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통곡한다. 회개하라 위정자여!" 한국 개신교 목사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서울 YMCA(기독청년회) 강당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퍼져나갔다. 1974년 서울지역 부활절 연합예배가 진행되던 YMCA강당이 일순간 술렁이기 시작했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만든 유신헌법에 항거해 젊은 개신교 목회자들이 민주주의회복을 촉구하는 피켓과 플래카드를 펼쳐든 채 군사독재에 반대하며 민주화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데 대한 놀라움과 충격이 작용했다.
서슬 퍼런 독재정권이었는데, 유신헌법 개폐 주장의 전면금지와 이를 어기면 영장없는 체포가 가능하도록 한 '긴급조치 1, 2호'를 발동한 뒤라서 혹여나 끌려가 고초를 겪지 않을까 하는 신도들의 걱정도 컸다. 정권은 긴급조치를 위반한 목사들에게는 '정권 전복을 꾀했다'는 내란예비음모 혐의를 씌워 구속했다.
그러나 개신교계가 똘똘 뭉쳐 강력하게 저항하고 정권에 압력을 가하자 독재정권도 어쩔 수 없었던 지 박형규 권호경 목사는 곧 보석으로 풀려났다. 국민들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려던 교계 목사들의 민주화 열정은 국민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이 사건 이후 개신교는 독재에 맞서는 저항운동의 중심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요즘 개신교계는 사회참여보다는 복음 선교와 개별 교회 중심의 믿음공동체 강화에 치중하면서 과거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변모했다. 80·90년대를 거치며 민주화가 이뤄지고 한편으로 고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된데 따라 신도들의 연령대가 상대적으로 높아진 것이 어느정도 작용한 결과로 분석할 수 있다.
교회도 사회 속에서 기능하는 이상, 사회상의 변화를 반영하게 되지만 최근 보게되는 교계 일부의 일탈은 우려의 수준을 뛰어넘고 있다.
세계로교회 손현보 목사는 대통령선거와 부산교육감재선거 때 신도들을 대상으로 행한 설교에서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하고 경쟁자인 이재명 후보를 비방한 혐의로 최근 경찰에 구속됐다. 그는 '이재명 히틀러' 발언이나 '자유민주체제 수호를 위한 윤석열 탄핵반대' 등 문제발언들을 이어가다 수사선상에 오르게 됐다.
문재인 전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며 보수집회를 주도한 전광훈 목사는 집회에서 기부금 등록없이 15억원을 모금한 혐의로 지난 8일 벌금 2천만원을 선고(1심)받았다. '모은 돈이 헌금이지 기부금이 아니다'는 전 목사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극동방송의 김장환 이사장은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에 대한 구명로비를 하지 않았느냐는 의심을 받고 있다. 특별검사는 김 이사장이 임 전 사단장 구명을 위해 윤석열 전 대통령과 국방장관 등에게 통화를 한 정황을 포착, 그 이유를 캐고 있다.
이들이 보여준 행태는 다수가 성직자로서 해서는 안될 부적절한 처신으로 일회적인 판단 잘못이나 오해 등에서 비롯된 언행이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확신에 찬 어조로 교회 성도들을 대상으로 특정정파를 두둔하고 반대정파를 폄훼하거나 교회 예배의 형식을 빌어 보수성향 국민들을 선동했다.
또한, 권부와의 인연을 구명로비에 이용했다는 의심을 받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다. 성직자가 이름을 올릴 데가 아니다.
이들이 한 발언만 놓고 보면 진보진영에 대한 맹목에 가까운 적대감이 있는 것 아닌가 의심이 든다. 발언의 대상이 교회 신도이건 국민이건 특정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고 지지하는 언행을 하는 것도 복음전파와 교화(敎化)를 업으로 삼는 목사가 할 일이 아니다. 교회 신도 가운데는 다른 소신을 가진 사람들도 있고 특정정파를 편역드는 것 자체가 종교의 정치개입이기도 하다.
굳이 정치적 소신을 고집하고 싶다면 자연인 손현보 전광훈의 이름으로 주장을 펴는게 맞다. 우리가 우려하는 부분은 '○○○목사'라는 이름으로 내뱉는 그들의 편향되고 정제되지 않은 발언이 개신교 전체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는 부분이다.
교회에 나간 지 오래된 사람들은 '그들이 본연의 자세에서 일탈해 피로감을 유발시킨다'는 자각을 하지만 교회에 갓 등록한 신도나 아예 교회에 다니지 않는 국민들은 그들의 언행을 통해 한국 기독교를 보게 되고 '그런 거지'라고 짐작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이들은 존재 자체가 교회 전체의 근심거리다.
기독교는 오랜 역사 만큼이나 타락과 개혁을 반복하면서 오늘날까지 그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비록 외형적으로 기독교의 보수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복음을 전파하고 이 땅에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는 '믿음의 본질'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그래서 일요일이면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나가는 것이다. 일상의 잘못을 회개하고 영적 치유를 받고 평강을 얻는 곳이 교회이다.
일부 일탈 목사들의 행태에 흔들릴 만큼 한국 교계가 취약하지는 않다고 본다. 유튜브와 SNS 등 고도로 발달한 소통수단에 편승해 독버섯 처럼 번져나가는 사이비 목사들의 반대편에 무엇이 있는 지도 바라봐주길 바란다. 그곳엔 힘없고 가난한 자들의 곤고함을 덜어주려고 힘쓰는 목양(牧羊)에 진심인 목회자들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