결말을 목도했다. 이로 인한 정치불안이 국가경제와 국민의 삶 등 모든 현안을 집어삼키는 것도 지켜봤다. '22대 국회에서 드디어 검찰개혁을 해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국회와 정부가 역사의식을 갖고 개혁안을 정교하게 다듬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