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시중에 쌀이 없어요"…3만톤은 언발에 오줌누기

연합뉴스

쌀값이 올라가더라도 산지의 미곡처리장(RPC), 방앗간이라던가 이런 곳이 돌아가야 되는데 원료곡인 벼가 없어서 다 멈춰섰어요"
 
"(창고에)벼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위적으로 가격을 끌어올리려고 하는 것 같아요 농민들은 6만원은(20KG 기준) 맞춰줘야 된다 이렇게 주장을 하니 정부에서 보조를 맞춰주는 것 같아요"
 
수도권지역을 대상으로 소매상에 쌀을 공급하는 중소유통기업 대표가 전하는 쌀 유통시장 실태의 한 단면이다.
 
정부가 쌀의 수급과 가격을 조정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의 쌀시장도 수요와 공급법칙이 어느 정도 작동한다. 수요가 많으면 가격이 오르고 줄면 가격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8월말 시중 쌀값은 80KG기준으로 21만 8520원에 이를 만큼 많이 올랐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가격보다 11%올랐다.(통계청 물가동향)
 
현장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유통기업 상대 취재를 종합하면, 올해 8월 도정하기 전 벼(40KG) 가격은 8만2천~8만3천원선으로 2024년말 5만8천~5만9천원 대비 40%가량 올랐고, 같은 기간 찰벼가격은 8만2500~8만3천원 → 13만1천~13만2천원으로 폭등했다. 찰벼를 도정한 찹쌀은 21~22만원에서 40만원선으로 100%올랐다.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는데 원인은 시중에 풀리는 물량이 없어서 라고 한다.
 
정부는 지난해 추수기 21만톤 가량을 수매해 창고에 저장한 이후 가격인상 조짐을 보이자 지난달 들어 3만톤을 시장에 공급(공매)했다. 언발에 오줌누기라는 것이 유통기업들의 하소연이다. 유통기업들은 농협과 함께 대형마트를 비롯한 소매유통업체에 쌀을 공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지난해부터 올해 사이 눈에 띠게 가격이 오른 데는 쌀값을 일정 수준이상으로 유지시켜주기로 한 전 정부의 약속이 크게 작용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2023년 4월 양곡관리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직후 수확기 쌀값이 20만원 수준(80KG)이 되도록 하겠다고 밝혔고, 그해 11월에 농업인의 날 축사에서 "정부가 농업인들에게 약속한 대로 쌀값을 20만원 수준으로 회복시키겠다"고 공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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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2024년 20만톤, 2025년 21만톤이 격리조치됐다. 쌀값을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로 정부의 양곡보관창고에 쌀이 쌓였다는 의미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 수매물량의 절반 가량을 소화하는 일부 농협 미곡처리장 조차 물량 부족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곡관리법 처리로 지금 수준의 시중 쌀값은 고착화할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생산량 감소나 가격하락 조짐이 있을 경우, 정부가 즉각 매입에 나설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산지의 벼가격이 올랐다지만 아직은 시민들 피부에 와닿을 만큼 파장이 가시화하진 않고 있다. 쌀 유통기업이 대형마트에 공급하는 가격을 급격히 인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계약으로 물량이 유통되는 것도 가격상승에 일정 시차가 생기는 원인이다. 요약하자면 쌀 유통량 부족으로 공급가격은 올랐지만 유통기업들이 울며겨자먹기로 부담을 흡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유통기업은 KG당 3150원에 쌀을 공급받아 3600원 수준에 마트에 납품하고 있지만 차액 450원으로는 유통과정에 소요되는 비용에도 미달해 현상유지도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소요비용은 물류비, 포장비, 직원급여, 대출금 이자, 전기요금 등을 합친 비용이다. 마트납품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산지 유통업체들은 '쌀값은 올라가는데 그 만큼 (마트)공급가에 반영을 못 시키니까 우리 같은 사람만 죽어나가는 거다'고 하소연한다.
 
부분적으로는 갑을관계에서 기인하는 가격인상의 시차가 결국은 시장 가격에 반영될 수 밖에 없다.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소매 쌀값의 '고공 고착화'는 정부의 유연한 정책추진으로 어느 정도 조정이 가능하지만 양곡관리법이 입법된데다 내년으로 임박한 지방선거, 농협조합장선거, 후내년 국회의원선거를 감안하면 이런 추세가 강화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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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4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농수축산물 가격이 지난해 대비 4.8%올랐다"며 "추석을 앞두고 관계부처가 세심하게 챙겨달라"고 당부했다. 이 대통령은 농수축산물의 유통에서 이해하지 못할 부분이 상당히 많다는 말로 유통개혁도 주문했다.

유통과정에서 불합리하게 비용이 추가돼 가격이 올라간다면 당연히 정부가 나서 유통개혁을 추진해야 하고, 그 핵심은 생산품 유통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합리한 문제점을 찾아내 고치는 것이다. 아울러 쌀값 정책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측면이 있다. 현재의 정책 처럼, 농민들의 '일정 수익'을 보장해주는 정책의 반대편에 선 소비자들은 과거보다는 비싼 가격에 쌀을 소비하는 불이익을 받게 된다.

농식품부는 소비자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보조금 정책을 펴는 등 다양한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부분은 벼와 쌀의 유통을 담당하는 생산자-유통기업-소매기업(마트)-소비자 모두를 고려하는 정책의 균형감이다. 쌀 유통에 동맥경화가 생겨 터져나오는 시중의 아우성을 흘려 넘길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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