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영화의 러닝타임은 영화관을 나선 후에도 이어집니다. 때로 영화는 영화관을 나서는 순간 비로소 시작합니다. '영화관'은 영화 속 여러 의미와 메시지를 톺아보고, 영화관을 나선 관객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편집자 주]
※ 스포일러 주의
연쇄살인범과 기자의 일대일 인터뷰라는 형식의 밀실 심리 스릴러 장르의 '살인자 리포트'는 관객과 인물들 사이 거리감을 좁힌 끝에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진다. 이는 영화의 중심이자 모든 것을 책임지는 조여정과 정성일 두 배우의 소름 돋을 정도로 강렬한 연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질문이다.
특종에 목마른 위기에 기자 백선주(조여정)에게 자신이 연쇄살인범이라고 주장하는 정신과 의사 이영훈(정성일)이 새로운 살인 예고와 함께 인터뷰 요청을 한다.
고민 끝에 선주는 호텔 스위트 룸에서 살인자와의 인터뷰를 시작하고, 그의 살인 동기가 환자의 치료 목적으로 시작되었다는 믿기지 않는 고백을 듣는다.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무언가 잘못됨을 느끼고 도망가려던 선주는 지금 인터뷰를 멈추면 또 한 명이 살해될 것이라는 영훈의 충격적인 얘기를 듣는다.
'살인자 리포트'(감독 조영준)는 밀실이라는 한정되고 폐쇄적인 공간에 연쇄살인범과 단둘이 놓여 있다는 설정으로 관객들의 긴장을 자아내고자 하는 밀실 스릴러다. 정확히는 밀실 '심리' 스릴러다.
영화는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를 주제로 던진다. 만약 내가 어떤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인데, 가해자가 제대로 된 죗값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 여전히 피해자인 내가 고통스럽다면 우리는 과연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을까.
만약 '사적 제재' 내지 '사적 복수'라는 이름으로 가해자에게 내가 겪은 고통을 느끼게 할 수 있다면 피해자는 치유받을 수 있을까. 직·간접적인 방식으로 복수를 이룬 피해자는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살아나갈 수 있을까.
정신과 의사이자 연쇄살인범인 이영훈은 '치료'라는 이름으로 가해자들에게 직접 단죄를 가한다. 자신을 찾아온 안타까운 사연의 피해자들을 위한다는 이유는 그럴싸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결국 피해자인 이영훈은 가해자가 되길 자처했고, 피해자를 치료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의 살해 동기를 정당화한다.
제삼자적인 시선에서 봤을 때 이영훈은 명백한 연쇄살인범이다. 그러나 만약 제삼자가 아닌 당사자이자 피해자가 된다면, 우리는 치료를 미끼로 가해자를 처단해주겠다는 이영훈의 제안을 쉽게 거부할 수 있을까. 영화는 내내 이런 식으로 이영훈을 통해 백선주를 거쳐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영화는 그동안 많은 미디어에서 다뤘던 사적 제재 혹은 사적 복수에 관한 질문을 당사자이자 피해자 입장에서 전하고자 일대일 인터뷰 형식으로 구성했다. 살인범과 기자, 피해자를 돕는 살인범과 피해자가 된 내가 일대일로 문답을 나누는 과정은 관객들을 그 문답에 더욱더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를 통해 한 걸음 더 영화 속 인물의 관점에서 영화가 던지는 질문을 생각해 보게 한다.
문제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인 만큼, 결국 연쇄살인범과 기자 두 사람 사이 대화와 심리 변화를 통해 긴장감을 마지막까지 끌고 가야 한다는 게 숙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영화는 연쇄살인범인 정신과 의사 이영훈과 기자 백선주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한정된 공간, 한정된 인물 간에 벌어지는 일인 만큼 연출과 배우들의 연기가 중요하다. 일단 그런 점에서 조여정과 정성일이라는 배우를 섭외한 만큼, 연기적인 측면에서는 걱정할 것 없다.
'살인자 리포트'는 범죄 스릴러라기보다는 연쇄살인범과 기자가 서로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으며 발생하는 긴장을 통해 관객들을 집중시키는 심리 스릴러의 형식을 취했다. 일종의 심리 게임처럼도 보인다.
그러나 '살인자 리포트'가 심리 '게임'이 되고자 했다면, 연쇄살인범과 기자 사이의 구도가 좀 더 대등했어야 한다. 그러나 두 당연한 구도일 수도 있지만, 인물 사이의 무게추는 연쇄살인범에게 기울면서 팽팽한 긴장감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심리적인 긴장과 영화적인 재미는 부족하게 느껴질 수 있다.
또한 영화임에도 영화라기 보다는 스크린이라는 플랫폼을 빌린 연극처럼 보이는데, 이같은 구성에서 오는 심심함이 아쉽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럼에도 '살인자 리포트'는 이영훈과 백선주의 문답과 대화, 그리고 현실에서도 볼 수 있는 사건들을 통해 마주하는 윤리적인 문제를 마지막까지 일관성 있게 끌고 갔다. 이영훈과 백선주의 대화를 보며 나와 그들 간의 거리가 좁혀진 상황에서 윤리와 현실 등 어려운 질문을 마주했을 때, 아마 단번에 답을 내리긴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지점이 '살인자 리포트'의 아쉬움을 상쇄하는 장점이다.
그리고 아쉬운 연출에도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었던 건 조여정과 정성일의 공이 크다. 연극적인 영화이자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는 만큼 배우들의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많은 대사량과 대부분 둘에게 집중되는 카메라 속에서 조여정과 정성일은 대단한 집중력으로 열연을 펼친다. 두 배우가 왜 '믿고 보는 배우'로 불리며 관객과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지 연기로 입증했다.
107분 상영, 9월 5일 개봉, 청소년 관람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