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국내에 등록되지 않은 특허권의 사용료에 대해선 과세하지 않던 판례를 33년 만에 변경했다. 미국 등 해외에만 등록된 특허권이라도 한국에서 사용됐다면, 특허권 사용료를 받은 미국 기업은 한국에 세금을 내야 한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세금 불복소송을 제기해 온 미국 기업들로부터 약 4조 원의 세액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장기적으로도 국내 조세수입이 크게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18일 SK하이닉스가 이천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경정거부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SK하이닉스) 승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수원고법으로 환송했다.
사건의 시작은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SK하이닉스는 미국 특허관리 전문 A회사로부터 특허권 침해소송을 당했고, 5년 동안 매년 160만 달러를 지급하는 화해계약을 체결했다.
2014년 SK하이닉스는 A회사에 약정 사용료 160만 달러를 지급하면서 국내에서 원천징수된 법인세 3억 1천여만 원을 납부했다. 법인세법상 외국 법인에 국내원천소득이 발생하면 우리 과세당국에 법인세를 내야 한다는 규정에 따른 것이다. 실질적인 납부 의무는 외국법인에 있지만 한국 기업이 외국법인에 소득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하면서 법인세 몫을 미리 떼고 있다.
이에 대해 SK하이닉스는 2015년 6월 한미조세협약에 따라 미국에만 등록된 '국내 미등록 특허권'에 대한 사용료는 국내 과세 대상이 아니라며 세무서에 법인세 환급청구를 했다. 그러나 세무서가 경정청구를 거절하자 이번 소송을 제기했다.
1992년 이후 대법원 판례는 줄곧 '과세 불가' 입장이었다. '특허는 등록된 국가 안에서만 유효하다'는 이른바 특허권 속지주의가 근거였고, 이번 1심과 2심 과거 판례를 토대로 SK하이닉스의 손을 들어줬다.
1심 재판부는 "특허권 속지주의 원칙상 특허권은 등록된 국가 영역 외에서는 침해될 수 없어 이를 사용하거나 그 사용대가를 지급한다는 것을 애초에 상정할 수조차 없다"며 "따라서 이 사건 사용료는 국내 미등록 특허권에 관한 것으로서 국내원천소득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세무당국의 항소를 기각했다.
그러나 상고심은 애초 SK하이닉스가 경정청구 근거로 삼은 한미조세협약 내 '특허의 사용'에 대한 의미를 다시 들여다봤다. 대법원 다수의견(10명)은 "한미조세협약에서 '특허의 사용'은 특허권 자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특허기술을 사용한다는 의미"라며 "종전 판례가 근거로 들었던 '특허권 속지주의'는 한미조세협약에서 말하는 특허의 사용지와 관련해서는 고려해야 할 원칙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또 다수의견은 "한미조세협약의 문맥에 의하더라도 국내 미등록 특허권은 국내에서 사용될 수 있다고 봐야 한다"며 "기술이나 정보 등의 사용은 특허가 등록된 국가가 어디인지와 관계없이 어디서든 이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허권 속지주의'의 의미에 대해서도 특허기술의 국내 사용이 국외 특허권자에 대한 특허 침해행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일 뿐, 특허기술을 국내에서 사용할 수 없다거나 그 특허기술에 재산적 가치가 없어 사용대가를 지급하는 것을 상정할 수 없다는 논리라고는 볼 수 없다고 명확히 했다.
이에 대법원은 2심 판결을 파기하면서 "국내에는 등록되지 않은 이 사건 특허권의 대상인 특허기술을 국내에서의 제조·판매 등에 사용하는 데에 대한 대가라면 이는 국내원천소득에 해당한다"고 결론 냈다.
이어 "사용료가 단지 국내 미등록 특허권에 대한 것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특허기술이 국내에서의 제조·판매 등에 사실상 사용되었는지를 살피지 아니한 채 곧바로 국내원천소득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원심 판단은 법리를 오해한 나머지 필요한 심리를 다하지 아니하여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고 밝혔다.
다만 노태악, 이흥구, 이숙연 대법관은 반대의견을 냈다. 이들은 "문언의 통상적 의미나 구 법인세법을 비롯한 관련 법령의 문언과 체계에 따르면, 한미조세협약에서 말하는 '특허'는 등록함으로써 효력이 발생하는 권리로서의 '특허권'을 의미하고, 그 보호대상에 불과한 '발명'이나 '기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이어 "특허권은 법령에 의해 비로소 발생하는 권리이므로 그 효력이나 사용의 방법·태양 역시 법령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고, 특허권 속지주의 원칙상 '특허의 사용'은 해당 특허권이 등록된 국가 내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고 봤다.