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차례 체포와 구금, 가택연금, 영화 제작 금지, 출국 금지 등 탄압을 받으면서도 비밀리에 영화를 제작한 세계적인 거장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어떻게 영화를 통해 저항하고, 영화를 위해 투쟁했을까.
제78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그저 사고였을 뿐'을 들고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18일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비프힐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저항의 역사를 들려줬다.
기자회견에 앞서 '그저 사고였을 뿐'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위한 이른바 '오스카 레이스'를 시작하게 됐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단, 이번 출품은 이란이 아닌 공동 제작한 프랑스 공식 출품작으로 나가게 됐다.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이란에서 영화를 만든 후 다른 영화제 등에 출품할 때는 문제 없지만, 미국아카데미시상식에 출품하려면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그저 사고였을 뿐'은 프랑스와 공동 제작한 작품이기에 아카데미에 출품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제56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 심사위원대상 수상작이자 소니 픽처스가 유통한 '오프사이드'(2006)의 경우, 당시 이란에서 오스카 출품 전 먼저 상영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으나 이란에서 상영할 수 없게 되며 출품을 포기한 적이 있다.
파나히 감독은 "나와 같은 독립적인 영화 제작자가 연대해 오스카에 작품을 출품하고자 할 때 자국의 허가가 필요하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 할 거 같다"고 말했다.
올해의 아시아영화인상 수상자이기도 한 이란의 대표적인 거장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검열과 억압 속에 살아가는 개인의 자유와 존재를 조명해왔다.
이란 정부의 계속되는 제작 검열 속에서도 장편 데뷔작 '하얀 풍선'(1995)으로 칸영화제 감독주간 황금카메라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린 자파르 파나히 감독은 이후 '거울'(1997) '택시'(2015) '3개의 얼굴'(2018) '써클'(2000) 등을 통해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을 비롯한 다수의 상을 휩쓸었다.
반체제적 시선으로 이란 사회의 정치·사회적 모순을 날카롭게 포착해 온 그는 수차례 체포와 구금, 가택연금, 영화 제작 금지, 출국 금지 등 탄압을 받으면서도 비밀리에 영화를 제작해 해외 영화제에 출품하며 창작의 끈을 놓지 않았다.
끊임없이 영화를 통해 저항하고 투쟁한 결과,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 '써클'(2002),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 '택시'(2015)에 이어 '그저 사고였을 뿐'(2025)으로 2025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세계 3대 영화제를 모두 석권했다.
황금곰상 수상작 '택시'의 경우 이란 정부로부터 20년간 영화 제작 금지 처분을 받은 후 어떻게든 영화를 만들고자 한 감독이 고민 끝에 스스로 카메라 앞에 서기로 결심해 완성된 작품이다.
감독은 "내면으로 들어갔고, 나 자신을 들여다보며 모든 아이디어가 내면에서 나오는 걸 경험했다"며 "영화를 만들지 말라고 했기에 그러면 혼자서라도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말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택시 운전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그런다면 택시 안에 카메라를 숨겨서 사람들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라도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아이디어로 만든 게 '택시'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생각하고, 스스로 영화 안에 등장하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 결론 내렸던 거죠."
파나히 감독은 "그 누구도 영화 제작을 막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며 "영화 제작자들은 언제나 영화를 만들 방법을 찾을 거고, 난 그 방법을 찾았다"고 강조했다.
거장이 전한 메시지…영화는 계속된다
감독은 지금까지 온갖 탄압에도 영화를 만들어 올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인지 묻자 주저 없이 '아내'라고 답했다.
그는 "내 힘은 제 아내로부터 온다. 영화를 만드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영화 만들지 못하면 내 아내가 날 버릴지도 모른다"며 "결국 반드시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만 아내를 지키고 결혼을 유지할 수 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파나히 감독은 가장 기뻤던 시간과 가장 힘들었던 시간에 모두 '영화'가 있었다고 했다. 그는 "영화를 만들 때 가장 좋고, 다음에 무엇을 만들 때 생각할 때가 가장 힘들다"며 "어떤 영화인이라도 영화를 만들 때 살아있는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화인이 영화를 만들 수 없다고 한다면 정말 우울함에 빠질 것"이라며 "항상 영화를 만들 수 없었던 시기에 대한 많은 후회를 지니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는 지금도 이란을 비롯한 많은 폐쇄적인 국가가 자유와 억압에 관한 영화를 많이 만들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파나히 감독은 "이란에서는 영화를 제작하고 싶으면 정부에 각본을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그 각본에서 검열을 통해 삭제 등이 이뤄진다"며 "이런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 내가 겪었던 것과 같은 많은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파나히 감독과 작업했던 각본가는 징역을 살다가 이틀 전에야 풀려났다. 감독은 "독재하에서 살게 된다면, 정부의 압력을 받게 된다"며 "어떻게 살아 나가고, 어떻게 영화를 만들고, 어떻게 원하는 영화를 만들 것인지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투쟁에는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다"고 이야기했다.
감독은 영화인들은 어디서든지 원하는 이야기를 만들 의무가 있는 만큼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먼저 찾아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관객이 원하는 영화를 만들 것인지, 아니면 관객이 따라오는 영화를 만들 것인지 찾는 것이 첫 번째 단계라고 했다.
"두 가지 유형의 영화가 모두 존재해야 합니다. 제작자들은 두 가지 유형 중 어떤 유형을 택해서 제작해야 할 것인지 정해야 하죠. 결정하고 나면 제작이 쉬워집니다. 가장 중요한 영화 제작자로서의 첫 스텝은 스스로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 이해하는 것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