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강릉시가 사상 최악의 가뭄에 몸살을 앓고 있다. 주 상수원인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이 14%대까지 떨어지며 바닥을 드러내자 민·관·군이 급수 차량을 총동원해 생활용수 공급과 상수원 고갈을 막기 위해 안감힘을 쏟고 있다.
주민들은 물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씻는 물, 먹는 물까지 아끼며 절수에 동참하고 있으며 농작물은 말라 비틀어지면서 농민들의 가슴도 타들어가고 있다.
생활용수 확보 총력…상수원 고갈 막아라
2일 오전 찾아간 강릉 강북공설운동장에는 이른 아침부터 전국 각지에서 온 소방차 70여 대가 출동을 대기하고 있었다. 최악의 가뭄으로 강릉에 지날 달 30일 '재난사태'까지 선포되자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 물을 실어나르기 위해 모인 것이다.
국가소방동원령 발령에 따라 전국 각지에서 지원을 나온 소방관들은 연일 30도를 넘는 폭염 속에 동해, 속초, 평창, 양양지역에서 담아온 물을 연신 강릉 홍제정수장으로 옮기고 있다. 지난 1일부터는 소방차를 담수량이 큰 물탱크 차량으로 교체해 하루 3천톤을 급수하고 있다.
경기도 이천에서 왔다는 유명호 소방위는 "이렇게 직접 현장 지원을 와보니 뉴스 등을 통해 들었던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인 것 같다"고 안타까움을 전하며 "주민들의 불편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는데 힘을 보태겠다는 마음으로 달려 왔다"고 전했다.
전날 급수지원에 투입된 뒤 교대를 하던 민경연 소방교는 "전국에서 지원을 나온 소방관들이 고생을 많이 하고 있는데 가뭄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우리가 더 열심히 해서 빨리 극복하는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강릉지역 생활용수의 87%를 공급하는 주요 상수원인 오봉저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도로 위에도 급수차들이 줄을 이었다
저수지 저수율이 14%까지 떨어지면서 급기야 인근 하천에서 실어온 물을 저수지에 쏟아붓고 있는 것이다.
첫 급수에 나선 지난 1일에는 31대를 투입해 1800톤의 물을 실어 날랐고, 앞으로 하루 최대 400대까지 늘려 하루 1만 5천 톤 가량을 공급할 방침이다. 이처럼 생활용수 확보와 상수원 고갈을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이면서 군 당국에서도 400여 대의 물탱크 차량을 지원하기로 했다.
"살다 살다 이런 가뭄 처음" 농민들 한숨 깊어져
최악의 가뭄으로 농민들의 한숨도 깊어지고 있다. 그동안 3일은 공급하고 7일은 제한하던 농업용수의 경우 생활용수 확보를 위해 지난 달 30일부터 공급을 전면 중단했기 때문이다.2일 오전 강릉 송정동에 있는 대파밭에서 만난 정영춘(여·76)은 "50년 농사에 살다 살다 이렇게 비가 안오는 가뭄은 정말 처음본다"며 "들깨도 말라 죽어 양수기로 물을 펐다. 대파도 그렇고 배추도 다 죽고, 벌레는 또 왜 그렇게 많은지, 논에 가보면 물이 없어 퍼석퍼석 소리가 난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대파는 지금쯤이면 허리춤까지는 자라야 하는데 물이 없으니 크지를 못했다"며 "원래는 추석 전후로 출하를 해야하지만 보다시피 무릎까지도 자라지 못했다. 올해 농사 어떻게 하냐"고 한숨을 내쉬었다.이날 정씨 말고도 인근에서 만난 다른 농민들 역시 "정말 하늘도 무심하다"고 입으 모았다.
김봉래 강릉시농민회(준) 회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사상 유례없는 가뭄 속에서, 강릉 농민들은 더 이상 농사를 이어갈 수 없음을 선언한다"며 "농민은 여전히 시민과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자, 먹거리의 최후 보루다. 강릉시와 정부는 농업이 붕괴되지 않도록 즉각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수율 10% 아래면 시간·격일제 급수도 검토
농어촌공사에 따르면 2일 오전 오봉저수지의 저수율은 14.2%로 전날 14.5% 보다 0.3 %p 떨어지면서 연일 최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이는 지난 1977년 저수지 조성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최근 6개월(2.27~8.26) 동안 강릉지역에 내린 비는 387.7mm로 평년 827.3mm의 46.9% 수준에 그치고 있다.이 같은 유례 없는 가뭄에 시민들은 씻는 물과 먹는 물을 비롯해 빨래와 설거지, 청소, 화장실 변기물까지 아끼며 물 절약 동참에 나서고 있지만, 해갈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서 행정당국의 절수 조치도 한층 강화되고 있다.
수도 계량기의 75%를 잠그는 제한급수 조치에 들어갔으며 공중화장실 40여 곳과 수영장 3곳은 폐쇄했다. 특히 지역 150실 이상 대규모 숙박시설에 대해서는 수영장과 사우나 등 비필수 물 사용 시설 운영을 중단하고, 숙박률 30% 축소 조정을 권고하기도 했다. 음식업소에서는 일회용품 사용도 한시적으로 허용했다. 일부 음식업소는 정수기 대신 생수를 사용하는 것을 비롯해 임시휴무와 점심에만 장사를 하는 단축영업에 나서고 있다.
그동안 비축한 생수도 시민들에게 배부하고 있다. 우선 노인복지시설과 학교 등에 14만여 병을 전달했다. 주 상수원인 오봉저수지 저수율이 10% 아래로 떨어질 경우 시민 1인당 하루 2리터씩 모두 6일 치의 생수를 배부하는 한편 시간·격일제 급수도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이날 행안부와 환경부, 강원도·강릉시 등으로 구성된 '범정부 가뭄 대응 현장지원반' 운영에 들어갔다. 하지만 현재 오봉저수지에 남은 물의 사용가능 일수가 불과 23일 가량으로 알려진 가운데, 당 분간 가뭄을 해갈할 만한 비 소식이 없어 주민들의 불편과 함께 단수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김홍규 시장은 "앞으로도 중앙 정부, 강원도와 긴밀하게 협의해 국도비 확보 등 제도적 행정적 기반을 더욱 강화하겠다"며 "역대 최악의 가뭄으로 시민 여러분께서 겪고 있는 불편과 걱정을 더 덜어내지 못해 다시 한번 깊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민과 함께 모든 역량을 쏟아 반드시 이번 가뭄이 이겨내겠다"며 "시민 여러분의 소중한 일상을 지켜낼 수 있도록 가뭄 극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