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민당국의 한국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 단속으로 한국인 300여명이 구금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 굳건한 동맹을 확인하고 대규모 투자 보따리를 약속한 지 불과 열흘 만이다. 국내 지지층 결집을 위한 반(反)이민정책 앞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도 투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美한국인 300여명 구금…"석방 교섭 마무리, 전세기 출발"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과 국토안보수사국(HSI) 등은 미 조지아주 내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단속하며 475명을 체포했다.이 중 LG에너지솔루션 소속 47명(한국 국적 46명·인도네시아 국적 1명)과 관련 설비 협력사 소속 인원 250여명 등 한국인 300여명이 구금됐다. ICE의 이번 단속은 단일 현장에서 이뤄진 최대 규모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7일 서울 총리공관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에서 "관련 부처와 경제단체, 기업이 한마음으로 신속하게 대응한 결과 구금된 근로자의 석방 교섭이 마무리됐다"며 "행정적 절차가 마무리되는 대로 전세기가 우리 국민 여러분을 모시러 출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 외교부장관도 이번 주 사태 해결을 위해 미국을 찾을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핵심 동맹국 기업 직원에 쇠사슬…동맹 시험대?
사태는 수습국면에 들어섰지만 미국의 반이민정책 표적에 핵심 동맹국인 한국이 정조준됐다는 점에서 후유증은 적지 않을 전망이다. 정상간 만남에서는 대규모 투자를 압박하면서 뒤에선 한국의 대표적인 대미 투자사업 시설을 급습을 준비한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가 한미동맹의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관측도 적잖다.
현지 언론에서조차 미국의 제조업 강화와 불법이민단속이 모순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진행 중인 글로벌 기업들에게 강력한 이민 단속이라는 새로운 리스크가 생겼다"고 보도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관련 질문에 "그들은 불법 체류자였고, ICE은 그저 제 역할을 했을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동맹국 기업의 직원들을 사전 통보도 없이 쇠사슬에 묶어 끌고 간 장면에 정부 내부에서는 당혹을 넘어 불쾌해하는 기류도 읽힌다. ICE는 헬리콥터와 군용 차량이 진입해 직원들의 양 손과 다리에 쇠사슬을 묶고 버스에 태우는 장면이 담긴 단속 영상을 공개했다.
지지층 결집하는 트럼프…"비자 문제는 근본 개선 필요"
이번 단속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중간선거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단속 대상이 된 합작 공장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제조업 일자리를 창출했다고 내세웠던 곳이다. 전임 대통령의 치적에 흠집을 내면서 미국 내 반이민 정서를 자극해 지지층을 결집하려는 포석이다.국립외교원 민정훈 교수는 "미국 우선주의의 한 축인 이민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어 성과를 내려는 국내 정치적 동기"라며 "미국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지만 노동자를 고용하라는 것에 동맹국에도 예외가 없다는 점을 보여주며 지지층을 모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인 파견 직원 비자문제의 맹점이 수면 위로 드러나며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지 인력들은 여건상 관행적으로 ESTA(전자여행허가)나 'B-1(단기 상용)' 비자 등을 받아 활동한 것으로 알려는데, 이들 비자는 취업활동이 금지된다.
민 교수는 "강하게 유감을 표시하고 재발방지를 약속받는 동시에 비자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 관행적으로 편법을 쓰던 부분에 대한 개선도 필요하다"며 "예외적인 패스트트랙을 적용해 적절한 비자를 받는데 문제가 없도록 하고 관련 비자의 TO를 늘리는 등의 요청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